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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IF’ㅣ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11) 부의 추월 차선을 타고자 한다면] 투자와 투기 사이, 그 절묘한 줄타기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사업가적 야심… 시운도 내 편으로 만들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성공을 위한 야심을 강조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은 “내가 가난하게 태어났다면, 결코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가난하게 세상을 떠난다면, 모두 내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투자와 투기 사이에서? 투자와 투기는 글자 한 자 차이만은 아니다.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하는 요즘에도 큰 돈을 벌겠다는 야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내가 가난하게 태어났다면, 결코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가난하게 세상을 떠난다면, 모두 내 잘못이다.” 성공을 위한 야심을 강조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올해 9월 알리바바그룹 총수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의 말이다. 이 말을 두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다. 논평은 뒤로 하고 그처럼 사업을 해서 성공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사업을 하면서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닌 입장에서 혹자는 강한 반기를 들 수 있겠다. 여하튼 사업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그가 말한 야심에는 투기 같은 단어가 존재할 여백은 없어 보인다.

세상을 살다보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무엇이든 한몫을 잡으려 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고 그중에는 폐가망신하는 이도 있다. 2017년 하반기에서 2018년 초 비트코인으로 한몫을 챙겼다는 사람이 생기자 상당수의 젊은이가 비트코인을 샀다. 가격이 폭락한 요즘 비트코인을 비롯해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지는 않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겠다는 이야기도 쑥 들어갔다. 그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가 진정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를 꿈꾸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내가 가난하게 세상 떠난다면 내 잘못”

우리는 투자와 투기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e메일이 킬러앱이 돼서 인터넷 발전을 선도했다. 블록체인이란 신기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킬러앱으로 작용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를 사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비트코인이란 배에 승선할 때 ‘사촌이 땅 사서 돈 벌면 배가 아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영어에도 이런 말이 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자신의 행복과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so disturbing to one’s wellbeing and judgement as to see a friend get rich).’

비트코인 거래의 지침서는 없다. 회사의 이윤도, 채권증서도, 투자수익에 대한 지속적인 현금흐름도 참조할 것이 없다. 그냥 이전에 가격이 올라 수익을 낸 것을 참조할 따름이다. 혹시 내가 던진 암호화폐를 더 바보같은 친구가 사줄 것이라 믿고 거래를 한 것은 아닐까? 경제학이론(화폐수량설 등)을 참조해 비트코인의 적정가격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례도 있으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투기와 투자는 흔히 혼용돼 사용되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 두 용어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하나가 리스크(위험)에 대한 통제권 유무다. 리스크를 통제할 능력이 있다면 투자이고, 리스크에 대한 생각조차 없다면 투기다. 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생각해 보자. 덜컥 아무 생각 없이 매수했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다. 하지만 원자재가 경기 흐름에 순응하며 특정 통화의 움직임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면 이는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한 투자가 아닐까. 그런 움직임은 원자재와 해당 통화 추세에 대한 높은 상관관계를 근거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리스크 통제하면 투자, 아니면 투기


▎클레오파트라는 외모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투자관에서도 우수함을 보여주었다. 영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포스터. / 사진:유튜브
그렇다면 투기는 왜 위험한가? 합리적인 분석 없이 편승효과에 기반해 너도 나도 투기판에 뛰어들어 버블이 형성됐다고 하자. 이후 손실이 생기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 돈을 잃으면 사회 탓도 하고 정부 탓도 한다. 더구나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한다면 개인적·사회적 고통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투기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해악을 끼치며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만든다. 물론 투자든 투기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강변할 수 있겠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투기꾼이 치고 빠졌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뛰어든 선량한 사람들이 버블의 끝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개인·사회가 지불할 비용과 도덕성 문제가 막대하다면 국가가 가만히 수수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입장에 선 것이다. 물론 규제에 대한 비용과 편익을 적절히 헤아려 적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금융이 실물을 뒷받침하지는 않고 파생상품이나 여러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품을 만들어 투전판이 되게 한 것을 생각하면 투자와 투기는 단순히 글자 한 자 차이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투자와 투기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두 명의 역사적 인물을 초대해 보자.

