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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유가 상승으로 정유·조선주 매력 커져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
수요보다 공급 줄어 오름세…국제유가, 2008년 고점 넘기는 어려울 듯
지난 1년 간 가격이 많이 오른 상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석유다. 지난해 10월 이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가 41%, 북해산 브렌트유는 43% 올랐기 때문이다. 유가가 이렇게 상승한 건 세계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늘어난 반면 공급은 감소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해당국의 원유 생산이 줄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이를 메우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지만, 증산보다 기존 합의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 합의대로라면 현재 140%대인 감산 이행률을 올해 연말에는 100%로 낮춰야 한다. 공급 둔화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가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베네수엘라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지금보다 30만 배럴가량 줄어들 걸로 전망하고 있다. 이란은 제재가 시행되기 전인 4~8월에 이미 원유 수출이 50만 배럴 정도 줄었다. 다른 나라에서 생산을 70만 배럴 늘리더라도 원유 시장에 공급 과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 힘이 국제유가를 4년 내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에 배럴당 100달러 넘기도


2004~2008년에도 유가가 급등한 적이 있다. 사상 최초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50달러에 육박했다. 당시 유가 상승은 신흥국의 수요가 증가한 게 원인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이 세계 경제에 본격 등장하면서 2008년에 하루 평균 석유 수요가 전년에 비해 120만 배럴 늘었다. 선진국의 수요 감소분 24만 배럴보다 5배나 많은 양이었다. 그 영향으로 중국이 세계 석유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6%로 미국에 이어 2위가 됐다.

공급도 문제가 있었다. 1985년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로 떨어진 후 2003년까지 18년 동안 10~20달러 사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낮은 유가가 계속돼 산유국들이 생산시설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 그 때문에 신흥국 수요 증가에 대처할 수 없었고 영향이 가격에 그대로 나타났다.

2001년 이후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대량 공급한 것도 유가 상승의 원인이 됐다. 2007년 말에 원유시장에 1000억 달러가 넘는 헤지펀드 자금이 투자된 걸 비롯해 원유 관련 파생상품으로 자금이 몰렸다. 선물거래 규모가 실물거래 규모의 3~4배를 넘을 정도였는데 투기 수요도 유가를 올리는 역할을 했다.

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될까? WTI는 배럴당 80달러, 브랜트는 100달러를 넘기 힘들 걸로 보인다. 2008년보다 고점이 낮은데 당시보다 수요가 약한 반면 공급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8년에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2%대였다. 인도·러시아·브라질도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신흥국 전체의 평균 성장률이 선진국보다 6%포인트 이상 높았다. 지금은 중국의 성장률이 6%대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신흥국은 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과거에 비해 석유 수요가 늘어나기 힘들다.

공급은 반대로 늘었다. 미국 세일오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8년에는 세일오일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개발 초기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산유국의 대응 능력도 향상됐다. 고유가 시대에 생산시설을 늘린 영향으로 유가가 오를 때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됐다. 이런 변화를 감안할 때 유가가 과거 고점을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게 맞다.

유가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은 지금이 시작 단계다. 유가가 오르고 시간이 상당히 지난 후에 기업 실적이 바뀌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제품의 원가를 올리는 요인이어서 주식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실은 달랐다. 일정 수준까지는 유가와 주가가 같이 오르지만 그 점을 지난 이후에는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004~2008년에도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상승한 2007년 10월까지는 주가가 같이 오른 반면 80달러를 넘은 후부터는 주가가 하락했다. 이는 유가 상승의 이면에 경기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외 경기 회복으로 유가가 상승할 경우 낮은 가격에서는 경기 회복의 영향력이 유가 상승을 압도하지만 가격이 높아지면 그런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유가와 주가의 관계가 괜찮다. 유가의 출발점이 낮은 데다, 경기도 좋아 둘이 같이 상승했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둘의 관계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WTI 기준 배럴당 80달러는 2007년에 주가와 유가의 방향이 바뀐 분기점이다. 이번에는 과거보다 상승 요인이 약하다.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보다 공급 감소가 가격을 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력이 약한 만큼 분기점이 빨리 올 수 있다. 당분간 유가가 고점에서 횡보하고 주가도 비슷한 형태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2008년 유가가 오를 때 5개의 투자 유망 그룹이 있었다. 하나는 해외 자원 개발주다. 종합상사처럼 석유 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이 해당 그룹에 들어가 있었는데 유전 가치 상승에 초점이 맞춰졌다. 두 번째는 원자력이나 태양광, 풍력 같은 대체에너지 관련 종목들이다. 고유가로 대체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늘고 기술 개발이 빨라질 거란 기대가 작용했다. 세 번째는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주다. 2차 전지와 자동차 경량화가 관심사였는데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이 바뀔 수 있음에 주목했다. 네 번째가 정유주다. 정유회사의 이익은 정제유와 원유 간 가격차에 따라 좌우된다. 유가가 오를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유망했다. 마지막이 조선주다. 해양 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유가가 높아질수록 해당 부문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유가와 주가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

이번에는 유가 상승에도 자원 개발이나 대체에너지 관련주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 자원 개발 역량이 높지 않다는 게 드러났고, 대체에너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과 관련한 투자는 정유와 조선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정제시설을 고도화한 덕분에 우리 정유사들의 정제 마진이 2007년보다 커졌다. 지금은 배럴당 50달러대의 유가에서도 정유사가 1조원이 넘는 이익을 거둘 정도다. 유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없을 정도로 유가가 급등하지 않는 한 정유주의 이익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두 달 사이 조선주 주가가 40% 가까이 올랐다. 6월까지 주가가 하락한 영향이 있지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어떤 업종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지난 몇 년 간 해양 플랜트 부문은 조선사들에게 골치 거리였다. 대규모 적자가 발생해 최근까지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으로 해양 플랜트 부분이 얼마나 좋아질지 알 수 없지만 최악의 상황을 지난 건 분명하다. 주가는 최악의 상황을 빠져 나올 때 가장 빠르게 움직인다. 지금 조선주에 적용되고 있는 논리다.

1454호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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