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내부 문건에 결정타 맞은 삼성바이오 어디로] 삼성의 거대한 변화 부를 ‘트리거’ 되나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재용 부회장 재판에도 영향 미칠 수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결과 발표가 예정된 11월 1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건 다큐멘터리를 보면 범죄 용의자는 대부분 취조 과정에서 혐의를 끝까지 부인한다. 형사의 끈질긴 추적 끝에 체포된 범인이 거세게 반발하며 ‘오리발’을 내밀면 시청자는 화가 치민다. 형사는 왠지 치밀하지 못해 보이고, 믿음이 떨어진다. 용의자의 뻔뻔함에는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역시 형사는 노련하다. 시청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를 하나둘 꺼내며 용의자를 압박한다. 마지막으로 범행 현장을 담은 CCTV 영상까지 제시하면 용의자는 고개를 떨군다. 시청자는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게 범죄 다큐멘터리의 일반적 패턴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는 분식회계 용의자였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1년 넘게 감리(재무제표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5월, 2015년 결산이 ‘고의 분식회계’라며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에 징계안을 올렸다. 삼성바이오 측은 분식을 하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의 증선위에서 강하게 반박했다. 증선위는 결국 지난 7월 금감원의 징계안에 하자가 있다며 사상 초유의 재감리를 명령했다.

금감원에게 행운이 따랐다. 재감리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강력 제보를 받았다. 2015년 당시 삼성의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이다. 금감원은 거의 범행현장을 담은 CCTV급 결정적 증거라 생각했다. 금감원이 재감리 징계안을 제출하면서 지난 10월 말과 11월 중순에 증선위가 열렸다. 삼성바이오는 그러나 제시된 내부 문건 앞에서도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내린 후에는 행정소송으로 대응하겠다며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표현도 강력하다. 삼성바이오스는 입장문을 내고 “회계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왜 고의 분식이 아니라고 확신할까. 삼성바이오 건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승계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통방어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삼성바이오, 행정소송 제기 방침


증선위의 징계 의결이 가져올 후폭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지난 11월 14일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여부와 제재를 논의하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선위가 열리는 날이었다.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를 재감리한 후 열리는 두 번째 증선위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결론이 나온다면 어떤 내용일까. 이날 금융시장의 최대 이슈였다. 분위기는 삼성바이오에 불리했다. 2015년 결산에서 회사가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금감원이 당시 삼성 내부에서 작성된 문건을 새로 입수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증선위 개최 2주일 전부터 여러 차례 언론에 폭로된 상황이었다. 불리한 내용으로 가득한 내부 문건이 전격적으로 공개됐음에도 워낙 사안이 복잡하고 논쟁 이슈가 많다 보니 증선위가 한 차례 더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았다.

필자는 이날 오전, 금융위원회 김용범 부위원장(증선위원장)의 기자회견이 오후 4시에 예정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했다. 이날 증선위 의결내용 발표가 있으며, 증선위원들은 고의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이미 내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은 참고 삼아 삼성 측의 마지막 해명을 듣는 자리 정도라는 판단이 들었다.

발표된 의결은 예상대로였다. 삼성바이오의 2012년~2014년 회계처리는 과실 또는 중과실, 2015년은 고의 분식회계라는 것.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 대한 검찰 고발과 대표이사 해임권고, 과징금 부과 등을 결정했다. 직후 시가총액 22조원, 소액주주만 8만여 명에 달하는 삼성바이오의 주식은 곧바로 거래정지됐다. 회사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여부에 대한 실질심사를 받게 됐다. 증권시장 전문가들은 상장폐지 가능성은 작게 본다. 하지만 아주 짧으면 한 달, 길면 1년 이상 삼성바이오 주식은 증권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될 전망이다.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움직임도 보인다. 모회사인 삼성물산에 대해 삼성바이오와 관련한 감리 가능성, 내년 초 이후 검찰이 수사에 나설 경우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까지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즉각 반발하며 입장자료를 냈다. 회계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증선위 결론에는 삼성 내부 문건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원회가 증선위 의결과 관련해 이날 배포한 보도 참고자료에도 삼성 내부 문건 등에 기초해 고의성 여부를 판단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우선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한 근거부터 보자[삼성바이오 사건 전반에 대한 흐름은 11월 5일자(1457호) 본지 기사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 2라운드’ 참조].

