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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자는 어디에 투자할까] 1년간 주식 팔고 부동산 늘리고 

 

황정일 기자
부동산자산 비중 갈수록 커져...간접투자 시장에도 뭉칫돈

불확실성의 시대. 한국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성장 폭이나 질은 썩 좋지 않고, 고용 상황도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소득까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내수 경기는 쪼그라들고 있다. 불황의 늪에 빠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슬아슬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자산을 지키기 위해, 혹은 늘리기 위해 어떻게 할까.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들은 지난해부터 금융자산은 줄이고 부동산과 예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내 기업의 실적 악화를 우려해 주식을 대거 내다 팔고, 대신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안정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도 있지만, 치열한 노력으로 재산을 모으거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각종 자산관리로 부를 축적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의 최근 자산관리 방법이나 인식 등을 분석하면 추석 이후 하반기 자산관리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자산 비율 절반 넘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는 주택이나 상가·토지 등 부동산 자산이 53.3%로 가장 많다. 예·적금과 주식 등 금융자산은 42.3%다. 이 같은 패턴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상반기 낸 ‘2018 부자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부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 중 부동산이 절반인 50.6%를 차지했다. 총자산 50억원 이상인 부자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54%에 이른다. 상가 등 상업용부동산이 28억9000만원(46.4%)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거주용 주택 15억8000만원(25.4%), 토지 10억5000만원(16.9%), 투자용 주택 7억1000만원(11.3%) 순이다. 상업용부동산과 투자용 주택의 비중을 합치면 거주용 주택의 2배가 넘는다. KB금융지주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다. 주택·아파트·오피스텔 비중이 45.9%로 가장 많았고, 빌딩·상가가 21.3%, 투자용 주택·아파트·오피스텔이 20.6%다. 빌딩·상가 비중은 부자의 총자산이 많을수록 크게 늘어났다. 자산 100억원 이상 부자의 부동산 포트폴리오에서 빌딩·상가 비중은 39.3%로 거주용 주택(28.8%)과 투자용 주택(18%)보다도 높았다. 부자는 자산이 더 늘어날수록 자산의 상당분을 빌딩이나 상가 매입에 쓰고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절대적인 비중 자체가 부동산에 쏠린 것만이 아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금융자산에서 부동산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자들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2009년 49%에서 2013년 44%까지 떨어졌다가 2014년 47%로 올라선 이후 매년 상승하는 추세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KB금융지주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자산의 비중은 2016년 51.4%였지만 지난해에는 52.2%, 올해에는 53.3%로 상승 추세다. 이와 달리 금융자산 중에서는 주식 비중이 크게 줄었다. 특히 KB금융지주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 비중은 2014년 이후 꾸준하게 증가하다가 올 들어 급격히 떨어졌다. 2014년 13.5%였던 주식 비중은 2015년 16%, 2016년 17.2%, 2017년 20.4%로 늘었지만 올 들어서는 11.8%로 반토막 났다. 한국 부자의 주식 투자 비중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이유는 글로벌 시장 변동으로 인한 리스크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예구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분쟁, 신흥국 경기 둔화 등의 영향 때문에 주식시장에 대한 부자들의 기대감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록 주식 비중은 줄었지만 주식은 여전히 부자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자산관리 방법이다. 부자들은 평균 3억6000만원 정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약 3400만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10배 넘는 수준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투자전략이다. 한국 부자는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투자방법으로 알려진 ‘분산 투자’ 대신 한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몰빵 투자’을 선호한다. 5개 이하 종목을 보유한 비율이 10억~50억원대 부자에서는 76.8%에 달하고, 50억원 이상을 가진 부자에서는 59.1%로 나타났다. 여러 종목에 주식을 투자했더라도 전체 투자자산 중 절반 이상의 금액을 한 종목에 집중시킨 것이다. 투자 대상인 종목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미래가치를 주목한다. 성장주에 투자한 부자가 전체의 62%에 달한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는 가치주 투자는 42%에 불과했다. 또 배당주(45%)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과 달리 테마주 보유율은 18%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향후 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는 종목은 뭘까. 한국 부자는 첫손으로 부동산을 꼽았는데, 부동산에 투자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종전에 비해 낮아졌다. 부동산이 가장 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수익률이 낮아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해 출범과 함께 각종 부동산 규제책을 통해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부자들은 이 같은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이 시간이 갈수록 효과를 낼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남수 신한PWM도곡센터 PB팀장은 “주식 등에 비하면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기대감이 큰 편”이라면서도 “진보 정권의 각종 부동산 규제책으로 과거와 같은 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투자를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이지만 수익률은 보수적으로 갖고 가는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사모펀드

부동산과 함께 부자들이 꼽은 향후 유망 투자처는 펀드·신탁 등 간접투자 상품이다. 이 중에서도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사모펀드에 기대감이 컸다. 주로 기관이나 부자 중심의 투자가 주를 이루는 사모펀드는 실제로 최근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모펀드 설정액은 308조6653억원으로 공모펀드(232조3378억원)보다 76조원 이상 많다. 사모펀드 중에서는 부동산형, 특별자산형, 혼합자산형의 설정액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형은 2015년 말 설정액이 33조9786억원이었는데 올 상반기에는 64조6404억원으로 급증했다. 2년 6개월 만에 30조원의 뭉칫돈이 몰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떠오르고 있는 건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이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모펀드는 이익이 발생할 만한 어떠한 투자 대상에도 투자할 수 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투자 활성화 정책도 사모펀드 시장이 커지는 이유”라며 “글로벌 시장이 불안정한 만큼 다양한 운용전략과 기민한 움직임이 가능한 사모펀드가 강점을 발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452호 (201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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