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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일로의 유럽 경제 어디로] 실물경제 침체→ 금융 불안→ 재정위기? 

 

김득갑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
애초 예상보다 경기 냉각 속도 빨라... 브렉시트, ECB 금융정책 등 내부 요인 단속해야

▎올해 10월 말 퇴임 예정인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그의 퇴임 후 ‘통화정책의 조기 정상화’를 주장하는 매파가 정책이사회를 장악할 경우 ECB가 금융긴축정책을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럽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를 반영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이어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유럽 경제 전망을 잇따라 하향 수정하고 있다. IMF는 올해 유로지역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9%(2018년 10월 전망)에서 1.6%로 낮췄다. 세계은행도 1.7%(2018년 6월 전망)에서 1.6%로 낮춰 잡았다. 지난 2월 1일 EU 집행위원회는 임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유로지역 전망치를 1.9%에서 1.3%로 대폭 낮췄다. 주요 투자은행(IB)을 비롯한 민간 금융기관들은 유럽 경제를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투자은행들이 내놓은 올해 유로지역 평균 성장 전망치는 1.2%에 불과하다.

주요 투자은행의 올해 유로지역 성장 전망치 1.2%


최근 발표된 주요 경제지표들은 유럽 경제의 둔화세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분기별 성장률을 보면 유럽 경제의 성장세가 2018년 하반기부터 꺾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둔화세가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로지역은 물론 EU 전체로도 상반기에 기록했던 2%대의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이 하반기에는 1%대로 하락했다. 유로지역의 12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전월 대비 -0.9%, 전년 동월 대비 -4.2%를 기록했다. 11월부터 악화 조짐(전월 대비 -1.7%, 전년 동월 대비 -3.0%)을 보였던 산업생산 활동이 본격적으로 위축돼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호조를 보였던 유로지역의 소매판매도 12월에는 전월 대비 -1.6% 감소했다. 특히 섬유·의류, 신발, 가전제품 등 공산품의 소매판매가 부진했다(전월 대비 -2.7%). 경기 둔화로 유로지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연간 인플레이션)도 2018년 10월 2.2%에서 2019년 1월에 1.4%로 뚝 떨어졌다.

올해 유럽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1.9%)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성장률 하락세가 예상보다 가파르고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의 경기체감지수(ESI)와 IHS 마킷(Markit)이 발표하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등 각종 경기선행지표들은 유럽 경제의 추가 악화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월 유로지역의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개월 연속 하락해 지난 5년 반 동안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1월 들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산업의 PMI는 4개월 연속, 2012년 12월 이래 가장 강한 하락세를 보였다. 신규 주문이 지난 6년 동안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으며, 기업들은 지난 5개월 동안 4번이나 고용을 축소했다.

이는 경제활동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의 위축은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두드러졌다. 프랑스의 생산량은 2개월 연속 하락했으며 4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이탈리아의 민간 부문 생산도 지난 4개월 동안 세 번째로 악화됐으며,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악화됐다. 제조업의 생산 위축이 주요 원인이었다. 현재 제조업의 생산 활동은 수주 잔고의 감소와 완제품 재고 축적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업의 신규 생산은 2013년 4월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이는 지난 4년 동안 전체 신규 생산이 처음으로 감소한 주된 요인이었다.

올해 들어 유로지역 경제는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 감소로 정체 상태에 가까운 저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유로지역 경제가 0.1%의 분기별 성장률을 보여 2013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한다면 올해 GDP 성장 전망치(현재의 컨센서스 전망치 1.5%)는 더욱 하향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중으로 계획하고 있는 금융긴축정책은 연기 또는 철회될지도 모른다.

제조업과 수출산업에서 시작된 경기 둔화 현상은 서비스 분야에까지 영향을 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PMI는 공산품 생산 부문이 이미 침체에 접어들었으며, 서비스 부문도 아직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나 지난 4년 동안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장이 수주하는 신규 주문은 약 6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으며, 서비스 부문으로 이어지는 신규 사업기회도 정체를 보이고 있다. 주문은 2013년 중반 이래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지속 감소하고 있다. 또 기업들이 생산설비 확장에 더욱 신중한 입장을 취함에 따라 고용시장도 영향을 받아 지난 2년 동안 가장 느린 속도로 일자리가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로지역의 실업률은 7.9%로 2008년 10월 이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 12월 한달 동안 7만5000명의 실업자가 줄었으나 신규 고용은 11월(10만6000명)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이런 경기 둔화 현상은 국가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는 지난 5년 동안 가장 가파른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프랑스도 지난 4년 동안 가장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독일과 스페인의 빠른 성장세도 주문이 점차 감소함에 따라 서서히 미약해지고 있다.

서베이 결과 글로벌 무역환경 악화와 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면서 수요가 위축되고 위험 회피 성향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벌 무역환경 악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불확실성,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환경 변화 등이 국가채무 위기가 절정을 이루던 2013년 이래 유럽 경제의 성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해외 부문 악화가 성장 둔화의 주범


