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버려야 할 ‘3D’ 취해야 할 ‘3H’ 

 

김경원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장
#1. 서기 960년 송나라가 건국했을 때 중국은 통일국가가 아니라 여섯 개 나라가 각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송 태조 조광윤(趙光胤)은 이들 국가를 차례로 정복하며 통일을 이뤘다. 964년 서남쪽의 후촉(後蜀)을 공격하려 했을 때 일이다. 후촉의 왕 맹창(孟昶) 밑에는 왕소원(王昭遠)이란 중신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제갈량과 빗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송이 쳐들어 오자 그는 태연자약하게 “내가 어찌 승리를 거두는지를 보여주마”라며 큰 소리를 쳤다. 평소에 병서를 많이 읽어 자신이 ‘병법 이론의 대가’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실전 경험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막상 전쟁에 임해서는 송군에게 연전 연패하며 퇴각을 거듭했다. 그는 검문이라는 곳까지 후퇴해서 ‘병법 대로’ 진을 쳤다. 그곳의 험한 지형 때문에 적이 쉽사리 쳐들어 오지 못할 것이라 안도하던 차에 적장이 의외의 기습을 해오자 또 도망쳐서 한 민가의 헛간에 숨어있다 잡혔다. 이로써 후촉은 송나라에 흡수됐다.

#2. 1943년 3월 경에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라는 지역에서 독일의 만슈타인 장군이 이끄는 ‘남부집단군’은 소련의 52개 사단을 궤멸시켰다. 히틀러는 바로 여세를 몰아서 그 북쪽의 쿠르스크라는 지역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만슈타인은 반대했다. 이기기는 했으나 전력이 너무 소진됐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가 명령대로 막상 공격하려 하니 이번엔 히틀러가 마음을 바꿔서 전력을 보강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 사이 4개월 동안 소련군은 참호를 파고 전차용 함정을 파는 등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 그 해 7월 초 작전이 시작돼 북쪽에서는 클루게 장군이 이끄는 중앙집단군, 남쪽에서는 만슈타인의 남부집단군이 서로 협공을 해나갔다. 중앙집단군은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지만 남부집단군은 적을 혹독하게 몰아붙여 적을 궁지로 몰았다. 그러나 작전 개시 후 일주일이 지나자 히틀러는 이 두 장군에게 작전 중지를 명령했다. 이틀 전 이탈리아에 연합군이 상륙했으니 소련 전선의 병력을 빼내 이탈리아의 연합군을 막으라고 한 것이다. 만슈타인은 반발했다. 소련군에 남아있는 전력이 거의 없으니 자신의 예비부대를 동원해 공격하면 완전히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이 의견을 묵살했다. 이후 그와 히틀러 간의 의견 충돌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몇 개월 후에 히틀러는 그를 해임하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모델 장군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그리고 그 이전보다 작전에 더 많이 개입하면서 무리한 명령을 남발했고 그럴수록 독일군의 패색은 더 짙어졌다. 영국의 전략이론가인 리델 하트는 종전 후 독일 장군들을 인터뷰해 책을 출간했다. 동부전선에서 싸웠던 독일 장군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장을 모르는’ 히틀러의 독단을 최대 패인으로 꼽았다.

2017년 5월 출범한 새 정부를 둘러싼 경제환경은 참 좋았다. 주가는 최고치 경신을 거듭하고, 민간소비 등 거시경제의 지표도 확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큰 기대도 가세한 덕이다. 새 정부가 추진한 남북관계 개선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면서 얼마 전까지 대통령 지지율도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그러나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경제 성적표는 누가 보아도 합격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요약되는 경제정책 기조 아래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했지만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소득 하위계층의 소득은 더욱 떨어진 결과 빈부격차는 외려 더 심화됐다. 특히 일자리는 50조원 이상을 쏟아 붓고도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뒷걸음질을 거듭하고 있다. 또 몇 차례의 ‘강도 높은’ 대책에도 집값은 하늘 높이 올랐다. 최근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이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최저 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면서 수많은 자영업자가 이미 문을 닫거나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운용방식의 기조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 정부 인사들은 아직도 ‘소득주도성장’이란 구호를 제창하고 있는 실정이다.

1년여 전에도 필자는 같은 주제로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주제 넘게도 수십 년 간 실무형 이코노미스트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 정부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정부 만능론을 믿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시장과 기업을 존중하며 그 목소리를 경청하고 재정 건전성에 유의해달라’는 것이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이 ‘과연 소득주도성장으로 이어질지 여부를 지켜본 후 그 지속 여부를 결정하길’ 권했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의 행보는 이런 조언이나 권고와는 크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에게 다시 조언과 권고를 하라고 해도 내용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즉 ‘겸허하고(Humble) 경청하며(Hear) 존중하는(Honor)’ 자세를 강화하거나 새로 취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덧대어 새 정부가 버려야 할 세 가지 자세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정치적 신조(Dogma)’에 더 이상 억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소득주도성장’도 사실 진보적 정치 이념의 산물로, 현재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는 큰 원인이 됐다. 특히 이 신조가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도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재정 건전성에 노란 불, 빨간 불이 들어오고 있다. 또 이 신조에 계속 매달리다 보면 노조 집단 등에 과도한 자신감을 주어 정부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으려 할 것이고, 이 결과 갈수록 정책의 입안·실행·효과 면에서 문제가 커질 것이다. 이미 이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둘째 ‘불통(Deaf ear)’이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돌아볼 일이다. 시장과 기업의 소리를 잘 듣지 않는다는 비판은 물론, 전문가 집단도 이념 성향에 따라 편을 갈라 반대편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비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카드 수수료 인하와 같은 미봉책보다는 근본적으로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매출을 증대시킬 안을 이들에게 직접 들어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필자가 다니는 대중음심점이나 일반 상점의 점주들에게 물어보면 최저임금을 동결하고, 유연·탄력근로제 등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보완해 주변 회사들의 운영시간 자체가 길어지게 해주면 정말 좋겠다고 한다. 또 건강보험료 부담이 세금보다 더 과중해졌으니 보험료 동결 등을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셋째 정책 실무부서에 대한 청와대의 ‘군림(Dominance)’은 재고의 여지가 많다. 전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 간의 마찰은 여러 번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참모진은 경제정책에 대한 실무 경험은 일천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들이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것은 배를 산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기업에 다닐 때 회장 비서실의 입김과 간섭이 세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순기능을 넘어서는 경우를 참 많이 목격했다. 대통령도 최근 ‘현장’을 강조하고 있다. 현장의 일은 현장에 맡길 일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당신이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잘 모르는 것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확실히 안다고 자신하는 것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꼭 현 정부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듯하다. 출범 이후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다. 성공한 정부가 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1466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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