투기꾼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로(John Law)의 비문에 새겨진 글을 각색해 보며 투기의 폐해를 생각해 본다. ‘세상에 넘치고 넘치는 파산한 멍청이들은 여기로 다 모여라. 너희들의 잘못을 누구에게 돌릴 수 있겠니? 남의 말에 솔깃해서 귀를 자른 것을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것과 비교나 할 수 있겠니? 배를 타려고 아우성 쳤던 너희들을 생각해 보거라. 무턱대고 승선했더니 사기꾼이 선장이라고 울화통이 치밀어도 그건 너희의 잘못이었다. 한탕해서 쉽게 벌 수 있다면 어느 누가 돈이 없겠니? 벌기보다 잃는 게 쉽다는 걸 몰랐다고 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돈을 걸 때는 처음부터 정신 차리고 해야 했어. 망한 사연을 뒤늦게 말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 지나가던 개·돼지도 하품을 할 것 같다. 깡통을 차고 난 후에야 천국으로 가려한 꿈이 헛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후회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는 일. 네가 디딘 이 땅의 현실부터 제대로 자각하는 것이 첫걸음이니라.’

미시시피 버블을 일으킨 존 로는 금세공자 집안에서 태어나 14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까지 가업인 은행업을 배웠다. 이후 도박으로 많은 돈을 날리고, 런던의 한 광장에서 결투를 벌이다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감옥에서 탈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달아난다. 암스테르담에서 무역업을 배워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길 원했으나, 마침 스코틀랜드와 영국이 통합하면서 다시 범죄자 신분이 되어 프랑스로 도망간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왔다갔다 하면서 금융업에 종사한 그는 경제난에 빠진 프랑스 정부에 중앙은행과 국영회사를 설립하자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중앙은행과 국영회사를 만들어 그 이윤으로 빚을 청산한다. 공로를 인정받은 존 로는 프랑스 금융의 책임자로 임명돼 가장 먼저 일반 은행을 세워 지폐를 사용한다. 그가 만든 일반 은행은 단순 개인 은행이 아닌, 정부의 어음과 정부가 인정한 은행의 4분의 3으로 이루어진 대형 은행이다. 존 로는 서인도와 북아메리카 지역의 무역 독점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손에 넣는다. 그가 세운 일반 은행이 왕립은행이 되면서 미시시피 회사를 통해 프랑스 동인도회사, 프랑스 중국회사, 서방회사를 흡수하고 모든 해상의 상업 권리를 독점한다. 이후 미시시피 회사에 대한 투기 열풍이 불면서 당시 프랑스는 인플레이션으로 사회가 마비된다. 미시시피 회사는 정부 회사로 이 회사의 주식은 정부의 부채나 다름이 없고, 존 로가 추진하던 지폐 유통 역시 성공을 거둔다. 미시시피 회사의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주식은 계속 올랐고, 당연히 정부 재정은 늘어났다. 프랑스의 채무 걱정은 사라졌다. 당시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을 산 사람들이 루이지애나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주식 가격은 급락한다. 결국 시가총액의 97%까지 하락하면서 존 로는 프랑스에서 쫓겨난다. 그는 유럽을 배회하며 도박에 빠져 살다 폐렴으로 사망한다.

