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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어린이보험 시장] 가입연령 늘리며 ‘어른이(어른+어린이)’ 확보에 공들여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저출산 현상에 사회초년생까지 노려…성인보험 비해 보험료 낮고 보상범위 넓어

▎어린이보험 가입률은 꾸준히 늘었지만 출생아 수가 감소하며 가입연령을 성인까지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교통 안전 시설물을 체험하는 어린이들. / 사진:뉴스1
‘어린이보험’은 높은 가입률에 비해 중도 해지율과 보험금 지급률이 낮아 손해보험 업계에선 ‘효자상품’으로 불린다. 가구당 자녀 수가 적어지며 어린이보험 가입은 필수로 이뤄지지만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지간해서는 해약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며 어린이보험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는 35만7700여 명으로 전년(40만 6200여 명) 대비 5만여 명이 줄어들었다. 연간 출생아 숫자가 30만 명대를 기록한 건 지난해가 처음으로, 역대 최저치다.

태아 단계부터 가입 가능


어린이보험은 고액의 치료비가 필요한 백혈병 등 소아암, 중증화상, 양성뇌종양, 심장 관련 소아 특정 질병 등 중병뿐 아니라 아토피, 천식, 희귀 난치성 질병에 지적·정신·자폐성 장애, 폭력 피해와 유괴 사고,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 피해까지 어린 자녀에게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장을 총망라한 종합 보험이다. 현대해상은 2004년 업계 최초로 어린이 전용보험 ‘굿앤굿어린이종합보험’을 출시하며 시장에 불을 지폈다. 이후 지금까지 약 15년 간 이 상품의 누적 가입액은 1600억원에 이른다. 국내 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어린이 관련 보험 가운데 가장 오래, 많이 팔린 상품이다. 대부분의 보험상품이 출시 초기에만 ‘반짝 인기’를 끈 후 가입자가 급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어린이보험이지만 가입할 수 있는 나이는 태아 단계부터 평균 20대까지로 길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입자가 태아(만 22주 이내)일 때 가입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 중 유일하게 태아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인 만큼 다른 보험으로는 보상받기 힘든 태아 보장 내역을 갖춘 덕분이다. 실제 지난해 현대해상 어린이보험에 가입한 태아는 13만7724명으로, 같은 해 전체 어린이보험 가입자(22만9288명)의 60%에 달한다. 지난해 출생아 수의 38.5%에 이르는 수치다. 이처럼 현대해상은 40%에 육박한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어린이보험 시장을 주도해왔다.

절대강자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것은 올 들어서부터다. 손보 업계가 어린이보험의 가입연령을 기존 만 20~22세에서 만 30세까지 확대한 것이다. 처음으로 어린이보험의 확대에 포문을 연 것은 DB손해보험이다. DB손보는 4월에 출시한 ‘아이러브건강보험1804’의 가입 가능 나이를 기존 20세에서 30세로 넓혔다. 이 상품에는 질병후유장해 3% 이상 담보가 포함됐고, 치아파절 포함 골절 진단비, 40대 질병 수술비 담보를 추가했다. 또 3000만원 한도로 뇌혈관질환 진단비, 허혈성 심장질환 진단비 가입도 허용했다. 또 저체중아보장 특약을 신설해 2.5kg 이하로 출생한 태아에게도 보험 혜택을 확대했다. 메리츠화재도 만만치 않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부터 어린이보험 심사요건을 점차적으로 완화한 동시에 30세로 가입연령을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질병후유장해 특약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시장점유율 확보에 나섰다. 손보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저해지 어린이보험뿐만 아니라 무해지 어린이보험까지 출시되는 등 20대 젊은 고객들이 성인보험보다 저렴한 보험료와 넓은 보장의 어린이보험, 일명 ‘어른이(어른+어린이)보험’에 많이 가입하고 있다”면서 “어린이보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손보사들이 가입자에 대한 심사과정을 완화해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손보사의 가입연령 확대 정책은 수익으로 돌아왔다. DB손보는 4월 한 달 동안 2만2170건의 어린이보험 상품을 판매해 15억9000만원의 원수보험료를 벌어들였다. 메리츠화재는 1월에 1만7899건의 판매실적과 15억500만원의 원수보험료를, 5월에는 1만8673건과 14억2000만원의 수익을 거두며 현대해상을 앞질렀다.

올해 상반기로 범위를 넓히면 메리츠화재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연초부터 현대해상과 엎치락뒤치락하던 메리츠화재는 98억9000만원의 상반기 수익을 거두며 처음으로 어린이보험 업계 1위에 올랐다. DB손보 역시 상반기에 총 50억7152만원의 매출 규모를 기록하며 KB손해보험을 제치고 3위를 기록했다. 두 손보사의 어린이보험 판매실적의 40% 가량이 18세 이상 가입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질새라 현대해상은 6월 ‘굿앤굿어린이스타 종합보험’의 가입연령을 17세에서 30세로 확대하며 두 손보사에게 맞불을 놨다. 나아가 현대해상은 암·뇌·심장질환·질병·상해로 80% 이상 후유장해가 발생하면 납입을 면제하는 혜택을 탑재하기도 했다. 이는 어린이보험에 처음 도입되는 시도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94억7000만원의 어린이보험 초회보험료를 기록하며 메리츠화재에 이어 2위에 그쳤다.

시장점유율 지각변동

업계가 어린이보험 가입연령을 높이고, 그만큼 가입하려는 성인이 늘어난 배경은 성인보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하면서도 보장범위가 넓고, 보상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보험이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한 이유는 낮은 손해율 때문이다. 나이가 적을수록 질병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이유다. 또 어린이보험은 뇌졸중과 뇌출혈을 포함한 뇌혈관질환과 허혈성 심장질환 진단비 가입이 가능하다. 반면 성인보험의 경우 3대 질병인 암, 뇌, 심장의 경우 일반 보험은 암과 뇌출혈, 급성 심근경색 진단비만 특약 형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 종신보험과 달리 사망보험금 가입 의무가 없어 저렴한 보험료로 보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소비자를 유혹할 만한 점으로 손꼽힌다. 암진단비 역시 성인보험에 비해 확대 보장된다. 소액 암에 걸려도 일반암과 같은 보험금이 지급됨은 물론 가입시점부터 감액기간이 적용되지 않아 보험금 규모가 성인보험보다 크다.

다만 신규 수요 창출을 위한 출혈을 감안하며 어린이보험 가입연령을 늘린 만큼 손해율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손보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성인의 어린이보험 가입이 가능하다고 알려지며 사회초년생을 중심으로 가입자가 늘어나는 추세”라면서도 “단기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보험사들의 손해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시장의 부작용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어린이보험 시장에 가입연령 확대 바람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MG손해보험은 8월 개정 출시한 ‘애지중지 아이사랑보험’의 가입연령을 30세까지로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암진단비 최대 1억1000만원, 갑상선암 등 소액암진단비 최대 2000만원, 뇌혈관·허혈성진단비 최대 3000만원 등 보장 범위를 확대하고, 해지환급금을 없애는 대신 보험료를 표준형보다 30~40% 낮춰 점유율 확보에 나섰다. KB손해보험은 “가입연령을 확대하면서 어린이보험 경쟁에 뛰어들 의사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어린이보험 시장이 과열되며 상품의 기존 취지가 퇴색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밝혔다.

1457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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