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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사업 노리는 기업들은 지금] 자본금 늘리고 태스크포스 만들어 ‘열공’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북미 정상회담,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예고… 비핵화 협상 진전 없으면 용두사미 가능성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석한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박호영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부상(왼쪽부터) 등이 서울-평양 표지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9일까지 이틀 동안 중국을 방문했다. 집권 후 4번째 방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공식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북중 정상회담이 열린 당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관망 모드였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장소 후보지가 언급되고, 북중 정상회담 한 달여 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전례 등을 감안하면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해빙 무드는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는 남북 동해선·경의선 철도 착공식이 열렸다. 이번 착공식은 2008년 11월 남측 화물열차가 북측 철도 구간인 판문역을 마지막으로 달린 지 10년 만에 재개된 남북 철도연결 사업이다. 이번 사업을 두고 남북 양측의 기대가 크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도다. 현재 강릉~제진 104㎞ 구간이 단절돼 연결 작업이 필요하다. 경의선은 2004년 서울~신의주 구간이 연결됐으나 시설 개량 등 현대화 사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남북 철도 현대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또는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R) 등을 통해 유럽까지 사람과 물자가 오갈 수 있다. 철도 연결은 남북 경제 교류의 시발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 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어 남북경협에도 긍정적 요인이 많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고 자본금을 늘리는 등 남북경협 준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아산, 자금조달 위해 500억원 유상증자


납북경협을 가장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기업은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에서 남북경협 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아산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말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 금강산 관광 등에 투자할 자금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해 세 차례 북한을 방문해 남북경협 사업 추진을 위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 지난해 11월 18일에는 북한에서 4년 만에 금강산 관광 기념식을 열고 대북사업 재개 의지를 밝혔다. 현 회장은 ‘남북경협통’으로 불리는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현대아산의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했다. 배 사장은 기획예산처 국장 시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포스코도 남북경협의 수혜자를 자처하는 기업이다. 지난 7월 취임한 최정우 회장은 포스코의 협력 대상에 북한을 포함시켰다. 최 회장의 구상하는 대북사업의 핵심은 북한의 광물자원이다. 광물자원공사가 발간한 북한광물자원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석탄 매장량은 약 205억t, 철광석 59억t, 마그네사이트 60억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 회장은 “마그네사이트, 천연 흑연 등 포스코가 개발하는 제품 원료의 상당량이 북한에 매장돼 있다”며 “북한의 철강과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KT가 가장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남북협력사업개발TF를 구성해 대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T는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통신 지원을 맡았고, 지난 2005년 KT 개성지사를 열며 개성공단에 통신서비스도 제공한 경험이 있다. 이미 개성공단 내 남북 간 광케이블 등 통신 인프라와 함께 북한 당국으로부터 50년 간 임차한 1만㎡ 규모의 통신국사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SK텔레콤도 지난해 7월 남북협력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무선통신을 중심으로 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그룹도 지난해 북한,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 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성) 등 북방지역을 연구하고 협력하는 사업을 담당할 ‘북방 TF’를 구성했다. 금융권은 북한의 금융·경제 현황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북한동북아연구센터를, IBK경제연구소는 북한경제연구센터를 신설했다. 신한금융지주도 북한시장 동향과 신규 사업 진출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해 관련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난 2004년부터 개성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은행도 남북 경협 준비에 한창이다.

삼성·현대차·LG·SK 등 주요 그룹도 계열사별로 북한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남북경협은 북한 비핵화의 진전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남북 철도 착공식에서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실질적인 착공과 준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의 철도 착공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과 2002년에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이 세 번째다.남북의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2000년 6.15 공동선언 후 본격 논의됐지만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완으로 종결됐다. 2002년에도 경의선·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착공식을 했고, 실제 공사를 거쳐 2007년 경의선·동해선에서 남북 열차 시험 운행까지 했다. 그러나 2008년 말까지 1년 간 화물열차가 남측 도라산역과 북측 판문역을 매일 운행한 것을 끝으로 관련 사업은 중단됐다.

결국 남북 철도·도로 연결 공사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앞으로 일정은 불투명하다. 착공식을 했지만 정밀 조사와 설계 수립까지 1~2년가량이 걸린다. 천문학적인 투자비용 마련도 과제다. 업계에 따르면 남북철도 연결 비용이 최대 3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철도 환경에 대한 정확한 조사나 자료 등이 없어 비용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두 번의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흐지부지 끝나

이렇다 보니 사업이 제대로 진전이 되지 않는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북한금융연구센터를 만든 금융연구원은 이미 한 차례 TF를 해체한 바 있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 대박” 발언을 하자 통일금융 연구를 위한 ‘통일금융연구센터’를 세웠지만 1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금융위원회가 발족한 통일금융 태스크포스(TF)도 3개월 간의 조사 후 해체됐다.

1468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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