삼성바이오는 지난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바이오 시밀러 개발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삼성에피스)를 설립했다. 지분율은 삼성바이오가 85%, 바이오젠이 15%였다. 삼성바이오는 2014년까지는 삼성에피스에 대해 단독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종속기업’으로 분류했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를 한 회사처럼 묶은 연결회계처리를 한 것이다. 그러다 2015년 결산에서는 단독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삼성에피스를 ‘관계기업’(지분법회계)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전환하는 회계처리 과정에서 4조5000억원의 평가차익을 얻었다(최종 당기순이익에 미친 영향은 1조8000억원 정도다).

증선위가 2015년 회계처리를 고의 분식회계로 보는 논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삼성에피스는 처음부터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공동으로 지배하는 회사였다는 것이다. 삼성에피스의 신제품 추가나 판권 매각, 자금 차입, 자산 매입 등과 관련해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주주약정 조항이 공동지배의 근거다. 증선위 판단대로 처음부터 관계기업이라면, 삼성바이오가 2015년 삼성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전환시키며 4조5000억원의 평가차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할 근거가 없어진다. 또 하나는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삼성바이오로부터 삼성에피스 지분을 매입할 권리)이다. 바이오젠은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성에피스 지분율을 50%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가 낮아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삼성바이오 측은 그러나 “2015년에는 삼성에피스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져 콜옵션이 행사될 가능성이 큰 권리(실질권리)가 됐기 때문에 관계기업으로 전환했고, 평가차익을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증선위는 그러나 콜옵션은 처음부터 행사 가능성이 상당한 권리(행사에 장애요소가 없음)였다며 삼성 측 주장을 일축했다. 증선위에 따르면 2012년~2015년 회계처리는 회계기준을 위반했다. 위반의 동기는 2012년~2014년은 과실, 2015년은 고의다. 요약하면 합작법인 약정 내용에 나타난 바이오젠의 동의권과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이 처음부터 실질권리였다는 사실을 반영하면 2012년부터 삼성에피스는 관계기업(지분법회계)이다. 따라서 2015년에 지배력 변동(종속기업→관계기업)을 이유로 막대한 평가차익을 인식한 것은 잘못이다. 2015년 삼성바이오는 고의로 지배력 변동 요인(삼성에피스 가치 증가)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금감원은 애초 2015년 전의 회계처리는 종속기업 또는 관계기업 어느 것이든 무방하다고 봤다. 합작법인 약정 내용은 재감리에서 갑자기 발견된 것은 아니다. 금감원은 최초 감리에서부터 약정을 자세하게 뜯어봤다. 콜옵션이 처음부터 행사 가능성이 상당했는지, 즉 실질권리에 해당했는지도 검토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전문가를 동원해 실질권리 해당 여부에 대한 조언을 받기도 했다. 2015년 전에 삼성에피스가 종속기업이었느냐, 관계기업이었느냐에 대해 금감원 스스로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감리 이후 금감원이 내세운 것은 관계기업이 맞다는 것이다. 애초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2015년 삼성에피스 가치평가(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의 용역수행 결과 5조3000억원)의 타당성 이슈는 이번 증선위에서는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관계기업이 맞다는 근거로 제시된 논리가 애초 감리에서 충분히 뜯어봤을 ‘주주약정’과 ‘콜옵션 실질권리 여부’라는 점에 대해 삼성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필자 생각으로 삼성 측이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며 반발하는 이유 가운데는 이 부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평가 타당성 검토는 빠져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물론 이번에 증선위가 고의 분식이라고 단정하게 된 근거에는 지난 증선위에서는 제시되지 않았던 삼성 내부 문건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문건 내용을 보면, 삼성은 이미 2014년에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반영한 회계처리를 했어야 했다는 것을 인식한 흔적이 있다. 또 2015년 들어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질 상황에 처하자 증시 상장 등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법·편법적인 해결책을 검토했다.

