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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빚내 집 사는 것, 노후 준비인 이유 

 

행동장치와 ‘포도밭의 보물’… 연금상품·자동이체 등으로 노후자금 지켜야

평생을 포도 농사만 짓던 한 노인이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농부는 놀기만 좋아하고 농사일을 싫어하는 자식들에게 한가지 교훈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말했다. “얘들아, 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구나. 하지만 너희를 위해 포도밭에 숨겨 놓은 것이 있다. 매우 귀한 것이니 모쪼록 함께 찾아 보거라.” 얼마 후 농부가 죽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포도밭 어딘가에 값진 보물을 숨겨 놓은 줄 알고 포도밭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밭 전체를 헤집도록 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바람에 포도밭이 훌륭하게 일구어져 그 해에는 몇 배나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 gettyimagesbank
게으른 아들들을 움직여 포도밭을 일구게 한 농부의 지혜가 놀랍다. 꼭 해야 할 일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는 경우 강압적인 수단을 쓰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만약 농부가 놀기만 좋아하는 자식들에게 아무리 농사를 지으라고 말해도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보물을 땅 속에 묻어놓은 것처럼 속여 원하는 행동(자식들이 놀지 않고 농사 짓는 것)을 이끌어 냈다. 자식들 입장에선 부친이 숨겨놓은 보물을 캐기 위해선 좋아하는 놀이를 중단하고 땅을 파야만 했다. 이처럼 어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스스로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을 ‘행동장치’라고 부른다. 미래의 목표를 위해 현재의 유혹을 참아내는 단순 원리이지만 그 효과는 강력하다. 농부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식들이 노는 데에만 열중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보물을 땅속 깊이 파묻어 놓았다고 암시해 땀 흘려 노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노후준비 늦게 할수록 재정부담 커져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후 생활에 들어갈 시기가 아직은 한참 남아 있어 저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저축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망설이면서 여윳돈을 써 버리고 만다. 이는 금연이나 다이어트, 시험공부를 미루는 것과 비슷하다. 막상 금연을 시작하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다른 핑계거리가 생겨 “에이, 기왕 버린 몸, 몇 달만 더 담배 피우다 끊지 뭐” 하고 유혹에 굴복하게 된다. 노후 준비도 먼 훗날의 일인 데다 자녀교육, 내 집 마련 등 눈 앞의 목돈 수요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러나 노후 준비는 미루면 미를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60세에 정년퇴직한다고 할 때 죽을 때까지 필요한 노후자금은 대략 4억원이라고 한다. 이 돈을 만들기 위해선 현 시점에서 얼마씩 저축해야 할지 계산해 보자. 연 2%의 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30세에 매월 약 80만원씩 저축해야 60세쯤 4억원이 모인다고 가정하면 40세엔 140만원 정도, 50세엔 300만원 정도씩은 저축해야 모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목표금액을 모으려면 재정 부담이 부쩍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한 저축을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 준비를 하겠다고 맘을 먹어도 자꾸 미루며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 막상 은퇴가 가까와서야 노후 준비를 못한 것을 후회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행동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노후 준비를 위해 저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다. 과거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마스 저축클럽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 클럽의 운영방식을 보면 이렇다. 가령 11월에 계좌를 개설하고 매주 일정 금액을 저축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이때 입금한 돈은 1년 이내에 찾을 수 없으며 크리스마스 직전에만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면 1년 후 회원들은 크리스마스 직전에 돈을 돌려받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게 되는데, 이 상품의 특이한 점은 이자를 한푼도 주지 않는다는 점이디. 언뜻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선물을 위한 돈을 은행에 넣어 두는 게 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에서는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 이 상품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졌지만 크리스마스 저축 클렵은 수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이자를 주지 않는 대신 넣어둔 돈을 인출해 다른 일에 써 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유혹의 손길이 뻗치게 마련인 노후자금에 행동장치를 거는 대표적인 예는 정부에서 개인연금 가입자에게 주는 세액공제나 비과세 혜택이다. 가입자가 중도 해지할 경우 이 혜택을 토해내야 해 손해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되면 중간에 다른 데 돈 쓸 일이 생겨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다. 개인연금의 세제혜택은 우리나라 사람의 노후 준비가 매우 부실하다고 하니 정부가 나서 강제저축을 유도하려고 내놓은 대책이다.

개인적으로 집을 사는 것도 행동장치를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는 은퇴설계 이론으로 보면 바보 같은 짓이다. 우선 전 재산을 집에 묶어 두면 아주 위험하다. 주식에서 한 종목에 몰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집을 사면 유동성이 메말라진다. 당장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집을 팔아 현금을 만들기가 어려우며, 일부만 현금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노후에 필요 이상으로 큰 집은 장애물로 작용한다. 생활비를 조달하는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노후엔 그저 현금흐름이 꼬박꼬박 생기는 자산이 최고인데, 집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많은 은퇴설계 전문가가 노후생활에 들어가기 전 부동산 비중을 가급적 낮추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주택담보대출도 행동장치 역할

그러나 집을 팔기 어렵다는 단점은 돈을 묶어둘 수 있는 장점도 된다. 돈이 집에 잠겨 있으면 더 이상 그 돈에 손을 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후를 위해 저축한 돈을 미리 써 버리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만약 노후에 유동자산이 부족할 경우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해 생활비에 보태 쓸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은 돈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이 경우 대출을 이용하게 된다. 이 역시 행동장치의 역할을 하게 된다. 빚은 부담스럽고 위험하다. 그래서 월급이 들어오면 빚을 먼저 갚고 소비를 한다. 소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현금흐름이 풍부한 현역 시절엔 통제의 범위 안에 둘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빚은 독이 아닌 약이 된다.

자동이체를 적극 이용하는 것도 좋다.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 노후 대비 적금계좌를 개설하고 매달 일정 금액이 자동적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없는 셈치고 잊어버리도록 한다. 빨리 잊을수록 유리하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언젠가 든든한 노후 재원을 마련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국 노후 준비도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적금이든 적립식 펀드든 연금이든 하루라도 빨리 자동이체를 걸어놓도록 하자. 매월 조금씩 꼬박꼬박 떼어 놓다 보면 돈이 눈덩이 굴러가듯이 커져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게 확실하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71호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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