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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프로그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정보화=하드웨어적 구축’ 인식 아직도 강해 

 

임문영 인터넷 칼럼니스트
액티브X·아래아한글·어도비 플래시 등 여전히 사용... 변화 전제로 개발에 나서야

▎액티브X의 문제점을 지적한 2014년 3월 21일자 중앙일보 1면(왼쪽)과 액티브X 설치 화면.
오래 전 군대 다녀온 분들은 알 수 있는 ‘차트병’이라는 용어. 군부대에서 상황판에 매직펜으로 질서정연하게 글씨를 쓸 수 있는 능력. 그 전문 기술을 가진 병사를 차트병이라고 불렸다. 한때는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이런 특기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있었다. 극장에서는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는 화공들이 전문가였다. 그들은 미술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했다. 공원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들, 주산부기 자격증을 가진 소녀들, 손끝에 눈이 달렸다고 할 만큼 안 보고도 활자를 뽑아내던 문선공들, 좌우로 조그셔틀을 재빠르게 돌리며 1:1 편집을 하던 비디오 편집기술자들도 있었다. 모두 이제는 추억의 솜씨가 됐다.

워드 프로세서와 파워포인트가 등장하면서 그 솜씨 좋던 타자수들과 차트병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됐다. 극장의 손간판도 포토샵 앞에서 사라졌고 주판도 스프레드 시트 앞에선 의미가 없어졌다. 디지털 기술혁신은 수년 동안 일해서 쌓은 숙련된 기술을 제치고 새로운 지름길을 만들었다. 누구나 더 빠르게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된다.

DOS 프로그램, 전화접속 인터넷기술, CD플레이어, 카세트플레이어, 비디오테잎 등 수많은 제품이 사라졌다. 새로운 개발 프레임워크가 나오거나 버전업된 프로그램, 신제품이 나오면 과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뒤쳐진다. 제자리에 잠시만 서있으면 뒤로 밀려나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 현상과 같다. 그런데 사라진 것은 추억이 되지만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문제다.

액티브X는 윈도우 기반 웹브라우저의 역할을 뛰어넘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때 각광받던 기술이었다. 우리나라가 전자정부에서 세계 1위를 하며 앞서가는 데 이 기술의 영향력이 컸다. 인터넷만으로 각종 공공문서 서류를 다운로드받고 프린트하고, 행정처리를 할 수 있으니 부러운 정보화 선진국이었다.

악성 코드의 온상으로 전락한 액티브X

그런데 이 기술은 인터넷 표준을 지키지 않아 악성코드의 온상이 되는 등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이제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지원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주요 민원과 행정, 금융사이트에서는 살아남아 있다. 매번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나올 정도였지만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DOS 시절 개인용컴퓨터를 지켜주던 안랩의 바이러스백신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액티브X의 우산 밑에서 금융사이트와 각종 민원 사이트의 보안 솔루션으로 남아 있다. 원해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용자는 별로 없다. 대개의 경우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억지로 깔아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도비의 플래시도 화려한 액션과 동영상 콘텐트 제작에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솔루션이었지만,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아래한글은 한글이라는 위대한 우리 민족의 자산을 지킨다는 명분 때문에 국민 지킴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프로그램이지만, 이제는 표준을 따르지 않는 문서 포맷으로 여전히 논란이다. 모든 공무원이 아래한글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른 문서 작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아래한글 문서 정보를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데이터 시대에 데이터로 활용되기도 어렵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버린 제품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 익스플로러부터 접근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도 여기에 최적화돼 있다. 보험회사나 은행에서 결제내역 통보가 첨부파일로 오면 익스플로러에서 열어야만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가 트렌드인데도 여전히 PC 프로그램에서만 입력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이트가 많다. 엄청난 돈을 들여 수년 동안 가꿔온 사이트를 버리기 아까운 탓에 모바일 사이트에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있다. 휴대폰으로 접속하면 잘 보이지도 않는 화면 사이즈에서 입력을 해야 한다.

소셜로그인이나 e메일, 휴대전화만으로도 가입이 가능한 시대인데 대소문자와 특수문자, 숫자를 섞어서 아이디를 만들라고 하는 사이트도 여전하다.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야후 메일 계정은 있지만 가장 흔한 G메일은 목록에 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e메일 주소에서 아이디에 ‘점(.)’이 들어가면 유효하지 않는 e메일 포맷이라고 뜨는 사이트도 있다.

아마 지금도 좀 큰 파일은 몇개로 쪼개서 압축해 첨부하고 보내는 e메일 서비스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클라우드 서비스로 발전하고 초고속화 되기 전의 수준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는 탓이다. 클라우드 방식의 폴더를 권한별로 공유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웹하드를 만들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공유하는 습관을 못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서비스는 바로 결제 서비스다. 상업적 목적의 사이트임에도 돈을 지불하는 결제 과정에 지쳐서 구입을 포기하는 사이트가 적지 않다. 지금도 코레일 같은 서비스는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비밀번호 앞 두자리를 입력하라고 나온다. 그 편한 앱카드 결제나 QR코드 결제 등은 지원하지 않는다.

혁신을 끊임없이 수용하지 않는 낡은 시스템과 서비스는 파괴의 대상이 된다. 개구리 도약(leapfrogging)은 기술이 기존 단계를 밟아가며 순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높은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기술혁신은 지름길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전히 개발도상국인 중국이 인공지능 부문에서는 미국과 자웅을 겨루고 있고, 경제 빈국인 북한이 세계 단백질 구조 추측대회에서 일부 부문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기술 혁신이 바로 그런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실제로 유선 인터넷이 깔리지 않고 금융산업도 별로 발전하지 않은 아프리카가 오히려 모바일 뱅킹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1990년대 중반 웹서비스가 처음 나올 때만 하더라도 세계 인터넷 사이트 순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이 올랐던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차츰 뒤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낡은 서비스가 뒤쳐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괴적인 혁신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정보화에 대한 오래된 인식은 바로 하드웨어적인 구축이었다. 부동산 토목사업과 비슷하다. 짓고 설치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정보화라는 인식이 관성화돼 흔히 정보화는 구축사업을 의미하게 됐다. 그래서 서비스 구축 이후에는 유지·보수라는 개념으로 구축비용에 비례한 일부 예산으로 낡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목받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이와 같은 현실은 정보화 계획을 완벽하게 짜고 그 목표를 그대로 구현했을 때 더 이상 변화할 것이 없다는 고정적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도 바뀌고 기술도 바뀐다. 바뀌는 세상을 바뀌는 기술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의 수용이 필요하다. 최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 거론되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Agile software development)은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유연하고 기민한 개발을 추구한다. 변화를 전제로 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정보화는 구축이 아니라 운영의 개념이어야 한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주도적 사고로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세상 이치는 늘 명확하다. 변화를 수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파괴의 대상이 될 것이다.

1470호 (20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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