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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택지 개발 실효성 논란] 30만 가구 신규 공급 효과 있을까?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정부 “당장 주택 수급 문제 없어”...시장 “주택 수요 추정치 과소평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9월 21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서울 주택 수급이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정부의 수급 안정 진단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최근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은 원활히 공급 중이다. 향후 5년 간 서울·수도권의 주택 수급도 안정적일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9월 21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이날 330만㎡ 이상 규모의 신도시 4~5곳을 신규 조성키로 했다. 신도시와는 별도로 수도권 공공택지 확보를 통해 26만5000가구를 추가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날 내놓은 신도시 등 공공택지 개발이나 서울 그린벨트 해제 요구는 당장이 아니라 2022년 이후를 겨냥한 중장기적 대책이라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개발에 보통 10년이나 걸리는 공공택지 개발을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의 주요 방안으로 내놓은 배경이다. 김 장관은 “최근 서울 집값이 급등한 것은 주택 수급 문제가 아니라 비이성적인 투기 수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9월 13일 서둘러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서 세제·금융에 집중한 것도 이 같은 ‘비이성적 투기’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정부의 수급 낙관론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이면 가격이 급등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급 관계를 나타내는 지표가 가격인데 가격이 오른다는 건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라며 “집값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변수도 수급”이라고 말했다.

수급 괜찮은데 집값 올라?


정부가 현재의 주택 수급을 자신하는 이유는 뭘까.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인허가, 분양, 준공 물량이 지난 10년(2008~2017년)에 비해 최근 3년(2015~2017년)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연평균 준공 물량은 지난 10년간 평균 20만6000가구인데, 최근 3년은 평균 24만8000가구로 4만2000가구 늘었다. 서울도 같은 기준으로 보면 6만5000가구에서 7만4000가구로 늘었다. 반면, 정부가 제2차 장기(2013~2022년) 주거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2022년까지 추정한 연평균 신규 주택 수요는 수도권 22만1000가구, 서울 5만5000가구다. 이에 비해 앞서 분양된 물량,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진행 정도, 인허가 전망 등을 고려한 공급 물량은 연평균 수도권 26만3000가구, 서울 7만2000가구로 예상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당장은 수요(서울·수도권 연평균 27만6000가구)에 비해 공급(서울·수도권 연평균 31만3000가구)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요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른바 ‘투기수요’를 수요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문제는 실수요와 투기수요의 경계를 구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가 집을 사면 실수요고, 2주택 이상 다주택자가 집을 사면 투기라고 본다. 그런데 2000년대 초·중반 서울·수도권 집값이 급등세일 때 무주택자의 주택 거래 비중은 69%로 최근 몇 년간의 평균인 57%보다 훨씬 높았다. 당시 정부는 투기가 극심하다며 ‘버블(거품)’ 경고를 했는데, 현 정부의 시각대로라면 2000년대 초·중반 주택 시장은 무주택자가 투기를 주도한 셈이 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더 나은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욕구 등을 감안하면 투기수요와 실수요를 구분하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추정 수요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는 2013년 수립된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의 지난해 수정치를 기준으로 했다. 수정치는 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립 시기와 비교해 달라진 경제 환경을 반영했지만 2013년 틀에서 미세 조정된 정도다. 신규 주택 수요는 일반가구 증가와 소득 증가, 주택 멸실에 따라 신규로 발생하는 구매력이 있는 주택 수요를 말하는데, 주거종합계획에 따르면 서울의 연평균 추정 수요는 5만5000가구다. 문제는 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이 수도권 주택시장이 극도로 침체했을 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계획은 2013년 말 나왔는데, 그해는 정부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며 공급 축소를 서두르던 때였다.

실제 당시 서울 집값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 약세를 보였다. 이 때 서울 집값은 평균 6.5% 내렸다. 노원구가 12%로 가장 많이 내렸고, 강남구도 11% 떨어졌다. 수도권도 반짝 상승세를 보인 2011년을 제외하고는 2013년까지 약세를 보였다. 2010~2013년 연평균 서울 주택 매매거래량은 9만9000여 건으로 2006~2009년 연평균 거래량(17만7000여 건)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는 당시 “주택가격 상승기(2000년대 초·중반)에 도입된 수요억제-공급확대 정책 기조가 시장 위축기에도 지속함에 따라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시장 침체가 가속되고 있다”며 앞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보금자리주택 공급 축소 등을 추진했다.

2013년 나온 계획상 추정 수요가 얼마나 적은지는 그 이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 때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서울 주택 수요를 연 10만 가구로 설정(2008년 9월 ‘도심 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방안’)했다. 2013년보다 무려 4만5000가구가 많았다. 수도권 수요는 30만 가구였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공급 확대 대책을 발표하면서 추정한 수요하고 같다. 이명박 정부는 “외곽보다는 수요가 많은 도심(재개발·재건축 등), 도시 근교(그린벨트, 산지·구릉지 등)에 대량 공급해 근본적 시장 안정을 달성하겠다”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와 보금자리주택 대량 공급에 나섰다. 그러면서 연간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연간 10만 가구가 성공적으로 추진됐다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에는 90만 가구가 공급됐어야 했다. 수도권 공급량은 270만 가구다. 하지만 실제로 서울에 공급된 주택은 64%인 57만 가구에 그친다. 서울·수도권 전체로 봐도 67%인 182만 가구가 들어서는 데 그쳤다.

탄력적인 수급 정책 세워야

2000년대 집값 급등기 끝 무렵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예상한 수요를 현시점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2008년 이후 연간 늘어난 일반가구수가 줄고 소득증가율도 떨어졌다. 2008년 이전엔 서울에서 한 해 늘어난 일반가구수가 4만 가구가 넘었다. 소득증가율도 연간 4~5%대에서 근래엔 2~3% 선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2013년 추정 수요보다 많이 잡는 게 안전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사이 서울 주택 수요의 질이 달라지기도 했다. 주택 유형 중 수요가 가장 많은 아파트가 늘지 않았다. 아파트 비중이 2010년 58.8%에서 지난해 미미하게 줄어든 58.1%다. 반면 새집으로 갈아타려는 수요는 훨씬 늘었다. 지은 지 30년이 지난 주택 비중이 7%에서 20%로 높아졌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정책은 멀리 보는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장 단기 전망에 오락가락해서는 안된다”며 “탄력적인 수급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a

1453호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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