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창조경제연구회 규제 개혁 토론] ‘先허용 後규제’로 정책 대전환 절실 

 

정리=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미국·EU·일본 빠르게 규제 개혁 중… 글로벌 스타트업 70% 한국에선 사업 불가

2017년 아산나눔재단은 글로벌 스타트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한 해 동안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글로벌 스타트업 100곳을 꼽았다. 그 가운데 70곳이 한국에선 사업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물처럼 촘촘한 국내 규제가 문제였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스타트업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한국에서는 규제”라며 “연구개발(R&D)에 정부 예산 20조원을 쏟아 붇지만 세계적인 기술을 내놓아도 규제에 걸리면 모두 허사가 되는 게 한국의 아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각종 규제 1만5000개에 달해

한국은 어쩌다 규제 공화국이 된 것일까. 역대 정권마다 규제 개혁 방안을 내놓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마다 증가한 규제는 현재 1만5000개에 달한다. 한국의 규제 현황을 점검하며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창조경제연구회가 집중 토론을 벌였다. 이민화 교수의 사회로 규제 관련 전문가 세 명이 모였다. 규제개혁위원을 지낸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와 총리실에서 규제개혁 과제 조직 개편 방안을 진행했던 곽노성 한양대 특임 교수, 그리고 코리아스타트업 포럼에서 규제 개혁을 위해 활동 중인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필수”라며 “이를 풀어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민화 교수(이하 이민화): 왜 지금 한국에서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고 보시는지요?

구태언 변호사(이하 구태언):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기술 여기에 서비스를 더한 산업이 확장 중입니다. 변화에 나설 시점인데 규제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현행 법규는 스타트업보다 기존 플레이어를 보호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시장 진입을 막는 규제를 분리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이를 구분해줘야 디지털 전환기를 잘 넘어 갈수 있습니다.

곽노성 교수 (이하 곽노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제도에서 나옵니다. 제도 경쟁력이라 할 수 있지요. 인재가 성장하고 기술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준비해야 앞서 갈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이 규제입니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최악의 규제 국가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이 시장에 적용된 다음 상황을 봐서 규제를 가합니다. 개도국에는 아예 규제가 없고요. 일본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최근 미국 식으로 법규를 바꾸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규제를 내놓는 우리가 경쟁에서 앞서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김태윤 교수 (이하 김태윤): 한국에선 혁신 기술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규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혁신 성장의 최소한의 토양은 신뢰입니다. 지금은 불신을 전제로 설계된 규제시스템이 충돌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혁신도 별로 없습니다. 해봐야 규제에 잡히니까요. 투자를 유인하지 못하는 정치·경제·사회 환경에서는 혁신과 성장 모두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민화: DJ 정부 시절 규제를 7000개로 줄였습니다. 지금의 절반 수준인데, 규제 개혁 사례로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왜 그 사이 규제가 다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요?

곽노성: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곳에서 공무원은 책임을 회피해왔습니다. 규제를 풀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정치권도 개혁보다는 지지세력 확보의 수단으로 규제를 이용해왔습니다.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규제 강화로 책임을 피했습니다. 부처의 행정명령과 고시제도도 발목을 잡습니다. 법령이 아님에도 기업은 이를 따라야 합니다. 법제처는 법리상 부적절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힘을 실어 줬습니다. 이런 일이 쌓이며 한국이 규제 천국이 됐습니다.

김태윤: 정치·관료·산업의 철의 삼각지대라고 봅니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들은 서로 비난하며 견제하는 가운데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사고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해야지요. 이때 정·관·산 연합에 유리한 포인트를 잡아서 여론을 이끌어 갑니다. 안전에 민감한 국민의 마음을 이용해 안전 문제를 부각시킨 다음 규제를 만들어 냅니다. 그 사이 본질은 뒤로 밀려 잊혀지곤 했습니다.

구태언: 아침에 ‘정부는 뭐하나?’라는 논조의 언론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15만건이 뜨더군요. 사회적 갈등을 정부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타율문화가 있습니다. 정부도 이에 기대어 자신의 권한을 강화합니다. 이는 법령의 지속적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산업을 키우기 위해 나온 각종 진흥법이 500여 개나 됩니다. 문제는 이들이 진흥법의 기능을 상실하고 조직·예산·인력의 유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진흥법이 생기면 민간 기업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규칙을 정해 놓은 셈이지요.

