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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금융시장 최대 변수 ‘노딜 브렉시트’] 최악의 상황 닥치면 엔화·달러 단기 강세 

 

백석현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외환 애널리스트
북아일랜드 문제로 브렉시트 문제 꼬여… 시장의 급등락 혼란 불가피 전망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970~1990년대에 영국인들은 테러에 몸서리를 쳤다. 최근의 IS 테러보다 더 끔찍했다는 아일랜드 테러가 빈발했다. 아직도 영국의 지하철에 쓰레기통이 없는 이유가 폭탄을 넣을까 무서워서란다. 이 시기 아일랜드 테러가 빈발했던 것은 북아일랜드 문제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에서 1921년에 독립했지만, 북부의 일부 지역은 독립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 지역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다.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식탁 위의 세계사]는 감자를 매개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적 관계를 소개한다.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모진 수탈과 학살을 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그런 가운데 구황작물인 감자 대기근(1845년)을 겪으며 당시 지원을 외면한 영국에 원한이 쌓였다.

북아일랜드가 독립에 합류하지 못했던 배경은 내부에 이질적 집단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신교계(성공회)를 중심으로 영국의 일부로 남기를 원한 세력과 구교계(가톨릭)를 중심으로 아일랜드로의 통일을 원한 세력으로 갈라진 것이다. 전자가 북아일랜드 사회의 주류였기에 영국에 남게 된 것인데, 비주류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자 이에 반발한 유혈 분쟁이 1998년 벨 파스트 협정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았다. 북아일랜드가 영국 본섬과 인접한 까닭에 북아일랜드에 터전을 잡은 영국인(앵글로색슨족)이 많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신교계가 영향력을 키워 북아일랜드 사회를 지배하면서 분란의 씨앗이 됐다.

영국에게 운명의 3월

오는 3월 29일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예정이다. 2016년 6월 실시된 투표에서 영국 국민들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를 지지하는 브렉시트를 지지한 결과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북아일랜드 문제로 불똥이 튀었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이후 미래 관계에 대해 합의하는 과정에서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겨우 합의가 된 듯했으나, 영국 의회가 해당 합의안을 비준하지 않으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브렉시트 예정일까지 합의가 최종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시장이 우려하는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국경은 현재 왕래가 자유롭고 물류 흐름이 활발하다. 이에 영국 정부는 EU 합의 하에 별도의 해법이 도출될 때까지 브렉시트 이후에도 한시적으로 자유로운 국경 통행을 보장하는 ‘안전장치(backstop)’를 마련하려고 했다. 북아일랜드에만 예외를 적용하기 어려워,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반발과 이견이 불거졌다. 영국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이 조항으로 영국이 무기한 관세동맹에 묶일 수 있다며 영국의 EU 탈퇴가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한다. 북아일랜드에선 현재 수준의 관계를 원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북아일랜드를 예외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아일랜드가 난제로 떠오르다 보니, 최근 토니 블레어 전(前) 영국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가 북아일랜드의 평화 유지에도 파괴적(devastating)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회 갈등의 대부분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결부돼 있다. 과반수의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도 경제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서 다니엘 튜더는 영국은 독일·스위스와 달리 사실상 제조업을 포기하면서 금융과 컨설팅 등 고급 서비스업이 발달한 런던과 이외 지역의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세계 2위 도시 런던에 살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엘리트들은 브렉시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후 중산층에서 밀려난 다수의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분석이다. 마거릿 대처 시대 이후 고급 제조업을 쉽게 포기한 정책에 대한 반성 없이, 영국이 EU에 속해 있어 동유럽 출신 등 이방인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프레임이 패배 심리에 젖은 영국인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역사적 아킬레스건인 북아일랜드 문제의 난해함으로 브렉시트 이슈가 진퇴양난에 빠지면서, 영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제 2국민투표 시행을 촉구하기도 한다. 2016년 브렉시트 찬반 투표에서 찬성 측의 근거 없고 낙관적인 선전에 속아 찬성에 투표한 사람들이 현실을 뒤늦게 깨닫고 마음을 되돌렸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에서 멀어져 하루하루가 고달픈 소시민들의 변화 열망이 브렉시트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재투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되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국 정부도 제 2국민투표를 배제하는 상황이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더라도 영국과 EU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즉시 관계를 재설정하면, 이미 브렉시트 여파를 반영한 금융시장에는 호재일 수 있다. 영국이 관세 동맹에 잔류하는 노르웨이 모델은 영국이 선호하지 않는다.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캐나다 모델이 영국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노딜 브렉시트 결과는 영국도 EU도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라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회피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은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한 3차 장기특정대출프로그램(TLTRO) 조기 시행을 포함한 통화정책 대응을 검토할 수 있다. 영란은행도 금리 인상 계획을 보류하고 통화정책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 영국과 EU 경제에 대한 역풍은 세계 경제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이 EU 회원국 자격으로 유지하던 한국 등 비(非)EU 국가들과의 무역협정 권리 상실도 초래할 수 있다. 합의 없는 상태로 브렉시트가 발효되면 기존 무역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전환기간 없이 바로 WTO 체제 하의 높은 관세율이 적용된다.

환율은 어떻게 반응할까. 영국이 브렉시트 예정일까지 막판 타결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로 금융시장은 예정일까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제한적으로만 반영할 수 있다. 다만, 이후 전망은 정치적 배경으로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주요 투자은행들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제각각이다. 궁극적으로 막판 타결되며 원만한 브렉시트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고, 브렉시트 예정일을 미루며 시간을 벌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노딜 브렉시트 발생 이후 아예 제 2국민투표로 이어져 브렉시트를 철회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노딜 브렉시트 때 파운드화 25% 하락 전망

노딜 브렉시트가 기본 전망이 아니기에, 이 사태가 발생하면 시장의 급등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영란은행은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영국 주택 가격은 30% 하락, 상업용 부동산은 48% 하락, 영국 파운드화가 25%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유로화도 파운드화에 비해서는 덜할 수 있지만 하락 압력에 노출될 것이다. 영국 파운드 및 유로화와 직거래가 활발한 엔화에는 이런 악재가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달러화도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노딜 브렉시트라는 상황을 단번에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부터는 이 상황을 조기에 타개하려는 영국과 EU의 대응으로 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는 동안 파운드나 유로화, 엔화, 달러화는 앞서 언급한 초기 움직임을 서서히 되돌릴 수 있다.

1473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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