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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연 1%대로 방치된 퇴직연금] 노후 위한 ‘최후 보루’ 인식부터 가져야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
퇴직연금도 결국 금융상품... 운용에 관심 갖고 적극 개입해야

연평균 1%대 수익률. 요즘 일반 예·적금 이자가 연 3~5%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 수익률 1%대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런데 꾸준히 1%대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품이 있다. 그것도 직장인 상당수가 가입한 상품이다. 바로 퇴직연금이다. 월급쟁이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연금이 꽤 오랫동안 바닥권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가입자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으니, 운용사도 수익률을 내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이에 대해 어떻게 제재할 방법도 없다. 2005년 도입 이후 시행 10년이 지났지만 ‘근로자 노후보장’이란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퇴직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1.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6%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2012년까지 4~5%대를 유지하다가 2013년 이후 2%대에서 2017년 1.88%로 낮아졌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66%가량을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형)의 평균 수익률은 평균치를 밑도는 1.59%에 그쳤다. 퇴직연금 방치는 가입자와 연금 사업자(은행·증권·보험사)의 무관심 영향이 크다. 가입자는 안전성에 치우친 나머지 수익성을 신경 쓰지 않고, 사업자는 옮겨 갈 일이 없고 민원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한 상품만 권한다. 전문가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가입자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갈아타기 등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사업장)은 2017년 말 기준 35만곳에 이른다. 2016년 32만곳에서 1년 새 약 3만곳이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확한 통계가 잡힌 2016년 기준으로 전체 기업의 26.9%가량이 퇴직연금을 도입했다. 퇴직연금은 기존 퇴직금제도에 비해 근로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퇴직금 재원이 기업 밖에서 별도로 적립되기 때문에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거나 파산해도 근로자는 사외 적립금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근로자에게만 유리한 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퇴직연금을 도입해 퇴직금 재원을 사전에 적립해 놓으면 나중에 부담을 덜 수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법인세를 낼 때 적립금의 일정 비율만큼 손비(비용)로 인정받아 절세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퇴직연금 88%가 원금 보장형

이 같은 퇴직연금은 크게 3종류로 나뉜다. 기업이 운용 지시를 하는 DB형, 근로자가 운용 지시를 하는 확정기여형(DC형), 개인이 개별적으로 가입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다. DB형은 퇴직금 운용으로 손실이 나도 기업이 책임지고 약속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 최근에는 DB형에서 DC형으로 옮겨가는 추세지만 그래도 여전히 DB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DB형의 수익률은 연 1%대. 같은 해 물가 상승률(1.9%)에도 못 미쳐 실질적으로 가입자의 노후 자금을 까먹고 있는 셈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는 적립금의 94.6%%가 은행 예·적금처럼 원리금이 보장되는 안전자산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원리금 보장 상품의 수익률은 1.49%에 불과하다. 기업은 한 번 가입하면 운용 지시를 거의 하지 않는다. 퇴직연금을 굴리는 금융회사도 적립금의 0.45%를 관리 비용으로 떼어가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한 번 가입하면 옮겨갈 일이 거의 없어 퇴직연금 가입자는 ‘잡은 물고기’로 통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옮겨갈 일이 없기 때문에 대다수 금융사가 원금 보장형으로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DC형으로 가입한 가입자도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금융투자협회 설문조사 결과 DC형 가입자 30%가량이 “운용 현황을 모른다”고 답했다. 운용상품을 바꾸라고 운용회사에 지시한 사람은 전체 가입자의 9.9% 뿐이었다. 퇴직연금이 수익성보다는 안정성 위주로 운용되면서 묵혀두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선진국은 다르다. 호주를 비롯해 미국·영국·네덜란드 등지는 퇴직연금에 일찌감치 기금형 제도를 도입해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공단 기금 운용본부와 같은 곳이 책임지고 운용하는 것이다. 운용을 전문적으로 하는 컨트롤타워를 둬 지속적으로 수익률 제고에 나서는 것이다. 한때 국내에서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잠잠하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골자로 한 관련 법안 개정안도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머서(MERCER)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글로벌 연금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퇴직연금은 사후 관리가 부실하고 투자 옵션이 다양하지 않다”며 “개선하지 않으면 효율성이나 지속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은 이 연금지수에서 D등급으로, 34개 국 중 30위에 그쳤다.

금감원, 디폴트 옵션 도입 검토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1월 21일 퇴직연금 원리금 보장 상품의 운용 지시 방법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기존 방식은 운용 상품을 특정하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A은행의 1년 정기예금으로 상품을 특정하면 만기 도래 때 가입자의 별도 운용 지시가 없으면 같은 상품으로 자동 재예치된다. B은행과 C은행이 연 3%대 정기예금 상품을 운용하더라도, A은행이 2%대로 상품을 운용한다면 2%대 정기예금상품으로 계속 연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특정 상품이 아닌 종류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새 방식을 적용하면 매번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최적의 상품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를 테면 만기를 1년 이내로, 운용 대상 상품을 은행 예·적금으로 설정하면 1년 이내 만기 중 예·적금 금리가 가장 높은 은행 상품을 자동으로 찾아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사업자가 상품 종류와 위험도·만기 등 운용 지시 항목을 명시해 가입자로부터 구체적으로 운용 지시를 받고, 그대로 이행했는지 가입자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추가했다. 새로운 제도가 적용되면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이 올라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개선 방안의 원활한 운영과 정착을 위해 운용회사 평가 때 반영하는 등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더 나아가 정부는 ‘디폴트 옵션(자동 투자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디폴트 옵션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특별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운용 회사가 알아서 가입자의 성향에 맞게 운용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금융감독원 측은 최근 ‘퇴직연금 가입자 운용 행태 개선 연구’ 보고서를 통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디폴트 옵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입자 무관심이 불합리한 선택을 만들기도 한다”며 “이를 개선하려면 디폴트 옵션 도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 종목이나 비율을 변경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기예금은 더 높은 이자율의 상품이 나오고 있고, 주식형·채권형 상품은 국내·외 경기변동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연금은 단순히 퇴직금을 적립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성격도 가지고 있다. 운용 종목이나 수익률을 모른 채 매월 일정한 금액을 꼬박꼬박 적립하는 것은 ‘묻지마 투자’나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적극적으로 ‘갈아타기’에 관심을 기울이면 안정성 뿐만 아니라 수익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DC형과 IRP 가입자는 직접 투자 종목을 고르거나 교체를 할 수 있다. 기존 투자 금액을 모두 다른 상품에 투자하거나, 앞으로 추가 적립되는 금액만 운용 지시 비율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퇴직연금 갈아타기는 가입자가 연금 사업자 사이트에서 직접 하면 된다.

적극적으로 투자 종목·비율 관리해야

그러나 금융상품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펀드 상품을 비교해 고르기는 쉽지 않다. 개개의 수익률, 펀드 투자내용, 수수료 등을 일일이 비교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않은 사람은 가입한 금융회사를 방문해서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퇴직연금 종목 결정은 투자 성향에 따라 정기예금, 주식형, 채권형 등의 분산비율을 정하고 국내·해외별, 대형주·중소형주별, 해외 투자처별 상품을 비교하면 된다. 수수료 대비 수익률 가성비도 따져봐야 한다. 대개 수익률이 높은 상품이 수수료가 높은 편이지만, 낮은 수수료에도 높은 수익률을 올린 상품이 없지는 않다. 김성일 ㈜KG제로인 연금연구소장은 “퇴직연금은 노후 빈곤을 막아줄 가장 강력한 안전판”이라며 “개인은 꾸준한 관심을 통해 수익률 관리를 해야 하고, 정부는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471호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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