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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피해 당하지 않으려면] 폐업률 높은 업종은 할부로 결제해야 

 

김성희 기자
서울 강남구 헬스클럽 창업 2년 후 40% 문 닫아…“더 싸게” 무조건 할인은 의심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최근 서울 강남구의 대형 치아교정 전문 병원에서 진료비 124억원에 대한 ‘먹튀(먹고 튀다의 줄임말로 책임 회피의 의미)’ 피해가 발생했다. 이 치과는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이벤트 등으로 다수의 환자를 유치한 이후 5월부터 진료 인력 부족 등으로 정상 진료를 중단했다. 진료비를 낸 소비자들은 8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진료비 환급을 요구한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이 치과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했고, 신용카드사도 이를 반영해 관련 소비자의 항변권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다.

2년 전 서울 시내에 자리한 대형 헬스장에서도 약 20억 원에 달하는 회원권을 판매한 후 헬스장 대표가 잠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헬스장 대표는 문을 닫기 전날까지 회원권을 판매했고, 회원들에게는 헬스장 사정이 좋지 않아 문을 닫는다는 문자 메시지만 남겼다. 이 헬스장은 찜질방과 골프장까지 있는 대형 스포츠센터로 등록된 회원수만 400명이었다. 소비자들에게 장기 계약금이나 진료비를 받고 제멋대로 영업장을 폐업하는 식의 먹튀 피해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영세·부실 업체들이 법망을 피해 운영하거나, 고액 할부거래가 증가하면서 이와 관련한 소비자 피해 건 수는 매년 늘고 있다.

과열 경쟁에 폐업률 높아져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소비자상담은 ‘휴대폰·스마트폰’(2만4367건), ‘이동전화서비스’(2만1873건), ‘헬스장·휘트니스센터’(1만8061건) 순으로 가장 많았다. 휴대폰·스마트폰, 이동전화서비스의 소비자상담은 전년보다 각각 -13.8%, -2.8% 줄어든 반면 헬스장·휘트니스센터 상담은 1.4% 늘었다. 국외 여행 상담도 1만4237건으로 전년보다 11.3% 늘어났다.

잦은 폐업과 과장광고에 속아 물품을 산 후 환불을 받지 못해 카드사에 할부 철회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결제 철회·항변 건수가 가장 많았던 업종은 스포츠센터(20.3%), 피부미용·화장품(10.0%), 학원(6.7%), 병원(6.5%)의 순으로 나타났다. ‘피부미용 화장품’은 피부 마사지 업체가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금액이 차감되는 고액 회원권을 판 다음에 잠적하는 사례가 잦았다. 또 학원에 수강신청을 할 때 수개월치 학원비를 한꺼번에 내면 학원비를 할인해 주는데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폐업하거나 학원 관계자들이 연락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소비자 피해 증가는 동종 업종 간 과열 경쟁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가격 할인이나 덤을 주고 고객을 확보했지만 임대료·인건비 인상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져 결국 문을 닫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구별 점포밀도가 가장 높은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 말 전체 서비스업의 39.1%가 창업 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3년째에는 49.1%, 4년째에는 56.6%로 갈수록 폐업비율이 높아졌다. 강남구에서 창업 후 2년 넘게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비율은 62%에 그쳤다. 인테리어 업종은 2년 넘게 운영되는 비율은 53.6%였다. 두 곳 중에 한 곳은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병원의 생존율도 낮았다. 한의원은 43.8%, 치과 40.4%, 일반의원은 58.3% 등이다.

문제는 업장이 문을 닫아도 소비자 피해구제는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소비자 피해 접수건에 한해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일부 조정을 해주고 있지만, 업장 사업자에게 보상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업장이 폐업해도 피해보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체육시설·상조업체·피부관리실 등의 폐업에 따른 피해구제는 총 216건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3년 간 헬스장의 경우 피해구제 접수건수가 약 4000여 건에 달하지만, 이 중 환급을 받은 사례는 단 3명에 그쳤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헬스클럽에서 소비자가 계약 해지시 발생하는 위약금이나 환불 분쟁은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도주한 사업자는 사기죄에 해당해 법적 강제력이 없는 소비자원의 분쟁조정대상이 될 수 없다.

먹튀 피해 당하면 항변권 행사해야

이에 올 1월 김경진 의원은 체육시설 및 상조서비스업 등의 폐업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은 사업의 유형·규모에 따라 사업자들이 보험이나 공제 등에 가입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보상금을 미리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해보상금 지급 준비를 하지 않은 사업자에게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렇다면 먹튀 피해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폐업률이 높은 업종에서는 한꺼번에 결제하기보다 무이자 할부를 제공하는 카드로 분납하는 게 유리하다. 이자 수수료(8~21%)를 아끼면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먹튀를 방지할 수 있다. 할부 결제를 했다면 가맹점이 사전 고지 없이 폐업을 해도 비용을 환불 받을 수 있는 철회·항변권이 가능해서다. 항변권은 신용카드 할부 거래 이후 가맹사업자가 계약을 불이행했을 때 소비자가 카드사에 잔여 할부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소비자가 카드사에 직접 요구해야 한다. 홍정석 공정위 할부거래과장은 “소비자는 할부계약 때 할부거래법에 따라 계약서가 작성됐는지를 확인하고 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항변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시불로 결제한 경우나 3개월 미만 할부결제의 경우, 20만원 미만 거래금액인 경우에는 철회·항변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항변권을 노리고 소비자가 이를 악용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지급을 거절했던 잔여 할부금을 한꺼번에 납부해야 하고, 지연이자 등 추가 부담이 발생하게 되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소비자들이 업장을 선택할 때 조건이나 가격보다는 문을 연 지 얼마나 됐는지, 정상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지 등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며 “각 지자체에서도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폐업률이 높은 영업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1451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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