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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시장 위기 견디는 강한 체질 만들려면 

 

위기 대처법과 ‘고슴도치와 여우’… 오랜 호황 속에 누적된 리스크 터질 수도

까마귀와 참새가 사막을 향해 날고 있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무더운 먼 길을 날았기에 거의 파김치가 됐다. 목이 마른 참새가 까마귀에게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말했다.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낮게 날았다. 한참을 비행하다가 이윽고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았다. 까마귀와 참새는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고 땅에 내려왔다. 그러나 우물은 바짝 말라 텅비었다. 한참 돌다가 우물가에 가지런이 놓인 물병을 발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참새는 포기하고 이내 다른 곳으로 가보자며 까마귀를 조른다. 왜냐면 호리병 모양의 물병에 참새든 까마귀든 부리를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안 참새는 목이 말랐지만 물 마시는 일을 아예 포기했다. 까마귀는 한참을 고민을 했다.이러저리 물병 주변을 돌던 까마귀는 무릅을 탁 쳤다. 그리고는 풀숲에서 작은 돌들을 찾아 내고는 이를 물어다가 호리병에 넣었다. 이러기를 몇 차례. 물병에 작은 돌들을 넣을 때마다 물은 점점 까마귀에 부리에 다가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낸 까마귀는 마침내 기분 좋게 꿀처럼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사진 : © gettyimagesbank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지난 2009년 이솝우화의 까마귀와 똑같은 실험을 했다. 15cm 높이의 물병에 절반 이하로 물을 담고 먹이를 띄워놓았다. 부리가 먹이에 닿지 않아 물병 주위를 맴돌기만 하던 까마귀는 연구진이 조약돌들을 넣어주자 하나씩 집어넣어 수위를 올린 후 냉큼 먹이를 입에 물었다. 과연 까마귀가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번에는 크기가 다른 조약돌을 섞었다. 그랬더니 까마귀는 조약돌 가운데 비교적 큰 돌만을 골라 물 속에 넣은 후 먹이를 입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물통과 톱밥이 담긴 통에 각각 먹이를 넣어두었더니 까마귀는 톱밥통 대신 물통에 돌을 집어넣었다. 이 연구결과는 까마귀가 도구를 사용할 만큼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까마귀는 7세 어린이와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과 해코지를 한 사람을 가릴 줄 알고, 동료가 죽으면 장례식도 치른다는 것이다.

7세 어린이 지능과 비슷한 까마귀

이솝우화의 까마귀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지혜를 짜내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블렉스완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자세로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빨리 극복할 수 있다. 지난간 증시 역사를 보면 주가는 술 취한 사람처럼 갈팡질팡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문제이지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 갔다.

블랙스완은 예측하지 못한 대재앙을 의미한다. 그래서 블랙스완 상황에선 엄습해오는 불안과 의혹을 정말 떨쳐버리기 힘들다. 코앞에 닥친 위험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는 느낌이 집단적으로 전염될 때 공황상태를 유발한다. 사람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면 자신을 구하려는 강력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공포에 짓눌린 채 통제력을 상실하고 극도로 자기 중심적인 행동으로 치닫는다. 그 결과 시장은 과민반응을 일으키며 주가가 날카롭게 떨어지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많은 투자자가 하루 아침에 힘들게 모은 재산을 날리고 피폐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확률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수백만 분의 1이라는 블랙스완이 1980년대 들어 툭하면 고개를 내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기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예측불가능한 블랙스완이 나타나면 피할 수 없어도 미리 대비해 두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도 “그 어떤 뛰어난 확률모형도 평소에 거의 발생하지 않는 블랙스완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위기의 형태나 크기를 예측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위기에 강한 체질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표적 무장 방법이 ‘자산배분’이다.

투자자산은 크게 채권·주식·부동산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수익률이 가장 좋은 것은 주식이다. 그런데 주식은 변동성이란 치명적 약점이 있다.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변덕이 심한 시장을 이겨내야 한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려면 튼튼한 배를 이용해야 하듯이 투자의 세계에선 안전성을 보강해 위험을 누그러뜨리는 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론 자산을 이것저것 섞는 ‘하이브리드 배’를 만드는 것이다. 하이브리드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이나 요소를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요소의 장점만을 선택해 합친 것이니 성능이나 경제성이 뛰어나다.

시장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자산의 하이브리드는 주식과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것이다. 이걸 전문 용어로 자산배분이라고 부른다. 자산배분의 원리는 간단하다. 여러 자산이 가지고 있는 경합성을 이용해 위험의 예봉을 꺾는 것이다. 음의 상관계수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군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게 되면 더 낮은 위험을 부담하면서 높은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재테크를 주식형 펀드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은퇴자가 있다. 그는 펀드로 불린 돈을 노후자금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조용하던 증시가 불난 호떡집으로 돌변했다. 펀드 가격은 곤두박질쳤고, 그는 생활비를 어떻게 만들지 암담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오피스텔도 보유하고 있다. 경제가 잘 굴러가는 호황기엔 주식 같은 위험자산과 부동산에 돈이 몰리게 된다. 둘은 양(+)의 방향으로 움직이며 서로 끌어주는 동반자적 관계가 된다. 하지만 경제가 위기에 빠져 투자심리가 식으면 주식과 부동산은 함께 침체의 길로 들어선다. 단기간에 보유 자산이 급격히 줄어들어 재정적 어려움이 뒤따른다. 만약 부동산을 빚을 내 샀다면 더 큰일이다. 뛰는 금리에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선 부동산을 급매물로 내놓게 될지 모른다. 물론 극단적인 시나리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이런 의외의 사건이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가장 고통을 받은 건 은퇴생활자들이었다. 앞으로 또 다른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외부 수입 없이 보유 자산을 헐어 생활비로 쓰는 은퇴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주식+부동산 보유자, 시장 위기에 직격탄

자산배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자산배분의 효과는 자산 간 상관관계가 낮을수록 커진다. 주식과 부동산은 상관관계가 높은 편에 속한다. 실제 금융시장의 역사를 보면 두 자산은 손 잡고 하락과 상승을 반복했다. 주식과 상관관계가 낮은 것은 채권이나 은행예금 같은 현금성 자산이다. 현금성 자산이 있으면 블랙스완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주식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주식의 변동성만 보는 투자자는 채권에 머물러 있고 주식의 수익성만 보는 투자자는 대박의 헛된 꿈을 꾼다. 자산배분은 이런 양극단 사이에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중도의 길을 제시한다. 더구나 장기 투자를 통한 복리의 힘까지 빌리면 실질적으로 자산가치를 높일 수 있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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