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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탈원전 외치는 한국] 일본도 원전 재가동 나섰는데…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무리하게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밀어 붙여… 롤모델 대만도 국민투표서 탈원전 정책 철회

▎고리원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해외에서 들려온 소식이 발단이 됐다. 대만이 11월 24일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선언을 철회했다. 대만의 탈원전 정책이었던 전기사업법 조문(2025년까지 원전 중단)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이 59.5%로 나오면서다. 대만 정부는 3개월 이내에 새 법안을 만들어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016년 취임 후 야심차게 내건 정책이지만, 전력 수급 부족이라는 현실 문제를 넘지 못했다. 석탄·가스 발전의 급속한 확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대폭 증가했고, 가스 발전소 고장 사고로 전 가구의 60%가 블랙아웃 공포를 겪고 전기료가 치솟은 사건도 탈원전 정책에 반대표를 던지게 만든 배경이다.

프랑스, 탈원전 속도 조절


대만을 탈원전 롤모델로 삼아온 정부 입장에선 난감한 소식이다. ‘에너지 전형(轉型) 정책’(대만)과 ‘에너지 전환 계획’(한국)은 원전 전면 중단 시점만 다를 뿐 방향성은 일치했는데 앞서가던 대만이 다른 길로 가버린 것이다. 이양수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아시아권에서 한국만 탈원전 국가로 남게 됐다”고 논평했다. 앞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 제로정책을 세웠던 일본도 최근 원전 48기 중 9기를 재가동했다. 원전 대체 발전으로 택한 LNG 발전 때문에 무역적자가 급증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급기야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2% 늘리기로 방향을 틀었다.

탈원전을 추진하던 다른 주요 원전 보유국들도 한 발 물러서고 있다. 2025년까지 원전을 순차적으로 종료하려던 벨기에는 12월에 원전 2기 재가동을 추진하고 순환 정전(하루 3시간) 실시도 검토 중이다. 프랑스도 급격한 원전 비중 축소가 에너지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원전 비중을 50%로 낮추는 목표 시점을 당초보다 10년 늦추기로 했다.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결정했지만 여전히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해서다. 스웨덴의 원전 의존도는 여전히 33%에 이른다.

이와 달리 한국은 여전히 ‘마이 웨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11월 26일 기자들과 만나 대만의 탈원전 투표 결과에 대해 “그런 국민투표가 우리는 없기 때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두 나라의 탈핵시간표가 대만은 9년, 한국은 70여 년으로 차이가 있는 만큼 직접적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산업부의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에너지 전환 계획은 70년에 걸친 의사결정”이라며 기존 계획을 고수할 입장을 밝혔다. 대만 정부의 이번 결정이 우리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타당성 논란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공약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새 원전을 짓지 않고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은 곧바로 영구정지해 가동원전 수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로 이를 대체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말 확정한 ‘재생에너지 3020 계획’에서는 태양광·풍력 등 비중을 당시 7% 수준에서 2030년 20%로 높이기로 했다. 원자력 비중은 30.3%에서 23.9%로 낮추고 2082년엔 원전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2019~2040년까지를 다루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는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최대 40%까지 끌어올리는 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이라고 다른 나라들이 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전기료 인상 문제다. 원전 발전 비중이 줄고 발전단가가 높은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6월 20일 산업부는 “장기적으로 2022년까지 기존 전원에 여유가 있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원자력학회는 최근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통해 “태양광발전 비용이 2030년까지 현재보다 35.5% 감소하더라도 신재생 백업설비 보강, 소규모 태양광 보급, 송배전망 확충 등 비용을 증가시키는 정책들이 이어질 예정이라 전기요금 인상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산업 측면에서의 고민도 깊다. 한국의 원전은 반도체·스마트폰과 함께 몇 안 되는 세계 최고의 일자리·먹거리산업 중 하나다. 그러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의 원전 수출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미 영국·사우디아라비아로의 원전 수출이 다 틀어졌다. 관련 업체들은 부품 생산과 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산업 생태계가 완전 붕괴되고 있어 수출 물량을 따 온다고 해도 국내 공급이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원전 건설 중단으로 국내의 우수한 기술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커졌다. 중국·대만·러시아 등에서 한국의 원전 고급 인력을 빼가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이런 가운데 국내 고급 과학기술 인력 양성소인 KAIST에서는 올해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 선택 학생(진입자)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안이 될 재생에너지는 아직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따른다. 정부가 203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에 약 80조6000억원 이상을 들여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지만 정작 국내 풍력·태양광 제조사는 줄파산 위기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유럽·중국 제조사가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국내 업체가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외국계 풍력발전기 관련 회사의 가격은 국내사보다 최대 20%까지 저렴하다. 태양광 모듈도 10mw급 발전소를 지을 때 중국산이 약 5억원 저렴하다. 가스터빈 등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설비 시장 역시 외국계 기업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LNG발전소 건립이 늘어날수록 외국 기자재 업체들만 혜택을 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원전건설산업 타격 불가피

대규모 해상 풍력발전,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전국 각지에서 분쟁도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등에 업고 전국에 태양광발전소 설치 붐이 일면서 난개발 우려가 함께 커졌기 때문이다. 태양광 난개발에 대한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지방자치단체가 규제를 늘리면서 태양광 사업자들과 법적 다툼이 급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목표로 내건 정부가 의욕만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인 데 따른 후유증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난개발, 주민 반발 등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없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혼란을 자초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처럼 허술하게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강력 추진’을 천명한 탈원전의 마땅한 대안이 없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2082년까지 원전 제로’나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없다’ 등 특정 시점을 못 박은 게 정책 무리수라고 지적한다. 김학노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은 독선적”이라며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원전 정책들이)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더라도 섣부른 탈원전 정책은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에 보다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462호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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