존 로 같은 사기꾼을 금융 책임자로 앉히고, 미시시피 회사를 통해 사기를 치다 거품이 꺼지면서 프랑스 정부는 경제 대붕괴를 경험한다. 투자자는 망연자실한다. 어떤 투자처든 버블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주식시장, 채권시장, 부동산시장, 상품시장, 그 밖의 투자처에서 버블은 어느 순간 만들어졌다 사라진다. 돈의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적당한 버블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버블은 붕괴를 만들고 심각한 충격이 뒤를 잇는다. 그 충격은 단지 버블에 투자한 투자자로만 끝나지 않고,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남긴다. 이쯤에서 우리는 배움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투자하는 상품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야말로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 아닐까? 배움을 중시하며 투자에 일찍이 눈을 떠서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다. 우선 그녀의 지략에 대한 에피소드부터 살펴보자. 당시 낚시는 생존수단이 아닌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여겼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역시 낚시를 즐겼다. 하루는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의 낚시대결에서 계속 지자 어부를 잠수시켜 그의 낚싯바늘에 물고기를 걸게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를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하고 안토니우스를 칭찬했다. 다음날, 두 사람은 낚시를 가서 안토니우스가 자신만만하게 물고기를 낚았는데 올라온 것은 소금에 절인 죽은 물고기였다. 클레오파트라는 미리 어부를 매수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그녀에게 밤은 결코 한가한 휴식시간이 아니었다. 항상 침실에 장미를 깔고 머스크 향을 뿌려두었으며 금가루로 팩을 하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로마 요법 덕에 숙면을 취해 늘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해 남자를,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외모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투자관에서도 우수함을 보여주었다. 그녀를 주제로 한 영화나 뮤지컬을 보며 그녀가 독백을 내뱉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날마다 경제적 지식과 주변 경제 전문가들의 지식을 활용해 이집트의 경제 구조를 파악했습니다. 빚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수입은 줄기만 하는 이집트의 경제 구조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폐 가치를 급격하게 떨어뜨리고 채권을 강제로 발행하는 혁명적인 금융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 구조의 혁명을 통해 이집트 경제는 안정됐고 나는 부의 반석 위에 사뿐히 올라탔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투자에 일찍이 눈 뜬 클레오파트라


▎베스트셀러 작가 엠제이 드마코는 [부의 추월 차선]에서 “서행차선을 벗어나 부와 자유를 빠르게 얻고 싶다면, 당장 직업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 사진:유튜브 캡처
이쯤에서 다시 마윈을 불러내어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무슨 일을 하든,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그것은 경험 자체로 성공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계속 도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생에 실패하는 이유는 4가지입니다. 우선, 단기적인 짧은 시야로 기회를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아가 기회의 진짜 가치를 몰라보는 것도 문제지요. 어쩌면 그게 이해력이 부족한 것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오더라도 충분히 빠르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면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그의 인생관을 듣자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는 조급한 성과를 생각하며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최선을 다해 이를 살리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나기도 한다. “당신이 가난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야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야망이란 위대한 이상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에서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멋진 목표를 가지고 말이지요. 어떤 사람의 야망의 깊이가 그의 미래의 잠재가치를 만듭니다. 당신이 가난한 것은 당신에게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앞을 내다보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용기와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야망을 가지면, 당신은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습니다. 야망을 가지면, 당신은 인내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계속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야망을 가지면, 당신은 모든 확률을 엎어버리고 남들이 감히 꿈꾸지 못하는 기적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야망을 가져도 모든 이가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윈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모두가 그처럼 성공할 수 없는 현실을 볼 때 야망이 성공의 필요조건이 될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가족이 얼마나 가난하든, 당신만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야망을 잃지 마세요. 당신의 부모가 물려줄 돈이 없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경쟁자에게 패배하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35세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당신 탓입니다. 크게 놀아보든지, 아니면 그냥 집에 가세요. 안 그러면 당신은 젊음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히고 갑자기 슬퍼진다. 하지만 가난·외모·학벌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그를 보며 나도 저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가난을 어찌 개인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야망이 있어도 시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번쯤은 기회가 오고 운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운 좋은 사람을 못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어느 면에서 그 말은 맞다. 우리 주변엔 특별히 애쓰는 것 같지 않은 데도 하는 일마다 크게 성공을 거둬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있다. 어쩌겠나. 그것이 인생이라면…. 반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은 데도 손대는 것마다 실패해 절망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운이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고 한다. 하긴 운을 바라보는 건 사람의 성격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사람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대하는 방식은 다른 건 부정할 수 없겠다. 하지만 운을 좌지우지하는 게 인간의 습관이란 말은 다소 과장으로 들린다. 다만 불운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드는 생활습관을 기를 수 있다고 본다.

