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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천국 일본은 지금] 심각한 인력난에 직장인 부업 적극 보장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전문직 중심에서 다양한 직종으로 확산…독점금지법 위반 제재로 기업 갑질 방지

▎25개국에 287개 지점을 둔 글로벌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의 상하이 웨이하이루점. 세계적인 프리랜서 인구의 증가로 큰 건물이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공유 오피스도 활성화되고 있다. / 사진:위워크
선진국들은 직업군 내에서도 전문 분야가 세분화돼 있어 일찍부터 프리랜서 제도가 발달했다. 특히 직장인들도 부업 개념으로 프리랜서를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프리랜서의 천국’으로 알려졌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올해 초 직장인 대상 부업 촉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이들이 회사 일 외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부 금지사항을 제외하고 모든 부업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에 코니카와 로토제약 같은 일부 민간 기업은 직원들의 부업을 전폭 허용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일본 내에서 특정 회사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무기로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 인구가 지난해 기준 1122만 명에 달한다. 이 수치는 전년 조사보다 5% 늘어난 수치로 전체 상용근로자 6명 중 1명에 해당한다. 부업을 제외한 프리랜서만도 700만 명에 육박한다.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인 일본에서 프리랜서가 느는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인력난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말 기준 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유효구인배율)이 1.55배로 4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적어도 1.5개 이상은 있지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자유로운 프리랜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근로자의 일자리 선택 폭이 넓어진 데다 장시간 근로와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대표되는 직장을 떠나 개인의 삶을 적극 즐기는 세태가 확산된 결과로 분석된다.

아베 정부 ‘일하는 방식 개혁’ 통해 부업 독려

일본 내 프리랜서 인구의 증가는 업무 중개 사이트의 확산도 한몫했다. 프리랜서가 일자리를 주로 찾는 한 대형 사이트는 141개 직종에 걸쳐 수만개의 일자리를 알선하고 있다. 일이 필요한 사람은 사이트에서 업무 내용과 조건 등을 확인한 후 위탁받아 처리한다. 프리랜서는 일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고용계약이나 면접을 볼 필요도 없다. 보수도 시급제·일당제·완료제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어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이러한 구직·구인 정보를 스마트폰 하나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프리랜서의 증가는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근로자와 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기업의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실제로 도쿄 소재 한 IT 벤처기업은 사원이 170명에 달하지만, 업무의 상당 부분을 프리랜서에 의뢰하고 있다. 이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고객 방문과 신규 사업개발 등 매출에 직결되는 전문적인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을 모두 프리랜서에게 위탁한다”며 “직원들이 업무 외적인 일에 시간을 빼앗겨 초과 근무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해결해 더욱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리랜서 위탁으로 인해 직원 채용 때 발생하는 비용이나 직원 교육, 유지 관리비 등이 줄어 결과적으로 매출이 5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아베 신조 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노동 방식의 다양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펴는 것도 프리랜서 보호책과 연결된다. 내년부터 잔업이 연 720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순차적으로 실시할 예정이어서 기업들의 프리랜서 활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랜서는 기업과 고용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기준법·노동조합법·최저임금법 같은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하루 8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않는다. 후생노동성은 기업이 프리랜서와 구두가 아니라 서류로 계약을 맺게 해 일의 내용과 보수 지급 문제를 명확하게 만드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작업별로 최소한의 보수를 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올 들어서는 작업별로 프리랜서의 ‘최저 보수’를 보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종의 프리랜서를 위한 최저임금제를 마련하는 식이다.

최근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이 프리랜서에게 보수 조건을 명시하지 않거나 경쟁사와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면 독점거래금지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프리랜서가 지나치게 낮은 보수를 받는 일이 발생하자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노동기준법 등에 의해 보호받는 회사원에 비해 프리랜서는 기업과의 근로조건 협상 등에서 입지가 약한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초 독점금지법에 저촉될 갑질 유형을 기업들에 제시하고 시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악질적인 기업은 적발해 제재에도 나선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정보기술(IT) 엔지니어나 통역 등의 분야에서 프리랜서가 크게 늘었지만 이들에 대한 노동계약은 여전히 불합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쟁사로부터 일감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 실제보다 보수를 부풀려 일감을 맡기는 행위, 비밀 보호를 이유로 다른 일감을 맡지 못하게 하는 행위 등이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고, 이는 독점 금지법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프리랜서의 절반 이상이 사회보장 즉 의료보험과 연금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 프리랜서를 위한 보험도 생겼다. 지난해 발족한 ‘일반 사단법인 전문가 및 커리어 프리랜서 협회’는 회원을 대상으로, 연회비 1만엔에 복리 후생 서비스와 배상 책임보험을 들어준다. 손해보험 ‘재팬 니혼 고아’는 30세 이상의 프리랜서들에게 월 1500엔(약 1만5000원) 수준의 보험료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할 수 없게 됐을 때 월 20만엔을 보상해 주는 상품을 출시했다. 프리랜서 시장이 커지자 이를 위한 기업 상품과 협회가 등장하고 이것이 프리랜서의 고민을 덜어주며 시장은 계속 커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박스기사] 미국의 프리랜서 제도는 - 프리랜서가 CEO로도

미국의 경우 일종의 프리랜서 소득세가 있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계약 상대방이 세금 관련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프리랜서 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공동의료보험에 가입시킨다. 미국의 프리랜서 노동조합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결성됐다. 의료보험 등 복리후생에 대한 부담이 큰 미국에서는 복지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 고용을 선호하는 편이다. 미국 프리랜서 협회와 온라인 구직사이트 ‘이랜스’가 공동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 근로자의 34%에 해당하는 5300만 명이 프리랜서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들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경제 규모는 연간 약 7150억 달러(약 803조원)에 이른다. 특히 35세 미만 젊은층의 프리랜서 비율이 높은데(38%), 오는 2020년에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프리랜서가 차지하는 비율이 40%대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능력 우선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에서는 프리랜서로 시작해 기업의 CEO나 요직에 오르는 일이 빈번하다. 프리랜서가 오히려 개인의 능력을 시장에 부각하기에는 적합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증가하고, 온라인 기반의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프리랜서 인구는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브스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 불리는 창업 노동인력을 필두로 프리랜서들의 수입도 크게 증가했다”며 “기계가 대신하는 단순 업무에 필요한 노동인력은 계속 줄어드는 대신 전문성을 띤 프리랜서의 입지는 점차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452호 (201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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