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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18) 제선왕의 장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개선하려고 노력 

 

허영심·오만함 많았지만 진심·충신 기꺼이 수용... 맹자의 핵심 사상 드러난 대화의 주인공

▎일러스트 : 김회룡
“과인 같은 사람도 왕도(王道)정치를 펼칠 수가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정말입니까? 어떻게 과인이 가능한 줄 아십니까?”

“듣자니 왕께서는 소가 제물로 끌려가는 것을 보시고 ‘놓아 주어라. 두려워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라고 하셨다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면 충분히 왕도정치를 펼칠 수가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께서 비용을 아끼느라 큰 것을 작은 것과 바꾸게 했다고들 하지만, 저는 왕께서 소가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리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맹자(孟子)와 제(齊)나라 임금 선왕(宣王)의 대화다. 어느 날 소가 도살장으로 가기 싫어 애처롭게 우는 모습을 목격한 선왕은 소를 풀어주라고 지시했다. 죄 없는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같은 이유라면 소 대신 양을 제물로 삼으라는 명령은 온당치 못해 보인다. 죽음의 무게는 소나 양이나 같으니 말이다. 맹자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는 직접 눈으로 보셨고 양은 아직 보지 못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양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대상에게 선한 마음을 품는 것이 왕도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맹자는 제선왕을 차분히 일깨워주었다. “왕께서는 영토를 넓히고 제후들의 복종을 받아내어 천하에 군림하고 싶으시지요? 지금의 왕께서 그런 소원을 이루시길 바란다면 이는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고사성어의 유래). 제나라가 무력만으로 비슷한 국력을 가진 다른 여덟 나라를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왕께서 훌륭한 정치를 펼치고 인정(仁政)을 베푸셔서 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고 싶도록 만들어보십시오. 농사짓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왕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싶게 만들고, 상인이라면 모두가 왕의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싶게 만들어보십시오. 세상 사람 모두가 왕의 길을 걷고 싶게 만든다면 누가 감히 왕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왕도정치를 펼치는 데 힘쓴다면 자연히 천하가 왕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의 말을 들은 제선왕은 “원하건대 선생께서 나를 이끌어주십시오. 내가 비록 총명하지 못하고 민첩하지도 못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후 맹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성심껏 조언했고 제선왕 역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맹자 또한 제선왕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맹자 정치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들이 대부분 제선왕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선왕은 훌륭한 군주였을까? 맹자는 왜 제선왕에게 희망을 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선왕은 뛰어나다거나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재위 초기 손빈을 등용해 위나라를 제압하는 등 명성을 떨쳤지만 이내 자만에 빠졌다. ‘술과 여색을 탐닉했고 화려한 궁궐을 지어 풍악을 즐겼으며, 40리나 되는 수렵장을 건설했다. 황당무계한 궤변을 일삼는 자들을 가까이에 두며 지적 허영에 빠졌다. 재상 전기(田忌)의 충언도 듣지 않아 전기가 울화병으로 죽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를 180도 변화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역시 큰 잔치를 벌이고 있던 선왕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다. “나는 종리춘(鍾離春)이란 사람이다. 왕을 뵈러왔다. 나를 왕께 안내해라.” 궁궐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황당했다. 여인의 ‘이마는 몹시 높고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코와 목뼈가 심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등은 흡사 낙타와 같았고 머리털은 가을풀 같이 억세었으며 피부는 옻칠을 한 듯 새까맸다. 옷 또한 다 떨어져 있었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눈에 커다란 붉은 반점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용모가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런 여인이 무작정 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데다 심지어 ‘내가 지금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시집을 가지 못했다. 내가 장차 후궁에 거쳐하면서 대왕을 섬길 작정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니 병사들은 미친 사람 취급하며 내쫓으려 했다.

마침 문밖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제선왕은 그 여인을 안으로 들이도록 했다.

“시골 백성 중에도 그대처럼 못생긴 사람을 데리고 살겠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왕인 나를 섬기겠다고 했다니 까닭이 있겠지. 어디 하고 싶은 말을 해보아라.”

“왕께서 소인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감히 말씀 올리겠나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벌하지 않으리라.”

그러자 종리춘이 말했다. “왕께서는 지금 네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계십니다. 우선 진나라는 위앙을 등용하여 나라의 재정과 군사를 튼튼히 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진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이 분명한데 임금께서는 좋은 장수를 양성하지도 않고, 국경 방비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시니 이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다음으로 임금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신하가 있는 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나라 다스리는 일을 방기한 채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계시니 두 번째 잘못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첨을 일삼는 자와 황당무계한 말만 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왕께서 이들을 의지하고 계시니 이를 세 번째 잘못이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왕께서는 큰 궁궐을 짓고 넓은 동산을 만들며 화려한 누대를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지칠 대로 지쳤고 나라의 재정이 탕진됐으니 이것이 네 번째 잘못입니다. 이 같은 왕의 잘못으로 지금 우리 제나라는 몹시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이런 상황을 보지 못하십니까?”

그 순간 제선왕은 옥좌에서 내려와 종리춘의 손을 맞잡았다. “그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나의 허물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는 즉시 잔치를 파했으며, 간신을 추방하고 충신들을 대거 등용했다. 종리춘을 왕후로 책봉하라는 하교도 내린다.

제선왕은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았고 능력이 있던 군주도 아니었다. 이후에도 끝내 허영심과 오만함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종리춘의 겉모습만 보지 않고 말에 담긴 진심과 충언을 기꺼이 수용한 것, 나아가 그녀를 왕후로 삼은 것 역시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맹자가 제선왕을 찾은 것은 종리춘의 일이 있은 뒤였는데, 바로 이 같은 제선왕의 장점을 읽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물론 제선왕은 맹자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역사 속에서 명군으로 기억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제나라를 잘 다스렸고, 전국시대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군주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모자람을 알고 개선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최소한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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