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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장난감 병정' 이것 다음에,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A라는 일이 B라는 사건 이후 발생했다는 이유로 B가 A의 원인이라고 추정하는 ‘포스트 호크 에르고 프로프테르 호크’ 오류

▎[장난감 병정] 한정판 기념 접시.
덴마크 코펜하겐을 찾는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찾는 성지 순례 코스가 있다. 인어공주 동상이다.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이 칼스버그맥주 2대 회장의 의뢰를 받아 1913년 만든 80㎝ 크기의 동상이다. 크기가 작고 보잘것없다 보니 인어공주 동상은 벨기에의 오줌싸게 소년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함께 가장 허무한 3대 유럽 관광지로 종종 불린다. 그같은 악평을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관광객들은 여전히 이 동상을 보러 찾아든다. 안데르센이 동화 [인어공주]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어준 덕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란 어른이 있을까. [인어공주]를 비롯해 [벌거벗은 임금님] [백조왕자] [미운 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 등 주옥같은 동화 130여 편이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도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원작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이끈 작품도 [인어공주](1989)였으니 안데르센 없는 디즈니는 생각하기 힘들다.

덴마크 2대 도시 오덴세의 안데르센 생가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이 많다. 미운 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등 무언가 결핍이 있는 캐릭터들이다. 안데르센은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이 됐다. 커서는 양성애자로서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이런 점을 볼 때 불행한 캐릭터들은 안데르센의 분신이라는 평론도 있다.

안데르센의 고향은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다. 덴마크 최대 조선소가 있는 조선산업의 본거지였지만 금융위기 때 문을 닫았다. 지금은 풍력발전 등 거대 장치산업 제조도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산업은 흥망성쇄를 거치지만 스토리는 무게가 쌓여간다. 안데르센 생가와 박물관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데르센 생가로 가는 길 입구에는 총을 맨 외다리 병정이 위엄있게 서있다. 동화 [장난감 병정]의 주인공 병정이다.

안데르센은 주로 전래동화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따왔다. [장난감 병정]은 그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낸 첫번째 이야기다. 생일날 한 소년이 받은 선물상자 안에는 스물다섯 명의 장난감 병정이 있다. 이 중 한 장난감 병정은 다리가 하나만 있다. 외다리지만 병정은 결코 절도를 잊는 법이 없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처럼 언제나 꿋꿋하게 서 있다. 외다리 병정은 춤추는 발레무용수 종이인형을 사랑하게 된다. 두 팔을 쭉 벌리고 한 다리는 그녀 뒤로 높이 들어 팔과 몸통에 가린 탓에 그녀는 마치 다리가 하나처럼 보였다. 외다리 병정은 그녀도 자신처럼 다리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동병상련을 느낀다. ‘저 작은 무용수 아가씨와 나는 어울리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

하지만 외다리 병정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밤 12시에 나타난 도깨비 인형 때문이었다. 도깨비 인형이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 주지마”라고 경고를 하지만 외다리 병정은 무용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화가난 도깨비 인형은 “내일 두고보자”며 사라진다.

희한하게도 이때부터 외다리 병정의 인생이 꼬인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외다리 병정을 창문틀에 올려놨는데, 창문이 획 열리면서 외다리 병정이 3층에서 곤두박질해 떨어진다. 주인 아이는 땅에 처박힌 외다리 병정을 찾지 못하고 지나치고 장난꾸러기 사내아이 둘이 외다리 병정을 발견해 도랑에 띄운 종이배에 태워 보내 버린다. 종이배가 가라앉으면서 물에 빠진 외다리 병정을 물고기가 잡아먹는다. 물고기는 어부에 잡혀 시장으로 팔려간다. 외다리 병정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도깨비 인형의 장난 아니냐고. 정말 도깨비 인형의 소행일까.

명확한 증거 없이 도깨비 인형을 의심하는 것은 자칫 시간의 전후관계로 인해 발생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른바 ‘포스트 호크 에르고 프로프테르 호크(post hoc, ergo propter hoc)’로 ‘이것 다음에,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라는 뜻이다. 즉 A라는 일이 시간적으로 B라는 사건 이후에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B가 A의 원인이라고 추정하는 오류다. 고사성어로 치자면 ‘오비이락’과 유사하다.

하노벡은 저서 [경제학자의 사생활]을 통해 산업단지를 만든 후 공장이 많이 유치됐다며 지자체들이 공업단지부터 먼저 만들고 보는 것이 이와 비슷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공장들이 입주할 때는 산업단지뿐 아니라 교통편의, 소비지와의 거리, 기업 지원 정책, 인력 및 원자재 수급, 행정적 지원, 환경문제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하지만 상당수 지자체들은 이 같은 고려는 뒷전으로 물린 채 우선 산업단지부터 조성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돈만 쏟아부은 텅빈 산업단지가 곳곳에 산재하게 된다.

하노벡은 이같은 기대가 ‘카고컬트(Cargo Cult)’와 닮았다고 지적한다. 카고컬트란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 거대한 새가 날아와 진귀한 물건을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남태평양의 미신을 말한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태평양의 많은 섬에 기지를 건설했는데, 잘못 투하된 식량과 떠내려온 미군 물품 덕에 원주민들이 뜻하지 않은 풍족함을 누리게 됐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이 철수하자 생필품이 부족하게 된 원주민들은 식량과 물품이 하늘에서 다시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활주로를 건설했다. 나무로 된 감시탑을 만들고 모조 헬멧을 쓰고 나무 무기를 들고 활주로 주변을 순찰하기도 했지만 비행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포스트 호크 에르고 프로프테르 호크’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나 국제행사에 대한 맹신과 닮았다. 철도가 놓이고 고속도로가 놓이면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 올림픽을 치르면 지역이 널리 알려질 것이라는 기대는 때때로 어긋난다. 지역의 경쟁력이 없다면 쭉쭉 뻗은 도로는 되레 빨대효과를 낳을 수 있다. 빨대효과란 지역의 인재와 돈이 다른 지역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벤트를 많이 유치하지 못한다면 대형 경기장은 막대한 관리비용만 드는 ‘하얀 코끼리’로 전락할 수 있다. 하얀 코끼리는 돈만 많이 들고 효용성은 없는 투자를 의미한다.

사회간접자본 투자, 국제행사 개최로 발전할 것이란 맹신

외다리 병정을 삼킨 물고기가 팔려가는 곳은 원래 있던 집이다. 외다리 병정은 기적적으로 무용수 아가씨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둘은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 어린 소년 중 한 명이 외다리 병정을 난로속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외나무 병정은 이제 확신한다. 소년이 자신을 불에 던져넣을 이유가 전혀없으니 이건 검은 도깨비가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게 틀림없다고. 때마침 세찬 바람이 불면서 발레무용수 종이인형도 난로의 불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정말 도깨비 인형의 질투가 불러온 저주였을까? 아니면 그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에 불과했을까? 안데르센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1468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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