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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아서 코난도일 셜록홈즈의 ‘팬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어떤 인물·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적 현상… 팬덤경제학까지 나와

▎셜록홈즈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끊임없이 재탄생되며 세계 각국에서 팬덤을 만들었다.
미국이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갖고 있다면 영국은 영어라는 기축언어를 갖고 있다. 기축언어국 영국은 셰익스피어의 햄릿부터 조앤롤링의 해리포터까지 수많은 인물을 창작해냈다. 영국이 만든 캐릭터는 일개 캐릭터에 머물지 않다는 게 특징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내면서 불멸의 캐릭터로 남았다. 아서 코난도일이 창작한 셜록홈즈도 그중 한 명이다. 애드거 앨런포가 추리소설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면, 셜록홈즈는 수집한 증거와 과학수사를 통해 사건을 추적하는 현대 추리물 장르를 완성시켰다. 홈즈의 수사기법은 현대 과학수사기법에 상당한 영감을 줬다.

셜록홈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사냥모자를 쓰고, 망토 달린 코트를 입고, 구부러진 파이프 담배로 담배를 비우며 돋보기로 메모를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셜록홈즈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으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다. 셜록홈즈는 1887년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로 데뷔한 이래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다.

셜록홈즈를 창작한 코난도일은 의사였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출신으로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런던에 정착해서도 의업에 종사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코난도일은 셜록홈즈 시리즈로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을 남겼다. 셜록홈즈의 첫 시리즈인 [주홍색 연구]에는 셜록홈즈에 대한 배경이 꼼꼼히 잘 설명돼 있다. 홈즈는 런던 시내 ‘베이커가 221B’에 산다. 육군 군의관을 지낸 존.H.왓슨과 함께 하숙집을 ‘셰어’하고 있다. 홈즈의 활약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왓슨이다. 여로모로 왓슨에게서 코난도일의 향기가 느껴진다.

현대 추리물 장르의 완성작

셜록홈즈는 과거 추리소설 속 탐정과 달리 상당히 개성적이다. 1m80㎝가 넘는 큰 키에 너무 깡말라 키가 더 크게 보이는 인물이다. 눈매는 날카롭고, 살집이 없이 오똑선 매부리코의 콧매도 날카롭다. 턱은 각지고 돌출해있다. 문학·철학·천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식물학은 아편·독성·벨라도나 같은 물질에 대해서는 해박하지만 원예지식은 전혀 없다. 한 눈에 여러 종류의 토양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지질학 지식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잘 모른다. 화학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특히 범죄 관렴 문헌에 대한 지식은 ‘놀라 자빠질 정도’로 많이 갖고 있다. 해부학에 대한 지식도 많지만 체계가 없다. 취미로 바이올린을 수준급으로 연주한다. 목검술·펜싱·권투는 프로급이다. 영국 법에 대해서도 실용적인 지식이 꽤 있다. 비범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불완전한 캐릭터, 셜록홈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주홍색은 죄를 상징하는 빛깔이다. 그러니까 주홍색 연구란 범죄에 대한 연구를 뜻한다. 셜록홈즈는 로리스턴가든 3번지에서 발생한 기묘한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그렉슨 경감과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조언을 주면서 소설 속에 데뷔한다. 홈즈는 그렉슨 경감의 편지를 받고 사건현장에 뛰어든다. 살인을 당한 사람은 미국인 드리버. 없어진 물건도 없고, 사인도 알 수 없다. 현장의 벽에는 ‘Rache(독일어로 복수)’라는 단어가 붉은 글씨로 쓰여있다. 홈즈는 정원과 실내를 관찰한 결과 피살자는 독살당했고, 가해자는 신장 180cm 이상의 남성으로 인도산 시가를 피는 중년 사내라는 것을 추리해 낸다. 이어 홈즈는 현장에서 습득한 결혼반지를 이용해 범인을 추적한다. 하지만 적은 만만찮다. 드리버에 이어 그의 조수였던 스탠거슨도 살해된 채 발견된다.