베스트셀러 작가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 차선]을 보자. 그는 대부분의 사람을 인도(人道)나 서행차선으로 가는 ‘현대판 노예’로 분류한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면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는 이들의 삶을 딱 잘라 평가절하한다.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해 봤자, 대개 1주일에 5일을 노예처럼 일하고 노예처럼 일하기 위해 이틀을 쉽니다. 일과 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추월 차선에 있습니다. 자, 당신은 그 차선으로 오를 수 있는 5가지 진입방법을 5계명으로 외워야 합니다. 부의 추월 차선으로 가기 위한 5가지로 욕구·진입·통제·규모·시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순간 혹하는데, 부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이 방법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월급쟁이가 꼬박꼬박 돈을 모은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그의 말을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 ‘인도를 걷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납니다. 붐비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합니다. 집이 일터와 가까운 곳이라면 좋겠는데 이 역시 희망사항입니다. 대개 8시간 일하며 오래 일할 수 있다면 그마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을 얼마나 반복해야 할까요. 기껏해야 우리가 손에 쥐는 게 얼마의 소득이고 빚에 허덕이는 삶을 살 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도에 서 있습니다.”

빠듯한 월급봉투에 다달이 값아나가야 하는 신용카드 대금을 보며 한숨을 쉬기 바쁜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그 와중에 짠돌이 짠순이가 되어 서행차선을 타는 사람들을 보자. “어떤 이들은 또 다른 꿈을 꿉니다. 보다 밝고 자유로운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희생합니다. 소득 수준 이하로 생활합니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며 몇천원짜리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한푼두푼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맵니다. 저축하고 또 저축하며, 그래도 월급의 어느 정도는 주식과 퇴직연금에 투자하고, 나름대로 공부도 합니다. 그러나 큰 부를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나마 서행차선을 탄 사람들은 직업 외에도 투자를 생각하기에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참고 살다 보면 언젠가 부자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 인생을 사는 데 가슴 한편으로 허전함이 다가온다. “인생이 유한한데 이 귀한 시간을 수십년 간 이렇게 보내야 할까요?”

엠제이 드마코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서행차선을 벗어나 부와 자유를 빠르게 얻고 싶다면, 당장 직업을 버려야 합니다. 부의 관점에서 볼 때 직업을 갖게 되면 부자가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향력’과 ‘통제력’이 제한됩니다. 직장은 인생을 팔아서 돈을 버는 그런 곳에 불과합니다.”

직장의 개념을 평가절하하는 그에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저마다 가치기준은 다르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의 욕구가 어디에 있고, 그런 사업의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사업을 제대로 통제하면서 규모를 키울 수 있을까? 시간을 쏟아 붓지 않고 관리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임대사업(차량·면허·저작권·특허권 등)이나 컴퓨터·소프트웨어·콘텐트·유통 사업에 뛰어든다 해도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서 만약에 내가 부의 추월 차선을 타고자 한다면, 마윈의 야심과 함께 시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부단한 연습, 엠제이 드마코의 5계명을 매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직장은 인생을 팔아 돈 버는 곳?

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충고로 이를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인도에 있는 사람도 서행하는 사람도 나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큰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 모든 이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일이 오히려 삶을 지배하면 여유가 없고 불행해지고 돈의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젊어서 한몫 모아 나중에 실컷 여유를 즐기자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평온하게 하루를 보내는 월급쟁이가 좋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월급쟁이는 돈에 쪼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에 대해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돈은 걱정하지 않을 만큼만 있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도 이 세상에 많습니다. 돈 많은 사람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몇 달만 더 모으면 무엇을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 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목이 더 말라서야 될까요?”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장(국립외교원 파견)이다. 대한민국 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등이 있다.

1472호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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