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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연초 엔화 급변동 내막은] 中 경제 우려→ 호주달러 약세→ 엔 강세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 애널리스트
거래량 감소로 크게 흔들리는 새벽 시간... 엔화 급변동은 올해 외환시장 변동성 예고편

지난 연말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의 큰 변동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환시장은 유독 고요했다. 그러나 연초에는 달랐다. 유독 엔화 움직임이 켜졌고 1월 3일 이른 아침(6시 30분 무렵)을 기점으로 요동을 쳤다. 당일에는 여기저기서 엔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환시장을 보지 못한 단 몇 분 동안이지만, 역외의 원·엔 환율(100엔당)이 40원이나 급등해 잠시나마 1067원을 찍었기 때문이다.

거래 급감 시간대에 알고리즘 트레이딩 작동 겹쳐


먼저 당일의 현상을 파악하려면 외환시장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외환시장의 허브는 지구가 자전(自轉)을 하듯, 매일 아시아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다시 아시아로 거래가 순환 이동한다. 엔화 급등은 한국 시간 아침 6시 30분경 시작됐다. 이 무렵(6시~7시)은 하루 중 외환시장에서 거래량이 가장 적은 시간이다. 뉴욕에서는 주요 시장의 폐장으로 거래량이 급감하고, 아시아에서도 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아시아로 외환시장의 거점이 이동하는 과정에 거래량이 급감하는 탓에, 간혹 이례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한다. 1월 3일 엔화의 급등은 이런 시간적 특징에다 일정 명령에 의해 거래를 실행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트레이딩까지 작동하면서 움직임이 극대화된 것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영국 파운드화가 2016년 10월 7일 급락한 적이 있다. 당시 영국 파운드화 급락이 나타났던 시각도 이 무렵이었다. 당일 하루의 원·파운드 환율 변동폭이 무려 90원(역외 포함 기준, 1317~1407원)에 달했다. 당시는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2016년 6월 23일)가 끝난 지 3개월 여가 지난 때다. 급격한 움직임을 초래할 만한 경제적인 사건이 있던 시점은 아니었다. 그 시간대의 거래량 급감과 움직임을 증폭시킨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거론하지 않고는 달리 설명하기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거래량의 급감이 초래한 과도한 가격 변동은 시장 유동성이 정상 궤도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과잉 변동폭을 상당폭 되돌리는 경향이 있다.

1월 3일 아침 엔화의 급등은 호주 달러화와 일본 엔화의 직접 거래도 단초였다. 호주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하는 거래가 엔화 강세를 촉발한 것이다. 호주 달러는 엔화와 거래가 특히 활발한 통화다. 호주 달러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호주는 캐나다와 공통점이 많다. 양국은 최고 신용등급의 선진국이면서 자원부국이고 경제 규모(GDP)가 대등하다. 통화도 외환시장에서 거래에 제한이 없어 일명 경통화(Hard currency)라고 부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상대 통화로 한 거래량은 호주 통화가 캐나다 통화의 무려 5배에 달한다. 왜 그럴까.

중국 고성장의 과실을 향유한 호주 경제는 현재까지 무려 27년에 걸친 초장기 경기 확장기를 구가하는 동안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높은 금리의 매력을 유지했다. 전통적으로 외환투자자, 특히 개인도 외환거래에 적극적인 일본의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의 호주 통화를 선호한다. 일본 엔화의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 호주 달러의 역사적으로 높은 금리로 통화 간 금리차에 따른 수익을 추구하는 외환시장의 거래 패턴인 캐리 트레이드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엔과 호주 달러 거래의 특성상 방향성이 강하게 나타나면 다른 통화쌍의 거래에 파급되는 경우가 많다. 1월 3일 엔화의 급등도 엔화와 호주 달러의 거래가 외환시장 전체와 엔·달러 거래에 영향을 미친 동시에 원·엔 환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이날 왜 호주 달러는 약세, 엔화는 강세를 나타냈을까. 먼저 전날인 1월 2일 호주 달러 대 미국 달러 환율이 0.7에 도달하면서 손절성 매도가 나왔을 것으로 해석된다. 호주 통화에서 0.7이란 수치는 심리적으로 중요한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로 치면 1200원이 상향 돌파하느냐 지키느냐와 유사하다. 2016년 1월 이후 도달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경기 확장·위축을 가르는 기준선인 50을 19개월 만에 하회하며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호주 달러화에 약세 압력을 가했다. 또 이튿날(문제의 1월 3일 이른 시각)엔 애플이 미국 장 마감 후 지난해 4분기의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는데, 그 근거로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 경기 둔화가 예상보다 심각함을 들었다. 중국은 호주에게도 최대의 수출상대국이다. 연초에 엔화의 급등을 초래한 것은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 경제와 밀접한 호주 경제

그렇다면 엔화의 급등은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일까. 1월 3일의 엔화 급등은 거래량의 급감이 기여한 부분이 있어, 이후 일정 부분 이를 되돌리는 흐름이 나타났다. 그러나 애플의 실적 하향 조정이 부각시킨 중국 경제 둔화가 현재진행형이듯, 세계 경제·금융 여건을 보면 안전자산인 엔화의 강세가 언제 재현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의 둔화가 지속되는 경우에도 엔화는 강세를 보일 수 있고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금리 인상, 보유 자산의 축소)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낮아지는 것도 엔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 있는 변수이다. 엔화 약세를 지탱했던 중요한 축이 건실했던 미국 경제, 그에 따른 미국 연준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이었는데 이 축의 지지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달러화에 대해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에 대해서도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 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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