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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판매 의약품 확대 논란] 고성만 오가고 다음 회의 일정도 못 잡아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편의점 의약품 추가 안건 17개월째 표류...약사회 vs 시민단체 설전만

▎7월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왼쪽)을 비롯한 약사회 관계자들이 편의점 약품 판매 확대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한 달 간 대한약사회는 동분서주했다. 폭염이 작렬하는 청계천에서 무려 3000명이나 모인 집회를 열었고, 청와대 청원계시판에도 꾸준히 글을 올렸다. 약사 1600명이 동참한 서명서도 만들었다. 주제는 편의점에서의 타이레놀 퇴출이다. 8월 7일, 약사의 미래 를 준비하는 모임은 최근 삭제된 편의점 타이레놀 퇴출 청와대 국민청원 후속조치로 서명운동 결과와 정책제안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긴장이 높아지던 8월 8일, 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가 열렸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을 정하는 회의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약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회의가 끝났다. 6차 회의는 속 쓰릴 때 먹는 겔포스와 설사약 스멕타의 편의점 판매를 의논하기 위해 열렸다. 하지만 약사회 대표자는 타이레놀 퇴출을 주장하며 회의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강봉윤 대한약사회정책위원장은 “술 취한 사람이 타이레놀을 잘못 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며 “타이레놀의 편의점 판매는 국민 건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열린 5차 회의에서 자해 소동을 벌여 회의를 파행시켰던 인물이다. 8개월 만에 열린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났고 고성이 오가는 논쟁 끝에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고 마쳤다.

타이레놀 퇴출 주장하며 회의 방해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설명없이 삭제되자 자체적으로 서명운동 사이트를 개설했다. 편의점에서 타이레놀과 어린이 타이레놀 시럽이 판매되는 것을 막고 공공심야약국 제도화로 약사가 안전하게 타이레놀을 환자에게 투약하도록 지원하라는 게 서명운동 목표다. 대한약사회는 심야약국 운영에 정부 지원금을 주면 취약시간대 의약품 판매를 안전하게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약사회가 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약국 한곳당 450만원을 지원하면 심야약국 운영이 가능하다는 약사들의 대안이 있었다.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 측에서는 약사회가 의도적으로 타이레놀을 쟁점으로 삼고 있다고 본다. 타이레놀 논란으로 17개월째 밀리고 있는 이슈가 있어서다. 2017년 1월 열린 1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의 안건은 ‘편의점에서 어떤 약을 더 팔게 해야 하나’였다. 이후 4차까지의 회의 결과 제산제와 지사제를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방향이 잡혔다. 소비자 설문을 통해 한밤중에 필요한 약이 무엇인지 묻는 조사에서 요청이 가장 많이 나온 품목이다. 보령제약의 겔포스, 대웅제약의 스멕타 등 구체적인 품목도 정해졌었다. 이를 승인하기 위해 열렸던 12월 5차 회의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강 위원장이 회의장에서 자해 소동을 벌이면서 논의 자체가 중단된 것이다.

8월로 6차 회의 일정이 잡히자 약사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며 전의를 불살랐다. 지원군도 든든했다. 약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지원사격을 했고 마침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약사 출신이었다. 7월 26일 국회에서 식약처 업무보고가 있었다. 한 언론사에서 약사 출신 국회의원들과 식약처장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보도한 내용이 있다.

“겔포스엠 현탁액은 3개월 미만 영아가 복용해선 안 되는데 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보건복지부에 안전상비약 부적합 통보를 하지 않았나.”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상비약 품목에 겔포스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했다.”(류영진 식약처장)

“편의성만으로 여론을 조장하면 안 된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이에 맞춰 대한약사회도 목소리를 높인다. 강 위원장은 8월 2일 서울 서초구 약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그는 “상비약 논의를 위한 안전성 기준엔 임산부, 소아, 노인 등 특정 대상에 금기 사항이 있어선 안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며 “겔포스는 6개월 미만 영·유아들에게는 투약할 수 없는 약이므로 이 기준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는 약사회의 행동을 이기적이라 비판하며 반박 중이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그렇게 위험한 약 이면 일반의약품이 아니라 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해야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지 왜 편의점만에서 판매하면 안 된다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3개월 미만 아이에게 겔포스를 판매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편의점에서 약을 아예 팔지 말라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약사회가 문제 삼아온 의약품 오남용 정도도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6년 의약품 오·남용 사례 22만8939건 중 안전상비약과 관련된 부작용은 0.1%에 그쳤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약사들의 속내는 시중에서 잘 팔리는 약을 편의점에 뺏겨 매출이 감소될까 우려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이라고 강조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매출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편의점 CU의 상비약 매출은 2014년 28%, 2015년 15.2%, 2016년 24.2%, 2017년 19.7%의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약사들이 판매약 확대 중지를 주장하는 존슨앤드존슨의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은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의약품이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연대 사무총장은 “안전상비의약품은 일반의약품 중에서도 오남용 정도가 심하지 않아 국민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제품들”이라며 “약국은 편의점보다 숫자도 적고, 24시간 운영하지 않아 위급 시 소비자의 약 접근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판매약 오남용 “심하다 vs 아니다”

이들 단체는 일반의약품에 대한 약사들의 안일한 복약지도가 안전상비약 도입을 불렀다고 지적한다. 복약지도는 효율적이고 안전한 약 복용을 위해 약사가 환자에게 관련 사항을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팀장은 “경실련에서 2011년 상비약 판매 시 약사들이 복약지도를 하는지 조사한 결과,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결국 이런 약품들은 특별한 복약지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사회의 주장에 굴하지 말고 오히려 상비약 품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3개 품목만 편의점서 살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3만개, 일본은 2000여 개 의약품을 대형마트에서 살 수 있다.

1449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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