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호황 누리는 국내 석유화학] 저유가에 중국발 수요 증가 겹경사 

 

이창균 기자
올 상반기 28조원어치 사상 최대 수출 … 일부 비관론에도 공격적 투자로 대응

▎충남 대산에 있는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전경. 울산과 전남 여수까지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통한다. 석유화학 산업의 호황은 지역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 사진:충청남도 제공
경기 불황에도 유난히 잘나가는 산업이 있다. 비록 지난해 반도체 업종의 기록적인 호황에 묻혀 덜 알려졌지만, 석유화학이 그렇다. 석유화학 부문 국내 1위 기업인 LG화학은 지난해 전년(1조9919억원)보다 무려 1조원가량이나 증가한 2조928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사상 최대치를 2년 연속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만 보면 LG그룹 내 대표 계열사인 LG전자(지난해 2조4685억원)를 능가하는 수치다. 업계 2위 롯데 케미칼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2조929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3위 한화케미칼 또한 지난해 순이익만 8345억원으로 전년(7709억원)에 비해서도 증가했다. 이 회사는 2015년 순이익이 1804억원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도 기세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상반기까지 1조3633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유통업이 주력 분야인 롯데그룹을 이끄는 ‘숨은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같은 기간 LG화학도 1조3541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전년 동기보다 페이스가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탄탄하다. 이들 ‘빅3’나 일부 대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견·중소기업을 포함한 동종 업계 다른 사업자들도 나란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가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8월 23일 발표한, 올 상반기 누계 수출 동향 자료를 보면 이 기간 한국 석유화학은 249억6000만 달러(약 28조원)어치 수출에 성공하면서 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4.3%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국내 전체 제조업 매출 증가율은 9.9%. 이 가운데 석유화학은 14.5% 비율을 차지했다.

주요 기업들 사상 최대 실적 대잔치


이러다 보니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선 지역경제도 덩달아 활성화했다. 전남 여수가 대표적으로, 최근 대기업 3곳이 도합 5조원가량을 투자해 이곳 단지에 석유화학 공장을 각각 신설하기로 하면서 인근 부동산 시장마저 들썩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런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호황을 누리고 있어서다. 지난해 세계석유화학포럼(WPC)에선 “최소 2020년까지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이 안정적인 원재료 가격 유지와 수요 증가, 제한적인 신·증설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따른 시너지 효과 등으로 호황의 ‘수퍼 사이클’을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한국 석유화학의 최근 호황은 국제 유가가 하락해서 수년 간 낮은 가격대를 형성했기에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국내 기업들은 경쟁 상대인 에탄분해설비(ECC) 기반의 해외 기업들과 달리 주로 나프타분해설비(NCC) 기반이다. 원유를 통해 생산되는 나프타를 원재료로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 같은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이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나프타 가격도 오르면서 제품 원가가 상승한다. 이와 달리 유가가 떨어지면 나프타 가격도 떨어져 제품 원가가 하락하므로 수익성이 커진다.

여기에 글로벌 수요가 뒷받침되면서 수익성이 한층 커졌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올 1분기의 경우 세계적인 경기 호전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화학제품 수요가 확대됐으며, 중국도 영향을 미쳤다”며 “중국 정부가 환경 보호를 위한 규제 차원에서 단행한 폐플라스틱 수입 금지 조치로 신규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하면 PE나 PP 같은 화학 소재를 얻을 수 있어, 폐플라스틱 수입 금지는 PE·PP 수요 증가로 직결된다. 이희철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내 PE 수요가 연평균 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중국은 메탄올분해설비(MTO)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전반적으로 자체 PE·PP 공급량이 줄어든 상태라 한국으로선 수출에 또 하나의 호재다. 고부가가치의 범용 제품인 PE·PP는 현재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대표적인 먹거리다. 기업들은 여세를 몰아 공격적으로 국내외에서 신·증설에 투자 중이다. LG화학이 2조8000억원을 들여 여수에 NCC 등을 증설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국내외 설비 다각화에 힘쓰고 있는 롯데케미칼은 미국에서 ECC를 신설 중이다. 한화그룹 내의 또 다른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한화토탈은 9000억원을 들여 충남 대산에서 증설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재투자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유 업계까지 가세했다. 애초 정유사들은 본업 외에도 유가 급변이라는 리스크 관리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석유화학에 투자하고 있었지만, 업황이 좋아 차제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분위기다. 에쓰오일은 2023년까지 5조원을 투자해 연간 150만t 규모의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석유화학 공장을 울산 온산에 설립할 계획이라고 8월 22일 발표했다. 이에 앞서 현대중공업그룹 산하의 현대오일뱅크도 지난 5월 자회사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롯데케미칼과 공동으로 2조7000억원 규모 석유화학 신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편 창립 이후 지금껏 석유화학 사업에 투자하지 않던 GS칼텍스까지 뛰어들었다. 올 초 2조60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8월 9일 여수에서 설비 신설을 위한 투자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그 사이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올 들어 국제유가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화학제품의 수익성이 다소 떨어진 데다, 일각에선 호황 장기화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비관론이 나온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투자에 여념이 없다. 시장에서는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상 석유화학 산업은 ‘공급 과잉시 수요 둔화→기업들의 설비 감축→공급 줄면서 수요 증가→기업들의 신·증설→공급 과잉’이라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게 되는데, 이를 아는 기업들이 계속 신·증설 중인 이유는 업황이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요 증가세엔 이상이 없는 상황이므로 유가가 치명적인 ‘급등’ 수준으로 오르는 불상사만 아니라면 당분간 업황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분간 업황 호조 이어질 듯

한국 석유화학의 선전은 저유가 등의 호재를 만나 가능했던 측면이 있지만, 수십 년 간 쌓은 산업적 ‘기초체력’이 그만큼 탄탄히 뒷받침됐기에 더 가능할 수 있었다. 내수시장이 작으며 원유를 100% 수입해서 쓰는 한국은 애초에 미국·중동 등 산유국들이나 거대 내수시장을 갖춘 중국에 비해 환경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설비 운영시 에너지 효율화 노하우를 갖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다”며 에너지 관리 기술 수준도 강조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격언처럼 준비된 기회를 맞은 한국 석유화학이 과감한 재투자로 초장기 호황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1450호 (2018.09.1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