각종 진흥법, 조직·예산·인력 유지 수단으로 전락


▎사진:김현동 기자
이민화: 개혁의 한 방법으로 네가티브 규제를 이야기합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태윤: 현행 법령체계를 훌쩍 뛰어넘는 일이라 어렵다고 봅니다. 네거티브보다는 미약하나마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현행 규제의 적용을 회피·유예·면제하는 ‘개별구제’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의 ‘혁신 협상(Innovation Deals)’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혁신 성과를 창출할 수 있으면 EU 회원국 간 협의를 합니다. 혁신 방안을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 융통성 있는 대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기업 파트너십’ 제도도 주목할 만합니다. 사람이 먹는 식음료 규제를 기업 자율에 맞기는 방식입니다. 위험도를 18단게로 정하고 위험도에 따라 FDA 허가 없이 사전 출시를 허가해줍니다.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신뢰할 수 있기에 가능한 제도지요.

곽노성: 우리에게 중요한 패러다임은 ‘선허용 후규제’ 같은 미국 FDA 방식이라고 봅니다. 일단 할 수 있게 해주고 그 다음 규제 시점과 방식, 강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규제 수준은 확인된 문제에 한해서 필요한 만큼만 적용하면 됩니다. 정부가 사전에 산업 발전을 상상하면서 규제를 기획하면 곤란합니.

이민화: 규제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신다면.

곽노성: 창구 일원화가 중요합니다.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기업 규제는 과기부, 산자부, 중기부에 문의해야 합니다. 사업자가 규제 샌드 박스 관련해서 어느 부서에 신청해야 하는지 총리실에 문의했던 일이 있습니다. ‘좋은 데로 가세요’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IT 기업은 과기부, 기술에 융합 부분이 있으면 산자부, 그리고 지역 기업이면 중기부가 담당합니다. 제도를 각각 운영하면 현장에서 혼선을 초래합니다. 일본은 총리실 주관입니다. 여기에 각 청은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요.

구태언: 미 하원에서 블록체인 토큰 분리법을 통과시겼습니다. 인상적인 맨트가 있었습니다. ‘닷컴버블 시대에 인터넷 기업을 규제하지 않았기에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엇다. 블록체인 법안도 미국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위해 통과시킨다’는 요지였습니다. 우리는 닷컴버블 이후 각종 규제를 강화하며 IT기업을 묶었습니다. 미국은 이를 풀어주었기에 앞설 수 있었습니다. 미국 감사원은 기업 규제를 어떻게 풀지 연구합니다. 규제를 줄인 공무원이 표창을 받습니다. 우리는 규제를 늘려야 고과가 높아지지요. 한국도 정책 방향을 미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윤: 규제 개혁을 위한 원칙은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고 정부 간섭을 대폭 줄이는 것입니다. 예컨대 집값 안정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보다, 그곳에 R&D 단지 만들고 글로벌 인재를 유치해야 합니다. 그린벨트라는 규제를 푸는 이유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정부는 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며 이상 현상을 잡아내면 됩니다. 나서서 행동강령을 만들고 이대로만 따르게 해서는 문제가 더 많이 생길 뿐입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위원회를 지금의 공정위 위상으로 키워서 힘을 실어줬으면 합니다.

“규제개혁위원회 위상 공정위 수준으로 높여야”

곽노성: 규제를 너무 쉽게 만듭니다. 최대한 신중하게 도입했으면 합니다. EU상의에서 낸 보고서가 있어요. EU가 새로운 충돌안전기준을 발표했습니다. 신차는 2022년 이후, 기존 차는 2024년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한국은 이 법안을 그대로 베낀 다음 국내에 2020년 9월부터 시행합니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놀랐지요. 업체가 따라갈 방법이 없는 법안을 시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지이요.

구태언: 규제를 좀 더 차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도 월드컵, 각국 리그, 동네 축구의 룰이 다릅니다. 상황·지역·규모에 따라 다른 규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대기업 기준을 중소기업에 적용하면 기업들이 버티질 못합니다. 규제를 내놓 때에 ‘공무원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업자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이민화: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였는데, 지금 규제로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혁신을 외치기에 앞서 이를 가로 막는 규제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며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1467호 (2019.01.1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