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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9)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 인생 2막에 대비해 ‘투 라이프’를 살아라 

 

이필재
농협 대리 시절 책 쓰기 시작해 저서가 51권

▎사진:박종근 기자
“직장생활 하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취미생활처럼 하는 겁니다. 이 일이 바로 ‘라이프 워크’죠.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이 나의 평생 직업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투 잡’을 할 게 아니라 ‘투 라이프’를 살아야 합니다.”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투 잡은 두 분야에서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투 잡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인생 2막에 프리랜서를 꿈꾼다면 직장생활을 충실히 하는 한편 투 라이프를 사는 ‘이중생활’로 이직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조 대표가 그랬다. 지방대를 나와 천신만고 끝에 공채 입사한 농협에서 회사생활이 지루해질 무렵 고향인 춘천의 농협연수원으로 발령이 났다. 신참 교수 요원으로 고객 응대라는 과목을 맡았다. 제대로 가르치는지 궁금해 그의 첫 강의를 청강한 연수원장이 대뜸 그에게 책을 써보라고 권했다. 1년 후 그의 첫 책 [고객응대]가 나왔다. 1980년의 일이다. 그해 여름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농협의 대리급 이상 간부들에게서 사표를 받았다.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이었지만 입버릇처럼 ‘사표를 내고 싶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사표는 돌려받았지만 어떤 일이 닥치든 안 잘리고 버틸 능력을 갖추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취임한 농협중앙회장이 농협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친절봉사운동을 벌였다. 그는 친절 서비스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고객응대]를 대폭 손질해 [손님 잘 좀 모십시다]를 냈다. 서울의 신세계백화점 등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금융회사·항공사·호텔 등 서비스업 종사자가 몇 십만 명에 달했지만 그때까지 친절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토종 책이 없었다.

책이 일으킨 반향 덕에 출간 5개월 후 농협중앙회장의 지시로 중앙본부 1000여 명의 임직원을 앉혀놓고 친절 봉사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3개월 후 농협 차원의 친절봉사운동을 최일선에서 이끌라는 회장의 지시를 받고 아예 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백도 줄도 없는 그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공개 강의 덕에 발탁된 것이다.

“자기계발은 맡은 일의 연장선상에서, 몸담은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한편으로 ‘내년에 조직의 상황이 급변해 퇴직을 해야 한다면 그럼 뭘 하지’라는 물음에 자문자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 대표는 지금까지 51권의 책을 냈다. 기자와 인터뷰하던 날 그는 52권째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주제는 리더십. 그의 책 쓰기 노하우는 독보적이다. 우선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아 책 제목을 정한다. 책을 내는 이유를 중심으로 공들여 머리말을 쓴다. 키워드 중심으로 쓰는 초고를 A4용지 70~80매 분량으로 완성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초고를 확장한다. 탈고까지는 보통 6~8개월 걸린다. “책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절반 이상입니다. [비서처럼 하라]는 ‘CEO처럼 하라’도 아니고 비서한테서 뭘 배우느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2년 연속 억대의 인세를 받았고 10년 간 꾸준히 팔렸습니다. 스피치론인 [멋지게 한 말씀]은 그해 가장 잘 지은 이름으로 뽑혔죠. 실용서 제목은 품격을 지니기보다 시류를 쫓아야 합니다.”

책을 많이 쓴 덕에 책 쓰는 노하우를 주제로 강의도 한다. 이 강의를 그는 ‘수강료가 10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맡는다. “제가 쓴 책은 사실 너댓 권 빼고는 허접합니다. 글발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남의 글을 표 나지 않게 짜깁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고액의 수강료를 받으면 안 되는 거죠.” 책 인세보다는 책의 내용을 주제로 한 강의·강연료가 그의 주수입이다. 책을 내고 책의 약발이 있는 동안 강의를 하는 건 말글로 먹고사는 프리랜서들의 오래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강의 노하우는 ‘와우-아하-하하’ 반응 유발

그가 한국강사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강사협회는 강사 양성 과정을 운영했다. 산업 강사로서 그의 강의 노하우는 청중들에게서 3개의 감탄사를 자아내는 것이다. 와우! (대단하네), 아하! (그게 그 소리였군), 하하! (재미있네). 그가 생각하는 산업 강사 경쟁력의 요체는 말하자면 쇼맨십, 전달력, 유머 코드이다. 그는 유머에 관한 책을 네 권 썼고, 평상시에 남을 웃길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강의 때 써 먹으려 스마트폰에 메모를 한다. 젊은 날 그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웃기면 ‘오빠’ 소리가 터지고 청중석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요즘은 나이 칠순에 채신머리없어 보여 그렇게는 안 합니다. 사실 잠자는 청중 없이 강의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웃기지 않아도 돼요.”

농협중앙회 상무를 끝으로 첫 직장에서 퇴직한 그는 강원도 정무부지사,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강원도 정무 부지사는 농협을 떠난 지 5일 만에 당시 김진선 지사가 서울로 찾아와 맡게 됐다. 이 인연 때문에 춘천시장·국회의원·강원도지사 등 선출직 공직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예비 후보에 그쳤다. 세 번 출마로 재산을 날린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창의 경영연구소라는 1인 기업을 차렸다. 연구소 문을 연 첫 해에 그는 여섯 권의 책을 썼다. “생각도 못한 행운과 불행으로 점철되는 게 인생입니다. ‘운7 기3’이란 말대로 우리 능력이 비중은 20~30%에 불과하죠. 선하게 살다 보면 신의 방식으로 언젠가 행운이 찾아온다고 경험적으로 믿습니다.”

소속 정당의 공천도 못 받은 세 번의 선거 패배를 그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거만 나가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거죠. 공천을 못 받은 후 아내에게 ‘우리가 좌절해 사람들이 고소하다고 말하게 만들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때 공직선거에 도전했기에 낙선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만일 출마하지 않았다면 ‘그때 출마하면 당선됐을 텐데’ 하고 나중에 후회했을 거예요. 후회 최소화의 원리를 적용하면 출마 후 낙선 쪽이 후회가 더 작아요.”

그는 요즘 유튜브에서 ‘직장인 자기계발 채널’인 [조관일 TV]를 운영한다. 자기계발 분야 최고의 유튜버가 되는 게 목표다. 51권의 저서를 유튜브용 강의로 만들면 20년 간 강의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85세에 독특한 노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나이가 들면 꿈은 사라지고 목표만 남죠. 뭘 하며 살든 세 끼 밥이야 먹겠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돼요. 나의 의지로 태어난 세상은 아니지만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나의 역사를 써야죠.”

그는 개념 및 용어의 브랜딩에 능하다. 일례로 2011년 부서 이동이 잦은 융복합 시대엔 정신력 강한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멀티어십(Multiership)론을 발표했고 이듬해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했다. 2013년엔 이 말이 미국에 소개됐다. 내년엔 멀티어십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사를 양성할 생각이다. “꿈을 꾼다고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노숙자라고 다 꿈이 없었겠어요? 이직하기에 최적인 타이밍도 없어요. 필요한 건 멘털 리허설입니다. 한번뿐인 인생에 리허설이란 없지만 ‘1년 후 퇴직을 한다면 뭘 해서 먹고 살지’ 자문해 보고 자기계발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퇴직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대부분 엄두를 못 냅니다. 엄두못냄 증후군이죠.”

1465호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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