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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실기론] 올리자니 걱정, 유지하긴 곤란 

 

김성희 기자
2분기 경제성장률 0.6%에 그쳐...11월 금리 인상 가능성도

▎지난 8월 31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50%로 동결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예상된 결과였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3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50%로 동결했다. 지난해 11월 금리 인상 후 9개월째 동결이었다. 시장에서는 국내 경기와 고용지표가 부진하고 미·중 무역분쟁 등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무역분쟁과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신흥국 금융 불안 등 향후 성장경로상 불확실성이 높은 점,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아직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2.9% 성장 쉽지 않아”


연초만 해도 시장에서는 상반기 또는 늦어도 7~8월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낙관하기 힘든 경제상황에 금리 인상은 불발됐다. 빗나간 결과는 자본 유출 우려와 가계부채 리스크를 키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미국 정책금리는 현재 1.75~2%다. 미국이 한국보다 0.5%포인트 높은(상단 기준) 금리 역전은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미국 FRB가 예상대로 연내에 0.25%씩 두 차례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한·미간 금리차는 1%포인트로 벌어진다. 1%포인트는 많은 외환 전문가들이 자본 유출이 본격화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꼽는 격차다. 한·미 금리가 역전된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3조원이 넘게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렇다 보니 이주열 총재도 자본 유출과 가계부채 리스크 등을 고려해 인상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일형 금통위원이 7월 금통위에 이어 이번에도 나홀로 인상 소수의견을 내면서 오는 10월 혹은 11월 금통위에서 인상 가능성을 남겨뒀다. 대개 인상 소수의견이 있고 동결을 결정한 후 다음 번 금통위에서 인상이 결정되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11월 금리 인상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상황에서 ‘인상 소수의견→금리 인상’ 공식의 작동이 가로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금리 인상을 하기엔 경제 여건이 녹록하지 않아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6% 증가했다. 이는 전분기보다 0.4% 포인트나 낮다. 이는 투자 감소와 부진한 민간 소비의 영향이다. 세부 지표에서는 좋은 부분을 찾기 힘들다. 2분기 설비투자는 -5.7%로 2016년 1분기(-7.1%) 이후 가장 낮았다. 건설투자 역시 2분기 만에 최저수준인 -2.1%를 기록했다. 민간소비 증가율(0.3%)은 2016년 4분기(0.3%) 이후 18개월 만에 최저였다. 전망도 어둡다. 고꾸라진 투자는 회복될 기미가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0.6% 감소하며 5개월 연속 뒷걸음질 쳤다. 외환위기(10개월 연속 감소) 이후 가장 긴 연속 감소 행진이다. 7월 취업자 수 증가 폭은 5000명에 그치면서 ‘고용 쇼크’를 일으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경제지표들의 움직임을 볼 때 하반기 경제상황은 상반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한은이 금리 인상에 너무 신중을 기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금리 인상 실기론도 제기된다. 올 초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한은이 연내에 금리 인상을 한 차례 할지, 두 차례 할지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 인상이 가능할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만큼 여건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파트장은 “한은이 금리를 올리려면 적어도 심리지표가 개선되거나 미·중 무역 갈등이 완화되거나 하는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4분기로 갈수록 건설투자 하방 압력이 크고 성장의 안정성을 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은 안팎에선 내수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렸다가 통화정책 실패의 비난을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한은은 금리 인상 ‘실기’ 트라우마가 있다. 10년 전인 2008년 한은은 부동산 버블(거품)에도 금리를 인상하라는 요구를 묵살하다 1년여 만인 2008년 8월 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다. 하지만 한 달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빗발치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해 10월 금통위를 두 차례 열어 금리를1.00%포인트나 낮췄다.

금리 인상 실기론에 대한 한은의 초조함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졌다”며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는 발언도 인용했다. 최근 경제지표가 구조적 요인이나 외부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통화정책만으로 이를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물가가 대표적 사례다. 한은은 통화정책 제1원칙으로 물가목표제(2%)를 삼고 있어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금리를 인상하기 어렵다. 물가는 지난해 4분기 이후 계속 1%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체감물가는 뛰고 있지만 전기료 인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부 정책이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IB “금융 불균형 해소 위해 금리 인상 필요”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금리 인상 가능성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한은이 무작정 금리 동결을 고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은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금리 인상을 단행할 의지를 내비쳤다. 여기에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가계부채 등이 확대될 수 있는 점을 경계한다. 현재 금융부채가 실물경제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주열 총재는 “금융부채에 기초한 수익이 지속가능한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고, 정책당국 규제로 부동산 리스크는 다소 제어되긴 했으나 다른 부문으로 유동성이 전이되는 ‘풍선효과’가 상존하고 있다”며 “금리를 중립금리 수준 방향으로 소폭 상향 조정하면 금융 불균형 확대가 어느 정도 억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장의 눈은 한은이 어느 시점에 기준금리를 조정할지에 대해 쏠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오는 11월 인상설이 나오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모멘텀이 둔화된 경기 여건으로 금융시장 차원에서 기준금리 인상 기대는 크게 약화됐다”면서도 “글로벌 통상 갈등이 잠시나마 봉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시기인 미국 중간선거 이후, 11월 정도에 1회 금리 인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투자은행(IB)인 바클레이즈·씨티·골드만삭스 등도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준금리는 불확실성 증가에 따라 동결돼왔지만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 해소를 위한 금리 인상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안정 목표에 대한 정책 가중치가 높아진 상황”이라고 평가했고, 노무라증권은 “금리 인상 소수의견과 기자회견 내용을 고려할 때 하방리스크가 심화하지 않는 경우 올해 인상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예상했다. HSBC와 씨티그룹은 11월 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1452호 (201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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