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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이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남에게 좋다고 나에게도 좋은 회사 아니다”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성장·연봉·워라밸·재미·의미·인간관계 모두 만족하기 어려워…직장인 등 1200명 멘토링

국내 1호 ‘커리어 엑셀러레이터’인 김나이씨를 10월 말 서울 공덕동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나 ‘일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가 1호인 이유는 ‘커리어 엑셀러레이터’란 직업을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현대카드에 입사해, 한국투자증권을 거쳐 JP모건 장외파생부 부장으로 일하다가 2014년 회사를 그만둔 금융 엘리트다. 벤처투자 업계에서 엑셀러레이터는 투자와 멘토링을 겸해 신생기업(스타트업)을 키워낸다. 김나이씨는 금융계를 포함해 사회 진출을 꿈꾸거나 이미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을 위한 커리어 코치, 멘토링을 하고 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했고 젊은 친구들로부터 힘을 받으러 카이스트 수업을 들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더 힘이 없었다”고 말했다. 복도에서 금융계 진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카이스트에서 경력개발 세미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의 연봉협상 시기나 취업하려는 학생들이 면접 인터뷰가 있는 시기에 맞춰서 특강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연봉협상이 가능한 사회인가?

“최근에 현대자동차 실적을 보고 암담했다. 협력업체는 더 안 좋을 거다. 기업들이 버티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연봉협상이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한다면 사실 비슷한 연봉을 받겠지만,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간다든가 하면 연봉 테이블이 좀 더 다양해지므로 협상이 필요하다.”

취재할 때 퇴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찾아가봤다. 퇴사 관련 책도 쏟아져 나온다. 퇴사가 전제가 된 사회라는 느낌을 받았다. 왜 다들 회사를 다니기 싫어하나?

“개인의 문제도 있고 사회의 문제도 있다. 4년 동안 대학생, 직장인 1200명 정도를 만났다. ‘유리 멘탈(정신력이 약하다는 뜻의 신조어)’이 많다. 부모의 관여가 심한 밀레니얼 세대는 실패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 전에 부모가 도와준다. 직장 상사들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유 없이 다시 해오라고만 하는데, 이 친구들은 명확한 이유가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니어들은 상사의 판단 근거도 확실치 않고 미래도 안 보이니, 나가서 뭐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상사가 능력이 없는 것 아닌가? 누구는 일을 못하고 누구는 일을 잘한다고 말하면서 이유를 안 대는 건 자신이 그 이유를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도 있지만 회사 탓도 있다. 대기업을 3년 다니다가 휴직한 친구가 자기네 회사에선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말하더라. 예전에는 ‘하라는 대로 해’가 통용됐기 때문에 안 그랬던 사람도 조직에 익숙해진다.”

생산성을 높일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하는’ 회사라면 이미 경영에 실패한 것 아닌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국투자증권에서 JP모건으로 이직했을 때 목소리를 높이라는 말을 들었다.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다 얘기하라는 거다. 나도 말한다고는 말했는데,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느꼈다. 우리나라 회사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JP모건에서 내가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책임 추궁 대신 이 실수가 사람의 오류인지 시스템의 오류인지 찾아보고, 어떻게 보완을 할지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도 외국 회사를 4년 넘게 다닌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지만 가장 힘든 건 한국 지사 직원들을 설득하는 거였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고 활발히 움직이면 주변에서 돌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하나? 평범한 한국 회사에서라면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안 간다.

“만약에 그 회사를 계속 다녀서 임원이 되는 게 목표라면 좀 다를 것 같지만, 이미 평생직장은 없어졌다. 조직보다는 개인의 역량이 더 중요한 사회다. 설령 버릇 없이 이야기 한다고 (조직에서) 찍혀 나갈지라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얘기를 나눠보니 정작 문제는 상사, 부서장, 조직에 있다. 문제 있는 조직을 코칭해야지 밑에 있는 사람을 코칭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을 만나 얘기를 듣다 보면 그 회사 임원에게 ‘상무님 정신 차리세요’라고 얘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요즘 친구들이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 왜 회의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지 얘기해 주고 싶다. 물론 개인이 조직에서 모든 걸 다 해주기를 바랄 때도 있다. 개인, 조직 다 문제가 있는 셈이다.”

경제적으로든 커리어로든 가장 반짝이는 순간에도 힘들어 하고 행복해 하지 않는 직장인들을 많이 봤다. 나도 과거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연봉도 많이 주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견뎌냈을 뿐이다. 혹시 직장인의 본질은 고통이 아닐까?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사실 나도 돈 많이 주는 좋은 회사 나와서 뭐 하냐고 묻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피크는 JP모건 다닐 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당시 알맹이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날 오후 4시에 주식시장이 끝나고 광화문에 갔다.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회사를 다녔을까 하는 허무함이 들었다. 만약에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면 뭘 할 수 있을지, 돈 많이 벌고 승진 빨리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 후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일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성장, 연봉,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재미, 의미, 인간관계 6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직장은 없다.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게 맞아떨어진다면 회사에 더 기대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게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도 가능할까? 사내정치만 해도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라 알아서 기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대로라면 이렇게 형편 없는 상황에서 고통을 겪으며 일해야 한다. 이게 일의 본질일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 하니까 시장이 바뀌는 걸 알면서도 말을 못 하고, 계획을 짜놓아도 다른 부서가 안 지킨다거나 여기까지만 내 일이라면서 따라와주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다. 많은 회사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아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직 결과만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도 많다. 구글·넷플릭스도 그렇고 토스 같은 국내 스타트업들도 있다.”

일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데, 그걸 뚫고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바뀔 것 같지도 않은 이런 고행을 왜 계속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만약에 자신이 정말 힘든데 회사가 돈을 많이 주고 그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면 일을 계속 해야 한다. 의미와 재미를 원한다면 다른 걸 포기하고 그에 맞는 회사를 다녀야 하고. 모든 걸 다 충족시켜주는 직장은 없다.”

어른이라면 무언가는 견뎌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렇다. 넷플릭스 같은 회사도 굉장히 일이 힘들고 해고도 많다. 그럼에도 내가 얻는 게 있으면 다니는 거다. 나는 구글 등 대기업들이 좋은 회사라고 일반화하기가 이제 힘들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다 좋아도 그 사람에게는 너무 불행한 회사일 수 있다.”

JP모건에서 좋은 부서에서 일했고 승진도 빨랐다. 그럼에도 6가지 중에 어떤 것도 찾지 못했나?

“당시에 내겐 성장이 가장 중요했다. 일에서 새로움을 찾고 자율성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게 내 안이 아닌 외부에서 채워지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30대 중반을 넘기고서야 나 자신을 채우는 것은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스타트업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할 때 회사의 목표가 오직 돈인 곳과는 일하지 않는다. 개인들에게만 얘기해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임원들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일단 현실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1460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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