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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의 세대 교체 바람] 40대 제치고 30대가 ‘큰 손’으로 부상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30대 비율 29.5%…재테크에 관심 많고 공격적 투자 성향

서울 아파트 시장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큰 손’이 40대에서 30대로 바뀌며 젊어지고 있다. 지난해 8·2부동산대책 이후 시장이 요동치는 와중에 나타난 변화여서 주택시장의 판도가 달라지는 것인지 관심을 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시장에서 매수자의 나이가 화두가 됐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해 취임사에서 불쑥 ‘20대 투기론’을 꺼냈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지난해와 비교해 주택 거래량이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세대가 있습니다. 29세 이하입니다. 40~50대가 14% 정도의 증가율을 보이고, 60~70대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사이 29세 이하는 54%라는 놀라운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세대가 개발 여건이 양호하고 투자수요가 많은 지역에서만 유독 높은 거래량을 보였다는 것은, 편법 거래를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입니다.”

김 장관은 지난해 5월과 이전 해인 2016년 5월 거래량을 비교해 인기 지역의 20대 거래 증가를 투기의 증거로 제시했다. 87건에서 134건으로 증가했다.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4%에서 3.4%로 올라갔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7년 5월 당시 강남 4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9억2000만원이었다. 20대는 평균에 못 미치는 주택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수억원의 자금을 갖고 있기가 쉽지 않다.

8·2대책 직전에는 20대 매수세 두드러져

사실 지난해 5월만이 아니라 그해 8·2대책이 나오기 전 6~8월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 현황을 보더라도 20대 증가가 두드러졌다. 6~8월 거래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과 2016년 각각 2.6%, 2.8%였는데 2017년엔 3.1%였다. 실제로 20대 거래에 편법 증여가 많아 장관의 경고에 찔끔했는지 지난해 8·2대책 후 20대 비율 증가세는 주춤해졌다. 올해 1~9월을 보면 3.0%다.

김 장관이 투기의 주축으로 지목한 20대를 제치고 지난해 8·2대책 후 떠오른 연령대가 있다. 30대다. 30대 거래 비중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40대를 누르고 주택시장의 가장 ‘큰 손’이 됐다. 김상훈 의원(자유한국당)의 올해 국정감사 자료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30대 비율이 29.5%로 가장 높다. 다음이 40대 29.2%, 50대 21.3% 등이다. 지난해까지도 40대가 최고였다. 30대는 지난해까지 27%대에서 올해 2%포인트 올라갔고 40대는 30% 아래로 내려왔다. 50대도 1%포인트 정도 낮아졌다.

지난해 이후 분기별 현황을 보면 집값이 뛸 때 30대가 매수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27%에서 지난해 8·2대책 전 28%까지 올라갔다. 8·2대책 후 집값이 잠시 주춤하다 다시 오른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엔 30%를 넘기도 했다. 올해 2분기 강남권이 약세를 보이는 동안 내려갔다가 9·13대책 나오기 전 급등기 동안 다시 상승했다.

30대 거래 증가를 실수요 중심 시장 재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주택을 구입한 30대는 대개 무주택자여서 무주택 실수요자가 주택을 매입한 것이어서 시장이 건전해진 것으로 본다. 과거 30대 비중이 컸을 때는 집값이 뛰지 않은 시기였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집값이 침체기였던 2012~14년 주택매매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30대 이하 비중이 35% 넘게 올라가기도 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30대 이하 비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35.6%에서 수도권 집값이 본격적인 상승기에 접어든 2015년엔 30.1%까지 내려갔다. 지난해엔 28.5%였다. 올해엔 올 상반기 서울 30대 매수 증가 영향으로 28.7%로 올라갔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집값 상승 기대감이 크지 않을 땐 수익률에 강하게 반응하는 중·장년층 움직임은 덜하고 결혼 등의 실수요로 집을 구매하는 30대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 지난해 8·2대책 후 30대가 집값이 한참 오른 후 뒤늦게 주택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유가 뭘까. “막차라고 생각했어요.” 지난 7월 강북지역 아파트를 사들인 어느 30대의 말이다. 그는 원래 매수할 생각 없이 집을 알아봤다고 했다. 매도 호가가 처음에 11억6000만원이었는데 2주 사이에 12억원으로 오르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매수를 고민하던 2주 새 다시 4000만원이 오르자 그는 서둘러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걸 보면서 이번에도 놓치면 앞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컸습니다.”

최근 집값이 물가상승률이나 소득 증가율보다 훨씬 많이 오르면서 내 집 마련 사다리가 끊긴 탓도 있다. 결혼하면서 임대로 시작해 주택을 사고 집 크기를 키워가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저축 금액보다 집값이 훨씬 빠르게 오르다 보니 사다리의 여러 단계를 건너 바로 구매 단계로 넘어간다.

이런 가운데 요즘 30대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비트코인·주식 투자에서도 30대 비중이 크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 집값 하락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공격적으로 투자한다는 분석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30대는 ‘용대리’로 불린다고 한다. 금융위기 이후 입사해서 증시가 급락하는 걸 경험하지 못한 젊은 직원을 용감한 대리, 줄여서 ‘용대리’라고 한다. 이들은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할 뿐 아니라 본인 역시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값이 워낙 비싼데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일까. 올 1월에만 해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6억7000만원이었다. 서울에서 무주택자 한도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까지 대출받더라도 3억3500만원의 자기 자금이 있어야 한다. 30대에 이만큼의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부족한 자금은 대개 부모로부터 증여받을 수밖에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30대 모두 증여세를 내고 증여받아 자금을 보탰다고 했다. 한 명은 10억원을 증여받아 3억원을 증여세로 냈다고 했다.

8·2대책의 다주택자 세제 강화가 자녀 증여 연령을 20대에서 30대로 높인 면도 있다. 양도세 등 다주택자 세금이 무거워지면서 20대 증여가 많이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20대는 경제력이 없을 경우 세대 분리 인정이 안 된다. 30세 이상이어야 세대를 분리해 주택 수를 나눌 수 있다.

증여받아 주택 자금 마련

주택시장의 30대 부상은 주택 수요층이 두꺼워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리한 매수는 가계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 대출 원리금 부담으로 가계가 압박을 받고 집값이 하락할 경우 충격이 크다. 전세보증금을 지렛대 삼은 ‘갭투자’의 경우 앞으로 전셋값이 내리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 전문가들은 “30대는 협상력이 떨어져 대개 가격을 부르는 대로 주는 경향이 있어 집값 상승기에는 가격을 더욱 뛰게도 한다”고 말했다.

1460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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