범죄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네트워크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1인 자영업자인 사립탐정 셜록홈즈는 영국 경찰과 달리 조직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 요즘처럼 CCTV나 위치추적기 같은 첨단기기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셜록홈즈는 집에 앉아서 범죄용의자의 정보를 얻는다. 방법이 무엇일까. 셜록홈즈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른바 ‘베이커가 특공대(Baker Street Irregulars·BSI)’다. 6명의 부랑자 아이들로 구성된 이 특공대는 홈즈가 원하는 정보를 전달해준다. 대가는 하루 1실링이다. 만약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면 1기니(1파운드 1실링)를 준다. 셜록홈즈는 “저런 어린애들 하나가 경찰 대여섯명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만족해 한다.

셜록홈즈의 팬들은 이 아이들의 단체를 주목했다. 1934년 미국에서는 셜록홈즈 팬들의 모임인 ‘베이커가 특공대’가 공식출범한다. 베이커가 특공대는 셜록홈즈와 관련된 장학금을 수여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1월9~13일 뉴욕에서 셜록홈즈의 165회 생일주간이 열린다. 이들의 홈페이지(www.bsitrust.org)에 베이커가 특공대의 역사와 함께 코너에 들어가면 다양한 이벤트를 접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은 팬클럽인 ‘아미’ 못지 않은 셜록홈즈 팬들이 이미 80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셜록홈즈의 팬들은 일본에도 많다. 일본에서는 ‘일본 셜록홈즈 클럽’이 유명하다.

셜록홈즈의 팬들을 영국에서는 ‘홈지안(Holmesian)’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고 칭한다. 영국인들의 셜록홈즈 사랑은 대단하다.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사람으로 여길 정도다. 영국 TV채널인 ‘UKTV Gold’가 2008년 3000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58%가 셜록홈즈를 실존인물로 알고 있었다. 셜록홈즈 캐릭터에 실증을 느꼈던 코난도일은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를 죽인다. 하지만 쏟아지는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살려냈다. 원래 영국에는 베이커가 221B가 없었다. 하지만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시는 도로를 정비하면서 새 주소를 부여했다. 지금 이곳에는 ‘셜록홈즈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홈지안과 셜로키언은 팬덤의 원조다. 팬덤(Fandom)은 어떤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런 문화적 현상을 일컫는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품을 구매하는 일반소비자와 구분된다. 이들은 스스로 커뮤티를 구성하며 대상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열렬히 추종한다. 그러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변화시키는 데까지 참여한다. 소비자면서 생산자가 되는 사실상의 프로슈머다. 이들의 경제활동을 ‘팬덤경제학’이라고 부른다. 팬덤은 자신의 스타에 관한 모든 것을 무한정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조공’도 한다. 조공이란 팬들이 연예인들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팬덤은 시장경제의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는 그들만의 경제가 있다.

영국 홈지안, 미국 셜로키언

팬덤은 연예인 스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 경제 인물, 서비스에도 팬덤현상이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종교 부흥회나 록콘서트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버핏의 강연을 듣고, 운동화, 캔디, 목걸이, 속옷 등 버크셔해서웨이의 ‘굿즈’들을 산다. 신형 아이폰을 사기 위해 미국 뉴욕의 애플스토어 앞에서는 판매 며칠 전부터 줄을 선다. 심지어 신상품을 가장 먼저 구매할 수 있는 맨앞자리가 거래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의 발달은 팬덤 현상을 글로벌한 현상으로 확산시켰다.

피살된 드러기와 스탠거슨은 미국에서 건너온 몰몬교인들이었다. [주홍색 연구]에는 솔트레이크시티를 탄생시킨 미국 몰몬교의 아픈 역사도 숨어있다. 셜록홈즈가 불멸의 캐릭터가 된 것은 잘짜여진 스토리텔링이 뒤를 받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463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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