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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증시로 본 ‘결정적 순간’(2)] 보호무역 그리고 1987년 블랙먼데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이단아 대통령, 국제사회 갈등, 금리 급등, 증시 장기 상승 피로감 등 당시와 현재 상황 닮아

1987년 뉴욕의 가을은 스산했다. 물가가 스멀스멀 오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더구나 무역수지 적자도 개선될 조짐이 없었다. 국제 정세도 불안했다. 미국은 이란 유정을 폭격했고, 이란은 미국기를 게양한 쿠웨이트 유조선을 공격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서독의 금리 인상을 맹비난하면서 서구 사회의 분열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시장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7년 10월 미국의 장기 금리(10년 만기 국채수익률)는 2년 여 만에 처음으로 10%대에 올라섰다. 1986년 말의 금리 수준이 6.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큰 폭의 금리 상승세가 단기간 내 나타났던 셈이다. 주식시장의 조정은 더 극적이었다. 다우지수는 1987년 10월 6일 3.4% 급락했다. 그 해 들어 가장 큰 폭의 하락세였다. 투자자들은 깜짝 놀랐지만 시장의 발작은 더 이어졌다. 10월 14일에 3.8%, 10월 18일에 4.6%나 하락하는 패닉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끝은 아니었다. 한 주를 시작한 10월 22일 월요일, 다우지수는 22.6%나 폭락했다. 1929년 대공황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기록되지 않았던 미국 증시 역사상 최악의 폭락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전무후무한 급락세였다. 후세에 블랙먼데이라 불리게 된 1987년 10월의 네 번째 월요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주가 폭락 사태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미국 해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퍼스트레이디 낸시 여사의 문병을 가던 중 기자들과 만나 “미국 경제는 건전하다”고 말했지만 창백한 얼굴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 해 여름에 취임한 새내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주가 급락에 놀라 화급히 연방기금금리를 내렸지만 블랙먼데이의 여진은 10월 말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상 최악의 주가 급락 사태였던 블랙먼데이의 발생 원인과 관련해 권위있는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식시장의 장기 상승에 따른 피로감, 프로그램 매매에 기인한 기계적 매도세 확대, 금리 급등에 따른 충격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하나도 블랙먼데이를 결정적으로 설명하는 논리가 되지는 못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같은 결정적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다우지수가 하루에 22%나 급락했던 것이다.

한 가지 단일 요인으로 1987년 블랙먼데이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장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현재 상황과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워싱턴의 주류가 아닌 이단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과 보호무역주의, 국제 사회와 미국의 갈등, 인플레이션과 금리 급등, 주식시장의 장기 상승에 따른 가격 부담 등 미국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너무도 유사하다. 특히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경제 전반의 비효율을 초래해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향후 장세를 조망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1987년과 2018년의 유사점은 3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두 시기 미국의 정치적 리더쉽이 비슷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매우 논쟁적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과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두 공화당 대통령의 정책 기조는 대단히 비슷하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사용했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80년 대선 레이건 캠프의 탑슬로건이기도 했다. 트럼프와 레이건 시대는 다섯 가지 점에서 닮았다.

첫째, 대통령 자체의 독특한 캐릭터이다. 트럼프가 미국 정계의 이단아였던 것처럼, 레이건 대통령도 전통적인 워싱턴의 코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할리우드 이류 배우 출신이다. 미국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존 웨인은 실제로도 미국 보수주의의 아이콘이었는데, 이에 비하면 레이건은 다소 격이 떨어지는 B급 배우이자 정치인 취급을 받았다. 요즘에야 미국의 위대한 보수 정치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대통령이라는 편견 섞인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무튼 비주류였기 때문에 레이건은 훨씬 파격적인 행보를 취할 수 있었다고 보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둘째, 서구의 중심 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정치적 지형 변화 역시 80년대와 유사하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의 전조는 6월 영국인들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는 ‘신고립주의’를 상징한다. 80년대에도 양국의 정치적 지향은 매우 비슷했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보조를 맞춘 영국의 리더는 대처였다. 레이건과 대처는 각각 항공 노조와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면서 신보수주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레이건과 대처라는 극보수주의 정권의 밀월이 장기간 지속됐던 시기가 80년대였다. 서구 자본주의의 주류격인 앵글로색슨을 대표하는 영국과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슷한 변화는 나름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판박이 같은 트럼프와 레이건의 시대


