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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르는 식품 업계 ‘케어푸드’ 경쟁] 영양식에서 씹고 뜯는 재미까지 살린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고령사회 진입에 2조원대 시장 전망… 연화식·저염식·연하식 등 차별화 초점

노인 인구가 늘고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들을 겨냥한 ‘케어푸드(Carefood)’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2%인 ‘고령화사회’를 넘어 지난해 65세 이상이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케어푸드는 건강상의 이유로 맞춤형 식품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연화식(씹기 좋게 부드럽게 만든 음식)·치료식·식사대용식·드링크 등 고기능성 식품을 뜻한다. 기존 노년층에 한정된 ‘실버푸드’는 물론 산모나 영·유아 등을 위한 건강식 등을 두루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케어푸드 시장은 2011년 5014억원에서 2015년 7903억원 규모로 성장한 데 이어 지난해엔 1조10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경에는 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케어푸드는 그동안 일부 식품 업체와 위탁급식 업체를 중심으로 병원·요양원을 대상으로 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주요 식품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소비자를 겨냥한 시장에 뛰어들며 올해부터는 식품 업계의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식품 업계 중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다. 현대그린푸드는 2017년 5월 케어푸드 전문브랜드 ‘그리팅’을 론칭한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국내 최초로 HMR 형태의 연화식 제품 12종을 출시하며 케어푸드 시장 선점에 나섰다. 연화식은 일반 음식과 동일한 모양과 맛은 유지하면서도 씹고 삼키기 편한 식사를 뜻한다. 음식의 경도(물체의 단단한 정도)를 일반 조리 과정을 거친 동일한 제품보다 평균 5분의 1, 최대 10분의 1로 낮추는 연화 공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씹는 힘이 약하거나 치아가 불편한 고객이 쉽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2016년부터 연화식 상용화를 위해 10여 명의 임상 영양사와 전문 셰프들로 구성된 별도의 연화식 연구·개발(R&D) 프로젝트팀을 운영했다. 또 국내 최초로 연화식 특허 출원과 전문 제조시설도 갖췄다. 박주연 현대그린푸드 푸드운영기획팀장은 “지난 1년 간 연화식 제조 전담팀을 꾸려 일본 등 헬스케어 푸드 선진국 실태조사와 조리기술을 연구해 연화식 제조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며 “올해까지 연화식 제품군을 육류와 생선류를 중심으로 최대 100여 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그린푸드는 올해 상반기 중 최첨단 식품 제조 기능을 갖춘 성남 스마트 푸드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케어푸드 제품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205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 40% 전망


CJ제일제당도 최근 케어푸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2년 간의 R&D 끝에 구현한 케어푸드를 일선 병원을 대상으로 케어푸드 시범 운영하는 등 전문 브랜드 론칭을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이미 원밀 솔루션(One Meal Solution)이 가능한 ‘부드러운 불고기덮밥’ ‘구수한 강된장비빔밥’ 등 덮밥·비빔밥 소스류 5종의 개발을 마쳤다. 기존 제품들이 ‘연화식’이라고 해 주로 저작(음식을 입에 넣고 씹음) 보완에 집중돼 있다면, CJ제일제당은 그간 ‘햇반’ ‘비비고’ ‘고메’ 등에서 노하우를 갖춘 원물가공기술을 적용해 일반식의 식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뒀다. 동시에 동일 유사 식품 대비 25% 이상 나트륨을 낮춘 저염식 제품을 올 하반기 무렵 출시할 계획이다. 강신호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는 “HMR 사업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역량을 집중해 케어푸드를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Next HMR)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11월 일본 ‘뉴트리’와 한국형 케어푸드 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키로 하는 협약을 맺었다. 뉴트리는 케어푸드 제조에 주로 사용하는 점도증진제(식품의 점도를 조절하는 소재) 분야에서 일본 내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영양요법 식품 제조 전문 기업이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소재 공급을 위한 MOU만 이번에 체결한 것으로, 이미 상용화가 가능한 제품 상당수가 준비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푸드는 케어푸드 중에서도 ‘연하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하식은 노화로 인두·식도 근육이 약해져 삼키는 행위(연하)가 곤란한 경우 이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식품이다. 주로 점성 증가식품(점도조정식품), 디저트 기반식품, 수분보충 젤리 등의 제품이 주를 이룬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점도조정식품의 경우 병원·요양시설뿐 아니라 기존 가정에서 치료 중이거나 퇴원한 노령층에게 필수적인 제품”이라며 “이들을 대상으로 소량팩이나 HMR 형태의 연하식을 내놓을 경우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세계푸드는 올 상반기 중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고 병원식 중심의 기업 간 거래(B2B)를 넘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린푸드와 CJ제일제당, 신세계푸드로 이어지는 ‘케어푸드 트로이카’ 외에 후발주자들도 케어푸드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효소를 활용해 육류, 떡 등의 물성을 조절하는 데 성공한 아워홈도 올 상반기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연화식을 출시한다. 아워홈 관계자는 “초기에는 환자나 고령자를 대상으로 제품 개발을 했지만, 연령에 상관없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관련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반죽’으로 상품죽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동원F&B는 즉석죽에 건강성과 영양학적 요소를 보다 강화한 시니어죽을 올 초 선보이며 시장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시장 세분화된 미국에선 2020년 30조원대 전망


남양유업은 올해 성인을 타깃으로 한 분유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분유 시장점유율 1위인 남양유업이 출시할 성인용 분유는 분말 이외에 액상 형태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근감소 및 치매 예방, 비타민 등 영양보완 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정작 타깃 소비층들이 ‘고령친화식품’ ‘실버푸드’ 등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측면이 있어 제품 출시가 쉽지 않았다”며 “최근에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성인부터 노년층까지 아우르는 맞춤형 식품에 대한 시장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되고 있다는 판단에 본격적인 제품 출시로 이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쟁사인 매일유업은 단백질·필수아미노산 등 영양성분을 강화한 분말 형태의 성인용 분유를 공식 론칭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케어푸드 시대가 열릴 전망이지만 미국·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환자식·노인식·영유아식·다이어트식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5년 24조2979억원, 2017년 26조6361억원 수준이었던 케어푸드 시장이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28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 업계는 그 규모가 2020년경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있다. 일본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케어푸드 시장 역시 2015년 1조1110억원에서 지난해 1조2282억원 규모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양보충식, 부드러운 음식 등이 단계별로 세분화돼 있는 수준까지 발달한 일본은 케어푸드 전문 제조 업체만 70여개에 달한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 간 1인 가구 증가로 HMR 시장 외 이렇다 할 성장동력이 없던 업계에 모처럼만에 케어푸드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먀 “업체 경쟁이 본격화되는 올해에는 케어푸드가 HMR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운목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급속한 인구고령화로 고령층을 겨냥한 케어푸드 시장 성장은 당연한 흐름”이라며 “업체별로 얼마나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느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느냐가 중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1474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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