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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에 스며든 자율주행] 공장·물류창고·농장에서 이미 맹활약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도로보다 통제된 환경·공간에서 기능 최적화…기술 성숙기 거치며 더욱 발전할 듯

▎벤츠가 유럽에서 테스트 중인 자율주행 트럭의 모습.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은 항공기 견인용 로봇인 ‘택시봇’을 개발해 적용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여객기의 앞바퀴에 연결하는 견인용 차량 로봇으로, 승객이 탑승을 끝마친 비행기를 활주로 앞까지 끌고 간다. 제트엔진을 돌려 활주로 앞까지 이동할 때 연료소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했다. 현재 보잉사의 737 항공기 전체, 그리고 에이버스사의 A320 전체 기종에 대해 인증을 마쳤다. IAI 관계자는 “이 시스템은 자율주행 기능도 가지고 있어 항공기의 원활한 이동과 배치를 무인으로 가능하도록 한다”면서도 “공항안전규정 때문에 지금은 조종사의 콘트롤에 따라 항공기를 움직여주는 ‘링크’ 기능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기능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교통법도 정비해야 하고 보험 적용도 애매하다. 하지만 산업현장은 다르다. 자율주행은 현실세계의 도로에선 미완(未完)의 기술이지만, 주변 환경을 조금만 바꿔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이순간 당장 매우 유용한 기술로 변모한다. 일반 도로보다 혼잡하지 않고, 돌발상황도 거의 없는 곳. 정해진 일을 척척해 내기만 하면 최적의 장소. 바로 산업현장이다.

자율주행차도 자율이동로봇의 일종


▎지난 5월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무인 제품 운반 도우미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자율주행자동차를 기술적 범주에서 구분하면 사실 ‘자율이동로봇(AMR:Autonomous Mobile Robots)’이라는 큰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크기나 이동 형태가 바뀌었을 뿐, 바퀴를 달고 스스로 이동하는 로봇이다. 이런 자율이동로봇을 우리는 주변에서 이미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로봇이다. 최신형 청소로봇은 집안 구조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청소를 해야 할 최적의 과정을 판단한다. 어딘가 가서 부딪혀도(자동차 입장에선 사고를 낸 것과 같다) 가볍고 힘이 약해 큰 문제가 없고, 문을 닫아 두면 집안 어디선가 혼자 움직인다. 설사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어도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그만이다. 기술적인 한계를 가정 공간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가둬두는 것으로 해결한 경우다.

이런 로봇을 가장 잘 활용한 경우로 물류시스템을 들 수 있다. 대규모 물류 업체들은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 자율이동로봇 시스템을 도입, 물류의 흐름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아마존이다. 시애틀 인근에 자리한 듀폰트시(市)에는 크기 37만2300㎡에 달하는 초대형 물류창고가 있다. 축구장 46개 크기에 달하는 이 초대형 창고에서 물품을 넣고 꺼내는 것을 사람이 일일이 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활약하는 건 이런 자율이동로봇이다. ‘키바’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로봇은 2000만종의 물품이 쌓인 복잡한 창고 안에서 주문받은 상품을 순식간에 찾아낸다. 로봇이 물품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두면 자동으로 물품이 배송돼 포장된다. 직원 1000명 정도가 있지만 하는 일은 혹시 물품이 잘못 들어가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키바끼리는 서로 센서로 신호를 주고 받고, 모든 위치를 중앙 컴퓨터가 통제하기 때문에 서로 부딪힐 일도 없다. 물류창고 내부라는 제한된 환경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학습과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도심에서 키바처럼 자율주행차를 통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물류창고 환경에서 최적의 이동수단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한 곳은 적지 않다. 영국 온라인 수퍼마켓인 ‘오카도(Ocado)’가 대표적이다. 영국 남부 앤도버(Andover) 인근의 오카도 물류시설에서는 직사격형 모양의 로봇을 수백대 운영하고 있다. 이곳 물류시설은 설계가 다소 특이한데, 커다란 상자 형태를 연이어 붙인 형태로 만들고, 로봇이 그 틈새를 이동하며 물품을 집어 나른다. 분당 50개 상품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세계적 유통 업체로 발돋움한 중국의 ‘알리바바’도 아마존이나 오카도 못지 않은 물류시스템을 갖췄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동닷컴(JD.com)은 상품 배송을 위한 이동 로봇을 도입했다. 독일 퀼른에 위치한 UPS 물류 허브에서도 자동상품 분류기를 투입해 시간당 19만 건의 패키지를 처리하고 있는 등 자율이동로봇을 이용한 물류시스템은 확대일로에 있다.

자율이동로봇 기술이 적용되는 곳은 적지 않다. 주변 상황에 맞게 조금씩 기술을 변형해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병원 내부를 이동하면서 의약품이나 혈액을 배송하는 운송용 로봇, 공항이나 쇼핑몰 내부를 돌아다니며 각종 정보를 보여주는 안내용 서비스 로봇,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며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감시하는 경비 로봇도 있다. 물류시스템과 유사하면서도 실생활에 가장 유용한 시스템으로 ‘자동주차로봇’을 들 수 있다. 보안 장비 제조사인 하이크비전(Hikvision)이 지난해 초 발표한 ‘파킹로봇’은 아마존 로봇 키바와 비슷한 기능을 갖췄다. 차량이 주차장에 입고되면 바퀴 밑으로 들어가 차량을 조금 들어 올린다. 자동차를 업어 올리는 셈. 그 후 원하는 주차위치에 자동으로 집어넣는다. 이 로봇은 전후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고 제자리 회전까지 할 수 있어 좁은 주차공간에서 차량을 옮겨 넣는 데 적합하다.

농장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며 씨를 뿌리거나 과일을 수확하는 농업용 로봇도 자율이동로봇 범주에 들어간다. 농업로봇은 특히 잡초 제거, 과실 수확, 농약 살포, 농지 개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동력이 부족한 농업 분야에서 자율이동로봇 기술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레벨 3와 레벨 4 수준의 자율이동 트랙터가 출시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대 연구팀은 로봇 카우보이인 ‘스웨그봇(Swagbot)’을 개발해 농장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농장내 늪지, 배수로, 통나무 등을 피해갈 수 있으며 험지도 주파할 수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노동력 부족한 농업 분야에서 유용

전문가들은 자율이동기술이 승용차와 접목돼 도로에 들어서기에 앞서, 이처럼 다양한 산업 전반에서 기술 성숙기를 충분히 거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ID테크엑스(IDTechEx) 리서치는 최근 자율이동로봇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다양한 형태의 자율이동로봇이 ‘통제된 환경’에선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한 국내 로봇기술 전문가는 “로봇은 주변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때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다”며 “창고나 농장, 주차시스템 등은 주변 환경이 제한적이고 어느 정도는 환경 자체를 로봇에 적합하게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도로용 자율주행차에 비해 실용화가 먼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454호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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