▎레이건 전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시대는 이단아 대통령, 국제사회 갈등, 금리 급등, 증시 장기 상승 피로감 등에서 여러모로 닮았다.
세 번째 공통점은 경제적 보수주의이다. 레이건 정부 하에서는 밀튼 프리드먼(통화주의)과 아서 래퍼(공급주의 경제학) 등과 같은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 득세했다. 이들은 ‘작은 정부론’을 주창하면서 감세와 규제완화를 밀어 붙였다. 대규모 감세와 오바마 케어에 대한 수정, 금융규제 완화가 거론되는 요즘의 세태도 레이건 시대와 다르지 않다. 한편 정부보다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한 보수주의 정권이었지만, 대규모 감세로 오히려 재정적자가 확대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네 번째 공통점은 보호무역주의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주요 타깃으로 강력한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80년대 레이건도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시행했다. 1985년의 플라자합의를 통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컸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 절상을 이끌어냈고, 1987년에는 수퍼 301조라는 강력한 통상 규제 법안을 발효시키기도 했다. 한편 1988년에는 일본과 서독에 이은 세컨티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그룹이었던 한국과 대만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는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격화됐던 시기였다. 요즘은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냉전이 벌어지고 있다. 통상과 군사적 압박으로 중국을 몰아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군비경쟁이라는 힘의 외교를 통해 소련을 손들게 했던 80년대 레이건 외교의 재판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부를 부작용


요약해보면 레이건과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제적 보수주의’, 대외적으로는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자국 이기주의’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적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시대에 따라 부각되거나 퇴색되는 측면이 있고, 궁극적으로 이에 대한 선택은 미국 유권자들의 몫이다. 다만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적 행보는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미국은 유일무이한 기축통화국이다. 국제사회에서 교역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수용될 수 있는 권위있는 통화가 필요한데, 미국 달러가 이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자국의 통화가 글로벌 기축통화가 되면 그 나라는 여러 잇점을 누리는데, 일단 기축통화국에서는 개념상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없다. 외환위기는 민간이나 정부가 외국에 지불해야 할 외화가 바닥났을 때 발생한다. 기축통화국에서는 중앙은행이 대외지불에 필요한 화폐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기축통화국이 이런 잇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름의 비용을 치뤄야 한다. 대표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자국 화폐가 나라 밖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야 한다. 나라 밖으로 자국 화폐를 확산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상수지 적자의 감수다. 다른 나라로부터 재화와 서비스를 수입하고, 자국 통화로 지불하면 자국 화폐가 널리 퍼질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폐혜가 된 미국 이외 국가들이 미국에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들 여력이 없을 때는 무상원조라도 해서 달러를 해외에 공급해야 한다. 유럽에 대한 원조인 마샬 플랜, 한국에 대한 무상·유상 원조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잇점을 누리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부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라는 점과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마땅히 다른 나라의 상품을 사주고, 일정 정도의 대외불균형을 감수해야 할 기축통화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글로벌 경제에 큰 주름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80년대 중반 3저 호황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누렸던 한국 경제도 경상수지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1989년부터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진 바 있다. 당시의 경상수지 악화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의 성장과 임금 상승, 이에 따른 내수 팽창(수입 증가)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보호무역주의라는 유탄에 맞은 측면도 있다. 미국에 의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이후 수출의 급격한 감소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편 보호무역주의는 궁극적으로 미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경제의 효율성을 헤쳐 물가 상승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가장 큰 중국에 대해 다양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문제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 등의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은 미국에서 만들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술적으로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만들면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비교우위에 근간한 자유교역’이 후생을 높인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현실에서 100%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는 자동차만 만들고, 쌀 농사를 잘 짓는 나라는 쌀 농사만 지어 서로 교역을 하면 양국의 후생이 높아질 수 있다. 후생이 높아진다는 것은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생산 코스트의 하락을 뜻한다. 글로벌 교역량의 증가는 세계화의 산물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생산하다 제품이 더 싼 생산기지를 찾아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글로벌 교역량 증가에 맞춰, 세계 물가상승률은 하락세를 이어왔다. 보호무역주의는 세계화에 대한 반동이고, 이는 생산 코스트를 높이는 요인이다. 물론 최근 나타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은 향후 글로벌 경제 질서를 둘러싼 패권 다툼의 성격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보호무역주의는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해 물가를 끌어올리는 측면이 있다.

