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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 유해성 논란 2라운드] 법정에서 누가 웃을까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필립모리스, 식약처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일본 학자는 “전자담배 타르 무해” 주장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6월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유해성분 11종을 분석한 결과 일반담배와 다름없는 양의 니코틴과 타르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사는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와 의학계에서는 일반담배와 다를 바 없거나 더 유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논란이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됐다.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판매하는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법무법인 김앤장을 통해 10월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6월 식약처가 발표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결과’의 분석 방법과 실험 데이터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식약처가 이를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식약처도 맞대응에 나섰다. 식약처는 최근 법무법인 동인을 통해 서울행정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소송 자체는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것이지만, 소송 결과에 따라서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정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만큼 소송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필립모리스 측은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공식입장을 자제하고 있지만,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을 건너뛰고 바로 소송을 낸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식약처에서는 필립모리스가 일련의 절차를 무시하고 소송으로 직행한 데 따른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분석 방법·데이터 밝히라 요구


식약처는 6월 7일 아이코스(전용 궐련형 전자담배 엠버)·글로(브라이트 토바코)·릴(체인지)을 대상으로 유해성분 11종을 분석한 결과 일반담배와 다름없는 양의 니코틴과 타르(TAR·Total Aerosol Residue)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특히 전자담배 2개 제품에서는 일반담배보다 높은 타르가 검출됐다. 또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담배에서만 특이하게 검출되는 니트로소노르니코틴 등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도 5개가 검출됐다. 다만, 발암물질 함유량은 일반담배의 0.3∼28% 수준이다. 이 같은 유해성 분석결과에서 최근의 소송까지 가는 계기가 된 건 타르다. 이날 식약처의 발표는 ‘전자담배에서 타르가 높게 검출됐으니 유해성분이 더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이날 식약처는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나왔다는 타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필립모리스는 당시 자료를 내고 “타르는 불을 붙여 사용하는 일반담배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연소가 발생하지 않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한국필립모리스는 ‘타르의 진실’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식약처의 분석결과를 해명했다. 동시에 식약처를 상대로 분석 방법과 실험 데이터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제대로 분석은 한 것인지 검증하고, 타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이고 이것이 어느 정도 유해한 것인지를 밝히라고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식약처가 공개한 정보는 6월 발표 당시 언론에 공개된 것이라는 게 필립모르스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정보공개 범위는 관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범위에 맞춰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했다”며 “더는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문제의 핵심인 타르는 흔히 상상하는 끈적한 검은 물질이 아니다. 담배의 타르는 담배를 태워 니코틴과 수분을 뺀 나머지 성분을 일컫는다. 즉, 연소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니코틴 제외)의 복합체라는 의미다.

보통은 타르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어 문제가 되지만, 타르 자체가 발암물질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데 궐련형 전자담배 속 타르의 구성 성분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다. 식약처도 6월 발표 때 “모른다”고 밝혔다. 필립모리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사가 담배 성분을 공개하지 않는 데다 700가지 이상의 워낙 많은 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필립모리스의 소송 역시 이 점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담배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타르가 나왔기 때문에 유해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주장인 만큼, 실험 데이터 공개 등을 통해 정부가 타르를 검증하지 못했거나 했어도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연 정책포럼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나오는 타르는 일반담배의 타르와는 달리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소송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끈다. 11월 23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담배규제 정책포럼에 참석한 일본 국립보건의료과학원의 나오키 쿠누키타 박사는 “궐련형 전자담배 배출물 분석결과 일반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 성분은 매우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궐련형 전자담배 중 한국 식약처가 타르로 통칭한 물질의 대부분이 의약품으로 쓰이는 등 인체에 무해한 습윤제 글리세롤이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해명자료를 통해 “나오키 박사의 분석 방법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시험방법이 아니라 해당 연구에서 자체적으로 고안한 방식”이라고 반박했다. 식약처는 캐나다 보건부 방식인 헬스 캐나다(HC)와 국제표준화기구(ISO) 방식으로 분석했다. HC는 실제 흡연자의 흡연 습관을 고려해 천공 부위를 막는 분석 방법이고, ISO는 담배필터의 천공(穿孔) 부위를 개방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오키 박사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일반담배와는 구조나 성분이 다른 만큼 그에 맞게 2단계에 걸친 배출물 수집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식약처의 분석 방법은 일본·중국·독일 정부기관에서 사용한 방법과 같다”며 “글리세롤 등 나오키 박사 방식에서 검출된 성분도 높은 온도에서 가열하면 발암물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궐련형 전자담배 규제 강화 추진

정부 역시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인 만큼 유해성 논란은 소송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어질 전망이다. 나오키 박사와 복지부의 주장처럼 궐련형 전자담배 연기 포집 방식에 대한 부분부터 견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타르에 대한 구성 성분 분석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고그림을 강화하고, 유해 성분과 배출물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사들은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담배 규제는 필요하지만 모든 담배가 나쁘다고 일괄 규제하기보다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고려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 측은 “궐련형 전자담배를 둘러싼 논란의 근원적인 이유는 담배 성분 정보를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며 “연내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1463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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