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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또 발생한 역전세난] 이번에도 2년 지나면 잠잠해질까?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9500가구짜리 헬리오시티발 후폭풍… 올해 강남권 입주 물량만 2만 가구 넘어

▎2월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가격을 조정한 시세표가 붙어있다. 일부 지역에선 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에 모자란 ‘깡통전세’마저 나타났다.
10여 년 전인 2008년 하반기. 서울에서는 아파트 전셋값이 뚝뚝 떨어지는 데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은 ‘역(逆)전세난’이 주택시장을 강타했다. 당시 송파구 일대 재건축 아파트인 엘스(옛 잠실주공1단지)·리센츠(잠실주공2단지)·파크리오(잠실시영아파트) 등 1만80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입주하면서 전세 물건이 늘어났고, 전셋값은 속절없이 하락했다. 그런데 요즘 이 같은 역전세난 악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발생지도 송파구로 10여 년 전과 똑같다. ‘세입자 구인난’이 심화하면서 올 들어서만 전셋값이 1억원 넘게 떨어진 곳이 적지 않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9510가구짜리 헬리오시티(옛 가락시영)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 영향이다.

송파구→강남구로 전셋값 하락세 번져

당장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곤두박질하고 있다. 2017년 1월 계약된 잠실동 엘스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형 전셋값은 평균 8억2000만원 선이었다. 그런데 올 1월 계약된 이 아파트의 전셋값은 평균 7억7000만원 정도로, 2년 전보다 5000만원 낮다. 2017년 1월 계약한 세입자가 1월 계약을 갱신할 때 5000만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헬이오시티에서 촉발된 이 같은 전셋값 하락은 인접한 강동구와 강남구 전셋값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 루체하임 84㎡형 전셋값은 현재 9억원 선으로 10억원 선이 깨졌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인근 기존 주택도 전셋값이 5000만원 떨어져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10여 년 전 잠실에서 촉발된 역전세난과 똑같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은 13.9%나 떨어졌다. 당시 서울 전셋값 평균 변동률(-4.31%)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다. 원인은 잠실동 일대에 쏟아진 엄청난 입주 물량이었다. 엘스 5678가구와 리센츠 5563가구, 파크리오 6864가구가 1~2개월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입주했다. 당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은 이들 단지 입주 시기보다 4~6개월 빨리 발생했다. 그해 3월 0.25% 떨어지며 하락세로 전환한 아파트 전셋값은 잠실 3개 재건축 단지 입주 때인 7월 들면서 1.65% 빠졌고, 10월과 11월에는 4% 넘게 급락했다. 송파구 신천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집주인이 경쟁적으로 전세 물건을 내놓으면서 입주 이전보다 입주 이후에 전셋값 하락이 더 가속화했다”며 “84㎡형 전셋값이 2억원 초반까지 내려갔는데, 이는 당시 1년 전 시세보다 1억원 넘게 낮은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2008년 역전세난은 송파구를 넘어 인접한 강동·광진·강남구 등 주변 지역으로까지 번졌다. 2008년 한 해 동안 강동구는 10.73% 급락했고, 광진구(-7.35%)와 강남구(-4.94%)도 전셋값이 크게 하락했다. 이미윤 부동산114 책임연구원은 “송파구에서 시작된 세입자 구인난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 전셋값을 연쇄적으로 낮췄다”며 “당시 강남과 강동구 일대엔 래미안퍼스티지와 롯데캐슬퍼스트 등 3000가구 안팎의 새 아파트 입주 시기까지 겹치며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의 역전세난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여파로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해소됐다. 당시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주택시장까지 무너져 내렸는데, 이로 인해 집을 사지 않고 버티려는 사람이 급증했다. 특히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값싼 보금자리주택을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전세 수요가 급증하면서 역전세난은 이듬해부터 해소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08년부터 내리막길을 걷던 아파트 전셋값(지수)은 2009년 중반 저점을 찍은 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09년 8월에는 1년여 간의 하락분을 모두 회복했다.

그렇다면 헬리오시티발 역전세난도 빠르게 해소될까. 10여 년 전과 올해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신규 전세 수요가 많지 않아 전셋값 하락세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부동산시장 전문가는 “지난해 집값 상승 기대감에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한 수요가 많았고, 인근의 강동구와 미사강변도시 등지에서도 신규 입주 물량이 많다”며 “당분간 전셋값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강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 입주 물량은 1만6000여 가구에 이른다. 6월 강동구 명일동에서 래미안명일역솔베뉴(190가구)가 입주를 시작하고, 9월에는 고덕그라시움(4932가구), 12월에는 고덕센트럴 아이파크(1745가구)와 상일동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1859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여기에 오는 3월까지가 정식 입주기간인 헬리오시티를 더하면 실제 올해 입주 물량은 2만6000여 가구다. 2년차 전세 재계약 물량도 적지 않다. 2017년 3월 입주한 강동구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3658가구) 아파트에서는 전세 재계약 물건이 쌓이고 있다. 이 여파로 이 아파트 84㎡형 전셋값은 지난달 말까지 6억6000만원을 호가했으나 지금은 5억원대 중반까지 내렸다.

최근의 역전세난이 2008년과는 달리 비단 입주 물량 증가만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정부의 대출규제 등 주택 시장 규제도 역전세난과 무관하지 않다. 1주택 이상자는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완공된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예가 늘면서 전세 물건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는 것도 입주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에서 정해진 입주 기간에 이사를 하지 못하는 비율은 30%나 된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 규제로) 사실상 부동산 거래가 없어졌고, 이로 인해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집값을 잡겠다며 서민을 잡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남 3구 재건축 이주 수요만 1만9000여 가수

반면 역전세난이 2008년 때처럼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만 예정된 재건축 이주 수요만 1만9000여 가구에 달해 수급(수요와 공급) 매칭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2년 후 헬리오시티 전세 재계약 시점에는 전셋값이 껑충 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2016년 서울 위례신도시가 본격적으로 입주를 시작하면서 신도시 전셋값이 급락했지만 2년 후에는 전셋값이 평균 2억~3억원씩 급등하기도 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역전세난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해소되든 장기화하든 일시적으로 입주 물량이 몰린 만큼 중앙·지방 정부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1472호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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