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4차 산업혁명 성패는 지식 공유에 달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초연결 사회의 복잡성과 더불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상호작용이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조직 활동에서 결정과 집행이란 두 가지 의사결정의 비중이 급속히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하라면 하는’ 집행 위주의 갑을 문화를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험과 관행 탓에 패러다임 전환이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이 바로 거버넌스(governance) 문제다. 거버넌스는 원래 조타(Steer-gubernaculum)라는 의미다. 집단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이 거버넌스다. 그리고 거버넌스를 위임한 조직이 거번먼트(government)다. 4차 산업혁명 혁신에는 당연히 거번먼트도 포함된다. 미래는 거번먼트에서 거버넌스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굳이 번역한다면 ‘통치에서 협치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거버넌스의 경쟁력은 과정의 비용과 결과의 가치에 따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비용은 의사결정 비용과 집행 비용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거버넌스의 요소를 검토해 보자. 우선 의사결정 비용은 공짜가 아니다. 토론에도 비용이 수반되고 투표에도 비용이 수반된다. 국민투표의 경우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1조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 의사결정 비용은 의사결정 참여자가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게 당연하다. 조직의 모든 의사결정에 모두가 참여해 보자. 결과는 괴멸적일 것이다. 하루 종일 의사결정을 하느라 업무가 정지될 것이다. 민주화가 확대될수록 거래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직은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구조를 발달시켜온 것이다. 예컨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아 통치를 맡기는 식이다. 대의 민주제가 진화한 이유이고 과정이다. 거래비용은 한 명의 독재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조직에서 극소화된다. 의사결정보다 집행이 중요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독재가 더 효율적인 대안인 이유다.

다음으로 집행 비용도 공짜가 아니다. 지시하면 무조건 집행하는 군대식 갑을 문화의 조직에서는 집행 비용은 무시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사회적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의사결정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해관계 집단들이 등장한다. 환경론자와 개발론자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원전 폐기 문제, 재생에너지 확대 문제, 원격의료 확대 문제, 카풀 등 공유경제 도입의 문제, 제주 군항의 문제 등 대부분의 문제에는 이해관계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기업 내에서도 내가 참여하지 않은 의사결정에는 열과 성을 다해 집행하지 않게 된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다양성의 증가를 의미하고, 다양성의 증가는 의사결정과 집행 과정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집행 비용은 의사결정의 참여가 확대될수록 줄어든다. 민주화된 분산조직은 집행 비용을 최소화하게 된다.

거버넌스 문제의 본질은 의사결정과 집행의 패러독스 관계다. 독재적 조직은 결정 비용을 줄이나 집행 비용을 증가시키고 민주적 조직은 집행 비용은 줄이나 결정 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래서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위임형 대의민주제가 대세가 된 것이다. 위임에 따른 대리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개방·공유하는 것은 필수 요건이다. 훌륭한 리더십이 투명·개방 구조에서 발현될 때 조직은 건강해진다.

이런 패러독스로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의회와 정부, 이사회와 대표이사라는 형태로 조직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조직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오프라인의 조직은 거버넌스 패러독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미래 사회의 최대 현안이다. 예를 들어 보자. 각 정부 부처들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사일로(Silo)화된 영역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흔히 가두리 양식장 구조라고 명명하고 있는 형태다. 산업 현장으로 가보자. 산업부의 테크노파크는 중기벤처부의 보육센터와 단절돼 있다. 교육부의 Linc+라는 대학혁신 사업은 중기벤처부의 창업선도 대학 사업과 충돌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테크노파크와 갈등 구조를 가진다. 기술 개발의 악마의 강, 사업화의 죽음의 계곡, 시장 개척의 다윈의 바다는 모든 기업이 극복해야 하는 연속된 과정이다. 그런데 소관 부처는 서로 다르고 사업은 연속되지 않는다. 과학기술부의 기술 개발 과제가 산업부의 과제와 연결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이런 틈새를 이용해 중복 지원을 받는 기업이나 사업자가 당연히 존재한다. 오프라인 거버넌스의 한계가 원인이다.

집중과 분산의 패러독스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융합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오프라인의 현실은 소유의 세상이나, 온라인의 가상은 공유의 세상이다. 소유의 가두리 양식의 한계를 공유의 데이터 클라우드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행정 혁신 과정에서도 데이터 공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이 2010년 클라우드 우선(cloud first)정책을 주창한 이유다. 데이터 공유를 통해 정부는 개방정부로 변신하게 되고 기업은 개방혁신으로 전환하게 된다.

거버넌스는 이제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융합된 O2O(online 2 offline)조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퍼블릭 클라우드에서 공유하는 혁신이 정부 혁신의 출발점이다. 물론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모든 공공조직은 보유 데이터를 분류해 90% 이상을 개방하도록 하는 로드맵을 짜야 한다. 특히 45만개 공공 데이터의 70%를 차지하는 지방자 치단체와 공공기관의 데이터에는 기본적으로 국가기밀이 없다. 개인정보만 익명화해서 개방하면 대통령이 선언한 8·31 고속도로 선언에 부합한다. 중앙정부의 데이터도 90%는 개방할 수 있다고 본다. 공공데이터는 반드시 퍼블릭 클라우드에서 개방·공유해야 민간 부문이 참여하기 쉬워 개방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클라우드에서 데이터가 공유되면 각 부처 이기주의가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된다. 모든 제도는 공급자가 아니고 수요자 관점으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정부4.0은 공공 데이터 개방으로 본격화돼야 한다.

이제 블록체인이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바로 의사결정 비용을 획기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막대했던 의사결정 비용이 스마트폰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한계비용 제로에 수렵하게 된다. 이해관계자들이 스마트폰에서 토론하고, 스마트폰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기술이 블록체인으로 뒷받침된다. 이미 스페인과 미국과 스위스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직접 민주제가 확산되고 있다. 오프라인의 한계로 유지된 대의민주제의 전제 조건인 의사결정 비용의 혁명이 도래한 것이다. 우선 시작은 아파트 자치단체 등에서 시작해 확산하면 된다. 쉬운 여론조사에서 시작해 정책 결정을 거쳐 대표자 선발로 확대하면 된다.

궁극적으로 클라우드는 전체를, 스마트폰의 블록체인은 개인을 대표하게 된다. 전체와 부분이 융합해 스스로 자기조직화하는 모습이 궁극적인 미래 거버넌스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항상 도시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같이 발전하는 스마트시티가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스마트정부로 확대되는 것이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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