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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경제정책도 ‘공동연구’ 거쳐 세워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프로기사들, 선악판단 어려운 수에 대해 토론해 최적의 방안 도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8월 26일 오후 청와대춘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장 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한 최근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야당에서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정책이라며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에서는 아직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원래의 정책을 이어가기로 했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한 쪽은 좋은 정책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나쁜 정책이라고 하니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때 가서 실패로 판명된다면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리 정책의 타당성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바둑의 선악판단: 바둑에서도 수의 선악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수를 놓고 한 쪽은 좋은 수라고 하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전문가인 프로기사들조차도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선악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모든 수에 대한 선악판단이 간단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1도]에서 백6으로 흑의 귀에 다가서 백12까지 되는 모양은 많은 사람이 즐겨 두는 정석이다. 오랫동안 기사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두어지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정석이 흑백 양쪽 모두에게 동일한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흑은 15집의 현금 같은 소득을 얻은 데 비해 백의 소득은 7집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흑이 먼저 귀를 점령한 프리미엄, 즉 기득권을 고려하더라도 흑이 유리한 거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든다. 흑은 은행예금처럼 크게 불어날 가능성이 없지만 백은 변이나 중앙에 큰 집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2도]에서 인공지능바둑은 사람들의 이런 판단에 의문을 표하는 것 같다. 이세돌과 대결했던 알파고는 우변에 벌리지 않고 백1에 붙여갔다. 이런 수를 둔 것은 기존의 정석이 최선이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3도]에서 인공지능은 우리가 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정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흑1에서 5까지 되는 정석은 초보자도 알고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정석이다. 또한 프로기사들이 시합에서 가장 많이 둔 정석이다. 그런데 근래 등장한 인공지능바둑들은 흑3에 기어드는 수를 거의 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수를 인공지능은 좋지 않은 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바둑의 선악판단과 관련된 예를 살펴봤다. 극히 일부 예를 든 것인데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조차도 선악판단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둑의 노하우: 선악판단의 문제가 제기될 때 바둑에서는 어떻게 처리를 할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전후비교법이다. 이것은 문제의 수를 두기 전과 후의 전체 형세를 비교해 보는 방법이다. 그 수를 두기 전에는 백이 10집가량 유리했는데 두고 나서 보니 5집 정도 유리하다면 이 수는 백에게 좋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방법은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전략 등에도 적용되고 있다. 결과에 대한 성적표를 놓고 정책이나 전략이 좋았는지를 판단하는 수가 많다.

이 방법은 유력한데 단점이 있다. 사전에 미리 판단을 하지 못하고 사후에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점이다. 장독을 다 깨뜨린 후에 “이거, 좋지 않았네”라고 한다면 실패에 대한 보상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경영에서는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삼아 성공모델의 토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나 국가정책은 다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어떤 수의 결과에 다른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주변 상황에 따라 그 수가 좋은 수나 나쁜 수로 판명될 수 있다. 정책의 성공이나 실패에 다른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로기사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은 공동연구라는 방식이다. 여러 명이 모여 선악판단이 어려운 수에 대한 토론을 한다. 바둑은 혼자서 싸우는 경기지만 기사들은 함께 모여서 연구하는 방식을 즐겨 쓴다. 말하자면 개인의 두뇌보다 집단지성의 힘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기사들은 소소회나 충암연구회 등과 같은 연구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한다.

기사들이 바둑수에 관해 공동연구를 하면 대부분 결론이 난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분석을 하며 토론을 하다 보면 수의 선악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공동연구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문제의 상황에서 나올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비교해 최적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기사들은 이렇게 연구한 내용을 잡지에 발표하기도 하고 [충암연구회 보고서]와 같은 책을 내기도 한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연구보고서나 기업의 경영전략보고서와 같은 것이다. 이런 자료는 아마추어 바둑팬은 물론 외국의 고수들도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 전문가가 혼자 주장하는 내용보다 다수의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나온 내용이 더 유익하고 신뢰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공동연구에서 한 가지 암묵적인 철칙이 있다. 누군가가 다소 엉뚱한 주장을 한다고 해도 면박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의 어떤 연구회에서는 후배기사가 약간 이상한 의견을 내자 “그 따위 수가 어디 있어?”라고 선배 기사가 호통을 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동연구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인공지능에 의뢰: 전문가인 프로기사들이 집단으로 연구를 했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는 어려운 문제도 있다. 이럴 때는 당대 최고수에게 자문을 구한다. 비유하자면 경제 문제를 세계 최고의 석학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도 우리 언론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종종 하는 일이다. 최정상에 선 고수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최고 실력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프로기사들에게도 유익하다. 예전에 이창호 9단이 최정상일 때 자문을 구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의 탁월한 분석력과 판단력에 탄복한 경험이 있다.

요즘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나와 최고수의 역할을 대신해 준다. 바둑방송에서 AI 승부예측이라는 것을 두어 인공지능이 현재의 형세를 판단하도록 한다. 흑과 백이 이길 확률을 55% 대 45%와 같이 예측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예측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의 이런 기능을 살려 실력향상의 보조도구로 삼는 기사들이 있다. 특히 중국 기사들의 경우 인공지능바둑을 통해 자신의 수에 대한 평가를 받아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인공지능바둑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프로기사들이 사용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실정이다.

바둑수에 대한 선악판단을 하는 프로기사들의 노하우를 알아봤다. 새로운 정책이나 전략을 고려할 때 다수 전문가들의 공동연구나 최고수의 의견을 활용하면 선악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향후 바둑 분야처럼 인공지능의 자문을 받는 것도 유력할 것이다.

※ 필자는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50호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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