보호무역→물가 상승→금리 급등→블랙먼데이?


1980년대 레이건 시절 보호무역주의적 조치가 취해질 때도 미국의 물가는 상승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1988년 수퍼 301조와 한국·대만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보호무역주의적 조치가 나왔을 때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줄어들었지만, 물가도 빠르게 상승했다. 80년대 보호무역주의 시행에 따른 물가 상승은 금리 급등과 주식시장의 기록적인 주가 급락 사태인 블랙먼데이로 귀결됐다. 플라자합의 실시 이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던 시기는 1987년부터였는데, 이때부터 물가도 함께 상승하면서 금리를 끌어올렸다. 특히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미국의 수입 물가를 상승시켰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86년 말의 1.1%에서 87년 말 4.4%로 급등했다. 잊고 지냈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투자자들을 엄습했다.

물가가 불안하게 움직이자 당시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1987년 한 해 동안 3% 가까이 급등하면서 10%대에 올라섰다. 금리 급등이 주식시장에 던진 충격파는 기록적인 주가 급락 사태였던 블랙먼데이였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블랙먼데이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매크로 관점에서 블랙먼데이의 원인은 금리 급등이었다. 또한 금리 급등은 보호무역이 초래한 경제적 비효율에 따른 인플레 압박 강화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한편 당시 금리 급등에 대해 미국 증시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1982년 이후 별다른 조정없이 강세를 이어온 데 따른 중기적 가격 부담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점은 2009년부터 큰 굴곡 없이 햇수로 10년째 강세장을 나타냈던 미국 증시의 현 상황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 증시는 2009년 2월 말을 저점으로 2018년 9월까지 115개월 간 이어진 강세장을 구가해왔다. 이는 미국 증시 120년 역사에서 최장기간 강세장의 기록이다.

물론 블랙먼데이는 1980년대 후반 최고의 주식 매수 기회였다. 일시적 급락 이후 주식시장이 곧 반등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다만 다우지수가 블랙먼데이 직전의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22개월이 걸렸다는 사실은 가격 부담이 높아져 있는 요즘 주식시장에서 금리 급등이 가져올 수 있는 충격파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해준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게 마련이다. 일시적 조정에 그치더라도, 주가의 레벨이 높아진 상황에서 차익실현 욕구가 강화되면 조정의 강도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시장과 솜씨있게 소통하면서 저금리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 그렇지만 미국 경제는 정상화됐고, 인플레 압박도 커졌다. 이미 미국이 긴축 사이클에 접어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인플레이션 압박을 강화시킬 수 있는 보호무역이라는 불씨는 경제와 자산시장에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경제에도 부메랑?

최근 수년 간 미국 경제는 빠른 회복세를 나타냈지만, 미국 이외 지역의 경기는 미국보다 훨씬 냉랭했다. 중국 경기의 부진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 둔화에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미국의 자국이기주의적 행태가 미국 경기 회복의 낙수효과를 과거보다 축소시킨 탓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보호무역주의적 행태가 미국 경제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1930년대 대공황 직후 나타났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뚜렷하다. 모두가 자국을 최우선시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지만, 어느 나라도 행복해지지 못했다. 요즘에도 미국 경제와 자산시장마저 보호무역의 안전지대가 되기 힘들어진 상황이 도래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 필자는 현재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1996년 증권 업계에 입문해 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대우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금융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주식투자] [스포츠한국사](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1457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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