독일의 최대 민간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올해 유로지역의 성장 전망치를 1.7%에서 1.4%로 낮추고 2020년 GDP 성장률도 1.3%로 전망했다. 해외수요 둔화가 유로지역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외여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조업 PMI는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전 세계 수출 주문도 2016년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최근 국별 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기업심리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유럽중앙은행(ECB)도 경제활동의 약화를 근거로 올해 유로지역의 성장 전망치를 1.8%에서 1.7%로 하향 수정했다. ECB의 전망치가 민간에 비해 여전히 높은 것은 내수경기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ECB는 유로지역의 내수 부문이 아직 양호해 부정적인 해외 요인을 어느 정도 상쇄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높은 임금 상승률과 생산성 증가, 안정적인 기업 수익, 실업률 하락, 여전히 완화적인 ECB의 금융정책 기조, 유리한 자금조달 여건 등이 내수경기를 지탱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유럽 경제의 성장 둔화는 국내 요인보다 해외 요인(해외 수요 충격)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무역의 증가세가 큰 폭으로 둔화돼 유럽 국가들의 신규 수출 주문량이 10%가량 감소했다. 이는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여러 국가에서 수입량이 많은 자본지출(총고정자본 형성)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 관련 불확실성도 유럽 국가들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로지역 전체는 물론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수출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 한 나라의 부정적 충격은 주변국들에 파급 효과를 가져다준다. 오스트리아 수출의 30%, 네덜란드 수출의 24%는 독일로 향하고 있다. 유로지역 국가들에게 독일 경제의 성장이 중요한 이유다. 다만, 이탈리아는 국내 환경의 악화가 해외에서 오는 충격보다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하반기에 다시 경기 침체에 진입했는데 국채금리의 상승(2019년 2월 20일 현재 10년물 국채금리 2.9%)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정부재정과 관련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 경제가 이처럼 당초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 경제에 하방리스크(downside risks)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던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미중 무역갈등으로 대표되는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유럽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GDP 대비 공산품 및 서비스 수출의 비중(2017년 기준)을 살펴보면, 유로지역은 28%로 미국(12.1%)·일본(18%)은 물론 중국(19.6%)보다 크게 높다. 이는 철강(25% 관세 부과)과 알루미늄(10% 관세부과)으로부터 시작된 미국발 보호무역 조치가 확대 내지 장기화될수록 유럽 경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of 1962) 232조를 근거로 수입자동차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철강·알루미늄 사례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수입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주기만 해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 유로화 강세 등 변수


통상 전문가들은 자동차 관세 부과로 무역갈등이 심각한 수준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가 이뤄질 경우 유럽 경제에 미칠 충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자동차산업은 유로지역 GDP의 0.7%, 전체 투자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EU의 자동차 수출의 29%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으로 중국(비중 17%)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EU 자동차 관세 부과 때 유로지역의 경제 성장에 미칠 영향은 최소 0.2∼0.3%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유럽의 자동차 메카라 할 수 있는 독일(0.3∼0.4%포인트 감소)은 물론 슬로바키아·헝가리·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성장 둔화가 글로벌 무역을 위축시켜 유럽 국가들의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무역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지난 1월 세계무역전망지수(WTOI)는 96.3으로 기준치(100=중기 트렌드 수준 유지)를 크게 밑돌고 있다. 2010년 3월 이래 최저 수준이다. 이는 앞으로 수개월 내에 세계무역이 크게 위축될 것임을 시사한다. 또 앞으로 예상되는 유로화 강세도 유로지역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제금융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IB)들은 현재 1.14달러를 기록 중인 유로화 환율이 향후 6개월 후에는 1.17달러, 12개월 후에는 1.21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셋째,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이 기업 투자 등 유럽의 전반적인 경제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로 금융시장 혼란과 실물경제 위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경제적 충격이 큰 노딜 회피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3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가 일정 기간 연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여전한 만큼 브렉시트의 향방이 확정되기까지 유럽 경제는 ‘브렉시트’라는 악재에 계속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만약 아무도 원치 않는 무질서한 브렉시트(disorderly Brexit)가 진행된다면 영국 GDP는 8%가량 감소해, 이미 경기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유로지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넷째, 시장 일각에서는 실물경제가 악화되고 있음에도 유럽중앙은행(ECB)이 당초 계획대로 금융긴축정책을 강행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ECB는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양적완화(QE)‘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동원해 유동성 공급(자산 매입)을 통해 경기 부양에 성공했다. ECB가 그동안 사들인 총 자산 규모는 2조5700억 유로(유로지역 GDP의 23%)에 달한다. ECB는 자산 매입액을 지난해 10월부터 월 150억 유로로 축소했으며, 지난해 말에 자산 매입을 완전 중단했다. 그리고 ECB는 올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을 시사한 바 있다.

다행히 현재 ECB는 만기도래한 채권의 회수 대금으로 다른 채권을 매입하고 있으며 저리의 은행대출 프로그램(TLTROs)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만약 금융완화정책을 주도했던 드라기 ECB 총재의 퇴임(2019년 10월 말)으로 ‘통화정책의 조기 정상화’를 주장하는 매파가 정책이사회를 장악할 경우 ECB가 금융긴축정책을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내수경기의 냉각으로 유로지역 경제의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

다섯째, 정치 상황도 유럽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의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에 이어 스페인의 조기 총선(4월 28일), 5월 23~26일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反)EU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 가능성 등도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또 올해 말까지 EU 집행위원회와 ECB의 집행부가 교체될 예정이어서 유럽은 거버넌스 측면에서 새로운 위기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노란조끼 시위, 스페인 조기 총선, 유럽의회 선거 줄 이어

세계 경제의 약 20%를 차지하는 유럽 경제의 성장세가 빠르게 둔화되면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대내외 요인들도 유럽 경제의 침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유로지역 경제는 위기 이후 체질 개선이 많이 이뤄졌지만, 실물경제 침체가 금융 불안과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vicious circle)가 작동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여전히 안고 있다. 그러므로 유럽 국가들이 경제 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2012~13년에 경험했던 국가채무위기에 다시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세계 경제 저성장 등 대외 요인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브렉시트 협상과 ECB의 금융정책 등 대내 요인에 유연하게 접근해 대외 충격을 최소화해야만 제2의 위기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1474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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