삼성 측은 그런 방안은 검토 단계에서 금방 배제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실행한 방안, 즉 삼성에피스의 가치평가 증가에 따른 지배력 변동은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2015년 전에 종속회사로 분류해 연결회계처리한 것을 과실로 보면서, 2015년 삼성에피스 가치평가의 타당성은 전혀 따지지 않고 고의 분식회계로 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증선위는 그러나 삼성의 내부 문건에 나타난 증거와 당시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보건대, 회사가 지배력 변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처리 기준을 자의적 잣대로 해석하면서 고의 위반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삼성 측은 이에 대해서도 “4대 회계법인의 조언을 받아 회계기준 범위 내에서 합리적 해결 방안을 모색했고 실행했지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증선위에서 의결된 이상 삼성바이오는 과거 재무제표를 일단 모두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 등을 이유로 수정하지 않는다면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을 받을 수 없다. 모회사인 삼성물산 역시 여기에 맞춰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증선위 의결 이후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삼성바이오의 상장폐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미칠 파장이나 삼성바이오의 현재 사업 수준, 투자자 보호 등을 고려했을 때 상장폐지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래도 수개월에서 1년까지 예상되는 거래정지는 피할 수 없다.

삼성바이오 상장폐지 가능성은 작아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11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 심의회의에 참석한 후 점심시간대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증선위의 검찰 고발에 따라 내년 초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2015년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된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도 조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뇌물혐의, 대법원 계류)에 삼성바이오 건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현재로선 작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불똥이 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분석도 많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은 삼성의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트리거가 될까? 행정소송과 검찰 수사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스기사] 삼성물산으로도 불똥 튀나 - 재무제표 변화폭 크면 감리 받을 수도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2015년의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연관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삼성물산 감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1년 반에 걸친 감리와 재감리 끝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결론을 도출해 낸 금융감독원이 삼성물산에도 칼끝을 겨눌지 주목된다. 증선위가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변경에 대해 고의적 분식회계로 결론 낸 이후 정치권 등에서는 삼성물산 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15일 “삼성의 내부 문건에 삼성물산의 합병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 이상 증선위는 금감원에 삼성물산 감리 착수 요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의원은 증선위 판단 과정에서 ‘스모킹건(결정적 증거)’ 역할을 했던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을 공개한 인물이다. 지난해 초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처음 제기한 참여연대 역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투명하게 해소하기 위해 삼성물산에 대한 조속한 감리 착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삼성물산 감리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삼성물산 합병 간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당시 삼성바이오의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이뤄졌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제일모직 최대주주였지만 옛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통합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금감원이 증선위에 제출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에는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자본잠식 가능성을 우려해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 삼성물산 합병이 결정된 2015년 7월 이전에 삼성바이오가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회계법인들과 긴밀히 협의했다는 정황도 나와 있다. 모두 제일모직의 고평가 근거를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박 의원 등의 주장이다.

이미 금융 당국 안팎에서도 삼성물산 감리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의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금융위나 증선위가 특정 회사의 감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요청할 경우 금감원은 감리에 착수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감리를 의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재무제표를 심사해 과실 또는 중과실 혐의가 드러나는 경우에도 감리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 사례처럼 특정 회사의 회계 처리 기준 위반에 관한 제보가 실명으로 접수되는 경우에도 금감원이 절차에 따라 특별감리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공시된 재무제표를 회사가 자진해 수정하는 경우에도 수정된 금액이 많으면 감리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다. 증선위 결론에 따라 삼성바이오는 2012~15년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한다. 이 경우 모회사인 삼성물산의 재무제표에도 변화가 생기는데 이 변화폭이 클 경우에도 삼성물산은 감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460호 (2018.11.2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