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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줄인 일본, 지금은] 아낀 잔업수당 복리 혜택에 사용하기도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매달 노동시간 약 2억 시간 감소 전망 … 소득 늘리기 목표는 이루기 쉽지 않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기업은 근무시간 단축에 대응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사진:픽스니오
주 52시간 근무제가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야근·휴일근무 등 연장근로를 총 12시간까지만 법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다. 일과 생활의 양립을 이루는 한편 민간소비 부양, 고용 확대를 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그러나 근로자의 초과근로수당이 줄어 민간소비가 되레 감소하며, 근로시간이 줄어도 기업은 신규 채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들끓는다. 회식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 52시간 근로의 순작용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제도 개선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보다 먼저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한 일본에서는 최근 노동 생산성 향상이 가장 큰 화두다. 일본은 지난해 법정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단축했다. 초과근로시간은 월 45시간, 연 360시간을 넘지 않게 했다. 문제는 다수 근로자의 근로시간 감소로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 점이다. 일본 정부는 임금 인상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세웠는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실질임금이 줄면서 엇박자가 났다.

기본급 적고 잔업수당 많은 구조


일본은 기본급이 적고 잔업수당이 높은 개발도상국형 급여 구조를 장기간 유지해왔다. 경제 개발 초기 낮은 인건비를 통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본급이 적은 대신 장시간 근로로 소득을 보전했다. 고정급인 기본급여는 주로 저축에, 잔업은 주로 생활비로 사용하는 행태가 일반적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잔업 수당으로 받는 돈을 ‘생활급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전기산업노동조합이 1946년 노사 협상을 통해 얻어낸 임금 제도가 원형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성과주의 등 경영환경 변화와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활급여가 대폭 쪼그라든 실정이다. 후생노동성의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평균 초과근무수당은 현금 급여 총액의 6%에 달한다. 운수·우편·전기·가스·열공급·수도업 등 업종은 잔업 수당 비중은 10%가 넘는다. 저임금 근로자일수록 근로시간 단축으로 입는 급여 피해가 큰 셈이다.

일본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단 2019년도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연 720시간의 잔업을 허용키로 했다. 유예 기간이 있다 보니 현재 일본에서 여전히 월 6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하는 근로자는 약 643만 명에 달한다. 전체 근로자의 11.3%에 해당한다. 미즈호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잔업이 월 60시간 미만으로 줄어들 경우 근로자 1인당 연 86만7000엔(약 875만원)의 수입이 감소한다. 전체 근로자로 따지면 급여가 연 5조6000억엔(약 56조5129억원)이 줄어든다. 일본 전체 근로자 급여총액의 2.6%에 해당한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줄어든 임금만큼 소비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사카이 사이스케(酒井才介) 미즈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정부가 임금 인상 목표치인 연 3%를 달성한다고 해도 잔업 수당 감소분 때문에 그 효과가 거의 상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2016년 일본 광고기업 덴츠에서 24세 신입사원이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자, 일본 정부는 잔업시간을 월 65시간 단축하는 한편 노동 현장감독을 강화했다. 이 조치는 시차를 두고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져 지난해 5월 근로자 평균 연봉은 27만7512엔(종업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했다. 고바야시 신이치로 미츠비시UFJ 리서치&컨설팅 수석연구원은 “대부분 기업이 일손 부족에 직면했지만 근로시간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잔업을 줄이려는 정부 정책 기조도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고민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잔업수당 감소분을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해 부작용을 낮추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기업으로서는 노동투입량이 줄면 매출 및 이윤 감소 등 경영상 압박이 커지기 때문에 종전대로 인건비를 지출하기 어렵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은 잡셰어링 정책의 성격도 있어 기존 근로자에게 잔업수당 감소분을 보전해주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근로시간 감축으로 전체적으로 매달 약 2억 시간의 노동시간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줄어드는 시간만큼 약 135만 명을 새로 충원해야 한다. 더구나 일본은 한국과 달리 일손 부족까지 겹쳐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2016~17년 일본에서 새로 늘어난 근로자 수는 연 69만 명에 불과하다. 신규 채용도 어려운 상황이라 기업은 생산량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이에 일본 재계에서는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 최대 화두다. 업무를 효율화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편 이익이 적은 사업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수익 나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식이다. 소니 등 일본 대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업무 프로세스에 AI·ICT를 도입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개발한 AI 로봇 페퍼가 호텔과 교육 현장에 깔리고 있으며, 최근 자율주행 청소로봇 등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기가 대거 등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생산성 높고 더 밀도 있게 일하는 직원에서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이익이 환원되는 식으로 급여 및 인사관리제도도 변화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근로시간 감축으로 앞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정형화된 일은 AI가 하게 될 것이며, 개별 노동자는 자격증이나 어학, ICT 활용 능력 등 지금 이상으로 업무 기술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이에 잔업 감소로 줄어든 인건비를 직원들의 역량·생산성 향상에 사용하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오릭스는 6월부터 14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자기 연마 제도’를 신설했다. 남는 잔업수당을 재원으로 모든 직원에게 복리 후생 포인트를 연 6만엔씩 지급하고 있다. 근로시간 감소로 생긴 여가 시간을 자격증 취득이나 어학능력 향상에 사용해 달라는 것이다.

의류 업체인 하루야마홀딩스는 지난해 4월부터 ‘잔업 제로’를 달성한 직원에게 생산성 향상의 대가로 월 1만5000엔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1인당 초과근무 시간이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다. IT기업인 SCSK는 2013년 일찌감치 일하기 방식 개혁을 시작해 2008년 35시간이던 월 평균 초과근무를 지난해는 16시간으로 줄였다. 절약된 초과근무 수당 10억엔은 전액 잔업 감축 실적 보너스로 지급했다.

생산성 향상이 지상과제

일본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은 급여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본의 1인당 현금급여 총액은 올 5월 기준 27만5443엔으로 10개월 연속 증가했다. 일본의 급여 구성은 크게 기본급과 잔업수당, 보너스 등 특별급여로 나뉘는데 특별급여가 14.6%나 증가했다. 일본 기업들이 근로시간 감축에도 생산성을 높여 높은 실적을 올렸기에 나타난 결과다. 근로시간 감축이 중장기적으로 소비를 부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근로시간 감축의 목적대로 유연근무제가 정착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이 맞춰지면 주부 등 비경제활동 인구의 경제활동이 늘어 가계의 실질소득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에서다. 특히 생산성을 높이기 어려운 단순 노무 및 파트타임 근로 취업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의 직장인 영어 회화반의 경우 3월보다 최대 40% 가까이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며 “시간에 여유가 생겨 소비를 늘리는 계층도 예상보다 많다”고 전했다.

1448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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