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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경제(1) 독신세의 탄생] 로마의 독신세는 식민지 정복의 발판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미혼 남녀에게 수입의 1% 걷어… 현대에선 연말정산이 사실상의 독신세 구조

1인 독신가구의 전성시대다. 앞으로도 모든 연령대에서 1인 독신가구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1인 가구는 일자리를 얻는 것부터 쉬는 방법, 자산관리까지 과거 4인 가구 시대와는 다르다. 솔로 경제의 시대에 독신 가구주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 gettyimagesbank
이른바 ‘13월의 월급’의 기회라는 연말정산이 많은 직장인에게는 아쉬움으로 끝났다. 한 정보기술(IT)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4년 만에 처음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됐다’는 한숨 섞인 게시물이 심심찮게 보인다. 특히 미혼 1인 가구라면 더욱 그럴 확률이 높다. 소득 및 세액 공제를 받을 만한 게 별로 없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실제 통계는 어떨까? 기자가 확보한 한 회사의 2017년 연말정산 결과 통계는 ‘독신세’의 존재를 입증해준다. 중견그룹 계열사인 이 회사의 2017년 연말정산 대상자 중 소득세 추가 추징을 받은 직원 비율은 7%였다.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회사 정책상 세금 추가 추징을 줄이려는 편이라서 대상 숫자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회사 추가 소득세 추징자의 23%가 미혼 1인 가구, 즉 독신가구라는 점이다. 2017년 전체 가구의 28.5%가 1인 가구였지만,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인 500만 명대다. 그렇다면 추가로 세금을 내는 독신가구원의 비율도 10%여야 맞다. 하지만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독신가구는 단순 계산해도 기혼가구보다 2.3배나 많았다.

‘사실상 독신세’ 연간 79만원


독신가구의 소득이 기혼가구보다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저임금 직장인들이 훨씬 더 많다. 이윤주 서울시청 공인회계사와 이영한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가구 유형에 따른 세 부담 차이 분석’ 논문은 사실상의 독신세가 어떤 식으로 효력을 발휘하는지 분석했다. 부양자녀가 없는 경우 독신가구의 근로소득은 연 4000만원 이하에 집중돼 있고, 부양자녀가 없는 외벌이가구는 6000만원 이상 구간에 몰려는 점도 눈에 띈다[그래프 참조]. 그럼에도 중간소득 구간(4000만∼6000만원) 기준 독신가구의 평균 유효세율은 2.88%로 1.24%인 기혼가구의 두 배 수준이었다. 소득과도 특별한 관련성이 없다는 뜻이다. 독신가구는 소득 및 세액 공제의 차이로 외벌이 4인 가구보다 평균 1.64%포인트 더 높은 세율을 적용 받아 연간 약 79만원의 세금을 더 냈다. 독신가구는 자녀가 없는 외벌이 가구(2.53%)보다도 세율이 0.35%포인트(약 14만원)나 더 높았다. 요약하면 독신가구는 ‘혼인을 하지 않은 죄’로 0.35%포인트, ‘자녀가 없는 죄’로 1.30%포인트 더 높은 세율을 적용 받는다.

솔로들을 겨눈 세금과 불이익의 칼날은 고대 로마에도 존재했다. 독신세의 역사는 생각보다 무척 길고, 그 본질은 폭력적인 차별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신세를 부과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정치 체계는 왕권국가나 그에 맞먹는 독재정권이었다. 사료에 남은 독신세 부과 국가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제정 로마다.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미혼 남녀에게 수입의 1%를 독신세로 과세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 상속권한이나 선거권까지 빼앗았다. 로마 제국은 군대를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식민지를 팽창해 나갔다. 군대는 로마에서 태어난 시민들을 징병해 유지했다.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면 현지에서 세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로마의 독신세는 세금 문제가 아닌 군인 양성에 초점을 둔 정책적 판단으로 봐야 한다.

근·현대로 넘어와 독신세를 부과했던 이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히틀러, 무솔리니,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와 같은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다. 가장 노골적으로 반독신 정책을 펼쳤던 히틀러의 독일을 보면 수천년이 흘러도 제정 로마 시대의 논리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역사학자 리처드 에반스는 [제3제국의 집권]이란 저서에서 히틀러의 독신세는 그가 우월한 유전자라고 칭한 순수 독일계 혈통의 아이들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지적한다. 히틀러는 독일인이 대출을 받았을 때 전체 대출금의 1%에 해당하는 이자를 더 부과했고, 아이를 한 명씩 낳을 때마다 추가 이자 부담금에서 25%씩을 경감해줬다. 아이를 4명 낳으면 추가 이자는 없어지는 구조다. 나치 세력은 1934년 인종정책을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 미혼 남성과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했다. 독일의 인종정책부처는 당시 “당신이 독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순수 독일 혈통과 결혼해 최소한 4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라. 아이들을 조국의 미래 자산으로 만드는 게 독일인의 의무다”라는 결혼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독일은 이 가이드라인 발표 1년 후 뉘른베르크 법안들을 발표한다. 이 중 근간이 되는 법안의 정식 명칭은 ‘독일인의 피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률’이었다. 이 법은 유태계 독일인 학살의 법적 근거였다.

히틀러, 독신세·인종차별법 만들며 대량학살 근거 확보

문제는 왜 지금까지 이처럼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독신세가 사실상 존재하느냐다. ‘결혼이 특권이 된’ 현대사회에서 소득이 적고 세제상 혜택을 받을 것도 미미한 미혼 1인 가구에게는 독신세 대신 독신 보조금을 줘도 모자라다. 괴팍한 주장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결혼은 어떻게 미국 사회에서 특권이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때 이 나라에서 소득이나 교육 수준과 관계 없이 가족을 구성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었던 결혼은 이미 특권층의 생활방식이 됐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결혼은 경제적인 면에서 특권이라고 볼 수 있다. 온라인 경제매체 조선비즈는 2017년 11월 ‘결혼도 이제 특권’이란 시리즈 기사에서 “30대 남성의 월 소득이 100만원씩 올라갈 때마다 결혼할 확률이 12.4%포인트씩 올라가고, 비정규직 남성이 결혼을 못할 확률은 정규직보다 18.5%포인트 더 높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는 노동연구원이 작성하는 한국노동패널의 2015년 18차 패널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심지어 독신세는 조세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조세의 원칙으로 예외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평등’, 과세 대상과 세율을 분명히 해야 하는 ‘확실성’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가구 유형에 따른 세 부담 차이 분석’ 논문은 “우리나라 소득세 공제제도는 인적공제나 특별공제가 가족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출산장려정책 등 (기혼 가구의) 공제제도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독신가구의 세부담이 높아 별도의 독신세를 부여하지 않아도 현 제도상 독신 가구에 실질적으로 독신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별도의 독신세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국내외 할 것 없이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생애 독신자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한 여성단체 회원이 독신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국내라고 다를 바 없이 주기적으로 한 번씩 독신세 관련 논쟁이 붙곤 한다. 1인 독신가구주들의 연대를 기대해본다.

1471호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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