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잘나가던 대기업 한식 뷔페 줄줄이 문닫는 이유는] 1인가구 증가, 물가 상승, 규제의 ‘3중고’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CJ ‘계절밥상’ 지난해 11곳 폐점…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인기 끄는 맛집에 고객 몰려

▎이랜드가 운영하는 ‘자연별곡’ 매장. / 사진:이랜드 제공
잘나가던 대기업 한식 뷔페 프랜차이즈가 위기의 기로에 섰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한식 뷔페 ‘계절밥상’ 매장 11곳은 2018년 12월까지 운영하고 폐점을 결정했다. 계절밥상 측은 수원갤러리아점·평택점·전주CGV점·계양롯데마트점·문정점·안산홈플러스점·강서홈플러스점·건대점·일산점·공덕해링턴점·광교점 등이 영업을 중단하고 폐점했다고 밝혔다. 지방 매장은 물론이고 대형마트에 입점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매장마저 ‘구조조정’의 된서리를 맞았다. 이에 따라 현재 40곳인 계절밥상 매장은 29곳으로 줄었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50곳 안팎의 매장 수를 유지하던 것에 비하면 불과 네 달 새 42% 매장이 문을 닫은 셈이다.

다른 한식 뷔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자연별곡’은 지난해 5개 매장이 폐점을 결정해 매장 수가 전년 48개에서 43개로 줄었다. 15개 매장을 보유했던 신세계푸드의 ‘올반’도 지난 한 해 동안 12개로 줄었다. 2013년 대기업들이 ‘건강한 집밥’을 지향하며 한식 뷔페 시장에 뛰어들 당시 소비자는 열광했다. 마침 요리를 소재로 한 각종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식 뷔페도 덩달아 성장했다. 다양한 한식 메뉴를 마음껏 맛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오픈 초기에는 한두 시간 기다려 입장하는 일도 허다했다.

오픈 초기 1~2시간 기다려 입장


그러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인 가구가 늘고 경기가 악화되며 외식 수요 자체가 줄자 상대적으로 비싼 뷔페가 직격탄을 맞았다. 한식 뷔페 등은 주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대형마트·쇼핑몰 등에 입점해 지리적 이점을 누렸지만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여기에 최저임금·임대료·재료비 등 원가 상승 요인이 더해졌다. 업계에서는 계절밥상 등 한식 뷔폐가 줄이어 폐점하고 있는 배경을 업황 부진에 따른 수익성 악화라고 해석했다. 한 외식 업계 관계자는 “재료비가 계속 오르는데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증가가 한몫을 했다”며 “건강식 트렌드가 지나가고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소비자가 늘며 뷔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떨어진다는 인식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한식 뷔페 대신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소규모 레스토랑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새로운 맛집에 눈을 돌리는 추세다. 굳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한식 뷔페를 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 서울 성동구에 사는 성예진(29)씨는 “한식 메뉴는 사실 집이나 동네 식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어쩌다 한번 하는 외식 메뉴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며 “많이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이상 같은 값이면 외식으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식 뷔페는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건강한 뷔페’라는 인식 속에 토종 패밀리레스토랑의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트렌드 변화와 함께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대기업 유통사들이 앞다퉈 출점 경쟁을 벌이던 2016년, 한식 뷔페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며 신규 출점 자체가 제한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 모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한식 뷔페가 예상보다 빨리 출점 제한이라는 벽을 만나 성장동력을 잃었다”며 “외식시장에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규제 직격탄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외식 브랜드 구조조정은 한식 뷔페에 머무르지 않는다. 샐러드 뷔페로 인기를 끌었던 CJ푸드빌 빕스는 74개였던 매장 수를 지난해 말 60개로 줄였다. 이랜드그룹 ‘애슐리’도 2014년 155개에서 지난해 100여 개로, MP그룹 ‘미스터피자’는 2014년 392개에서 지난해 296개로 축소됐다. 출산율 저하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외식업 시장 자체가 쪼그라든 모습이다. 최저임금과 임대료·재료비 상승으로 경영 부담을 안았지만 이미 형성된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기에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불경기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대기업 외식브랜드가 가격을 1000원만 인상해도 질타를 받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매장 수는 줄이되 매장의 프리미엄화, 배달서비스·가정간편식(HMR) 판매 등으로 반전을 노린다. CJ푸드빌은 최근 여의도 IFC몰 매장을 리뉴얼했다. 통삼겹 바비큐부터 통영산 석화찜까지 마음껏 즐기는 한식 셀렉 다이닝 형태로 여덟 가지 각기 다른 코너에서 즉석조리 서비스 등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신세계푸드는 센트럴시티점을 ‘올반 프리미엄’ 특화 매장으로 바꾸고 지난해 12월 재개장했다. 계절밥상은 온라인 식품 배송 업체 마켓컬리에 입점해 배달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8월부터는 계절밥상 매장에서 즐길 수 있는 메뉴 그대로를 포장·배달해주는 ‘계절밥상 그대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반 역시 국·탕·찌개, 안주류 등 200여종의 제품을 HMR제품으로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부진한 매장은 정리하고 잘 되는 매장은 리뉴얼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며 “증가하는 배달 추세에 발맞춰 배달에 특화된 신메뉴도 계속 개발해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자연별곡은 별도의 배달 서비스 없이 새로운 메뉴 개발을 통해 떠난 고객을 다시 잡는다는 전략이다. 자연별곡 관계자는 “경쟁 업체들이 기존 HMR 생산 라인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모습과 달리 이랜드는 외식 전문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단순히 한식을 내놓는 것을 넘어 차별화된 메뉴를 시장에 선보인다면 아직 경쟁력이 있는 시장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화·배달·HMR’ 로 부활 노려

이와 같은 변화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한식 뷔페의 건강식이라는 차별성은 예전과 달리 뚜렷하지 않은 데다가, 다양한 음식을 저렴하게 즐긴다는 뷔페의 인상이 워낙 강한 만큼, 단품 수요가 얼마나 클지도 알 수 없다. 외식과 HMR에 대한 주요 소비층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16년 전만 해도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수혜주로 각광받을 만큼 전망이 좋았지만 추가 성장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지난해부터 가성비로 무장한 중소 한식 프랜차이즈는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어 이 같은 트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470호 (2019.02.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