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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살까 말까ㅣ아직은 시기상조다] 소비자가 베타테스트 해주는 상황 

 

강준기 로드테스트 기자
정비 인력 부족하고 기술 무르익지 않아…충전소도 여전히 모자라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전기차 박람회에 LG전자는 주요 전기차 부품을 전시했다.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는 380㎞이고요, 약 4시간이면 배터리를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최신 전기차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혹자는 말한다. 지난 자동차 역사 10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드라마틱할 것이라고. 그만큼 전기차의 변화 속도는 무척 빠르다. 이제 한 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으며, 출퇴근뿐 아니라 장거리 여행까지 걱정을 덜었다.

사회적 분위기도 전기차에 우호적이다. 지난 몇 년 간 디젤 승용차 관련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산화탄소 많이 배출하고 불 나는 자동차로 디젤차가 찍히는 사이 전기차의 판매량은 꾸준히 늘었다. 몇몇 제조사는 점점 엄격해지는 환경규제에 못 이겨 이미 타월을 던진 상태다. 볼보자동차와 FCA는 모든 라인업에서 디젤 엔진을 제외하기로 발표했고, 폴크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도 자체적인 친환경 브랜드를 만들어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전기차 주요 부품 가격 떨어질 듯

그렇다면 과연 소비자가 선택할 다음 차는 전기차일까? 스마트폰을 켜면 다양한 매체에서 “자율적으로 주행하는 전기차가 조만간 등장하며, 한 달 연료비(아니 전기료)는 1000원이면 충분하다”며 전기차의 여러 장점을 어필하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선 “이참에 확 전기차로 바꿔버릴까”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전기차를 구입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여러 가지 문구 중 5할은 풍성한 보조금 혜택이다. 올해 환경부가 발표한 ‘2018 전기차 차종별 국고보조금’을 살펴보면, 쉐보레 볼트 EV를 기준으로 1200 만원이다. 여기에 지자체별 보조금도 쏠쏠하다. 서울이 500만원, 대구와 인천이 각각 600만원, 광주와 대전이 각각 700만원 정도다. 전남 여수가 1100만원으로 가장 화끈하다. 여기에 별도로 세금 감면 혜택도 있다. 가령 취득세 최대 200만원, 교육세 최대 90만원 등의 혜택이 있고, 개별소비세는 올해부터 면세한도가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늘었다. 예컨대 4779만원짜리 볼트 EV를 약 2000 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혹자는 앞으로 보조금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 “어차피 살 거면 혜택이 풍성한 지금이 적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조금 혜택이 전혀 없는 시대의 불안감만 가중시키고 있다. 보조금 지급의 가장 큰 이유는 시장 활성화. 마치 마감 10분 전 대형마트의 ‘지금 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과연 5년 후에도 전기차가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을까? 전기 모터와 배터리 등 주요 부품의 제조원가가 내려가면 차 값도 비쌀 이유가 없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기술도 구입을 망설이는 데 한몫한다. 최근 기아차가 니로 EV를 선보이며 각종 동호회에서 배터리 논란에 휩싸였다. 이 모델엔 SK이노베이션이 제작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간다. 당초 세계 최초의 양산형 NCM811 배터리를 얹어 항속거리를 크게 늘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NCM622 수준의 성능을 내는 제품이 들어갔다. 참고로 리튬-이온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에너지 밀도가 높아져 주행거리가 크게 늘어난다. NCM811 배터리는 숫자가 암시하듯 니켈과 코발트, 망간을 각각 8:1:1 비율로 섞은 제품으로, 현존하는 전기차가 가장 많이 쓰는 NCM622(6:2:2 비율)와 차이가 있다. 업계에선 아직 NCM811의 기술적 완성도가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배터리 제조사 입장은 또 다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미 NCM811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지만 고객사(자동차 제조사)의 성능 요구에 따라 혼합방식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선 아직 검증이 안 된 제품보다 이미 안정화된 배터리를 선호할 수도 있다. 어쨌든 아직까지 배터리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가솔린엔진처럼 무르익지 않았다는 단서이기도 하다.

전기차 보급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정비 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도 단점이다. 전기차에 문제가 생기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수 있다. 수리 방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고압 전류를 이용해 움직이는 차이기 때문에 구조 방식과 견인 방식이 다르다. 아직 국내 자동차 정비소 대부분에는 전기차를 견인해서 수리할 인원과 장비가 없다. 전기차 구입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전기차 완성도에 대한 불만도 있다. 전기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발견하고 회사에 문의하고 있다. 고객이 제품을 테스트해주는 ‘베타테스터’ 역할을 한다는 자조 섞인 불만이 나올 정도다. 제조사는 완벽한 제품을 내놔야 하는 의무가 있다. 완성도가 낮은 차량을 내 돈을 주고 구입한 다음 결함을 회사에 알려주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전기차 구입을 망설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프트웨어의 완성도에 있다. 전기차는 모터와 배터리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 제조사가 오랜 시간 다져온 하드웨어 기술보다 상식을 뒤엎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더 주목받는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기술이 좋은 예다. 주요 완성차 업체는 오는 2025년을 기점으로 100% 자율주행차를 양산할 계획이다.

참고로 자율주행의 기술 수준은 L0부터 L4까지 5단계로 나눈다. 레벨 0은 수동 운전, 레벨 1은 단독기능 자동화, 레벨 2는 통합기능 자동화, 레벨 3은 조건부 자율주행이다. 레벨 4가 궁극의 100% 자율주행. 현재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LKAS) 등이 들어간 자동차가 레벨 2 수준이며 아우디가 일부 레벨 3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레벨 4 수준의 모델이 조만간 등장하는데, 굳이 보조금 혜택이 줄어든다는 걱정 아래 아직 무르익지 않은 전기차 구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또 부족한 충전 인프라도 문제다. 최근 들어 아파트나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 충전기 달린 전기차 전용 주차장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이용객이 몰리는 시간에 수요가 폭발할 수밖에 없고, 설상가상 충전이 끝난 전기차를 이동시키지 않아 벌써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자율주행 기술 접목한 전기차 사볼 만

전기차 메이커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자율주행 기술과 접목하고 있다. 이를 테면 충전이 필요한 전기차는 소유자가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 스스로 충전소를 찾아 배터리를 충전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따라서 전기차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존 내연기관차를 살 때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심장이 엔진이냐 배터리냐를 넘어서 ‘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할 수 있을지’가 핵심 포인트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반쪽짜리 전기차를 당장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449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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