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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최태원 회장 총수익스왑 계약 논란 어디로] “SPC·최태원은 한몸” 금감원의 무리수?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고심 속 잇따라 연기… ‘발행어음으로 실트론 주식 매입’은 사실과 달라

▎한국투자증권과의 '총수익스왑' 계약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최태원 SK 회장. / 사진:연합뉴스
‘총수익스왑(TRS, Total Return Swap)’이라는 구조화된 금융상품이 있다. 지난 2017년 4월, 재벌 총수와 증권회사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TRS 계약을 했다. 이 계약 때문에 지금 증권회사는 자본시장법을, 총수는 공정거래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시작은 자본시장법 문제가 아니었다. 그해 말, 한 시민단체는 총수가 회사의 사업기회를 빼앗아 공정거래법을 위반(회사 기회 유용 및 사익편취)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그 후로 사건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거래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옮아간 것은 금융감독 당국의 조사 때문이었다. 지난해 증권 업계 전반의 TRS 거래 실태를 조사한 당국은 이 증권회사가 자본시장법을 중대하게 어겼다며 제재를 가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그러자 총수가 사익 추구를 위해 TRS 계약을 활용했는지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판단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이 TRS의 구조와 자금 흐름을 보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TRS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영희는 삼성전자 주식 10주를 주당 5만원에 철수에게 팔기로 했다. 철수는 삼성전자 주가가 단기간에 급락할까 걱정이다. 영희는 철수에게 제안을 한다. “3개월 후 주가가 5만원 아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을 내가 메워줄게. 대신 5만원을 웃돌면 그 차액을 나에게 지급해다오.” 예컨대 3개월 후 주가가 4만원이 되면 10만원(주당 1만원X10주)을 영희가 철수에게 준다. 주가가 6만원이 된다면 철수가 영희에게 10만원을 준다는 계약이다. 이렇게 특정 시점을 정해놓고 주가 차익을 정산하는 계약을 주가수익스왑(Price Return Swap)이라 할 수 있다. 3개월 이후의 철수의 손익은 주식시장에 달려있다.

조금 더 복잡한 거래를 가정해보자[그림1 참조]. 철수는 영희의 삼성전자 주식 10주를 사고 싶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그만한 현금이 없다. 철수는 돈이 있는 순희에게 제안한다. “순희야, 네가 일단 영희의 삼성전자 주식을 사다오. 네가 나중에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은 모두 내가 책임지마. 그리고 이 주식에서 배당이 발생하면 그 배당도 내가 가질게.” 그러자 순희는 이렇게 말한다. “주식에서 발생하는 총수익(매각시의 이익이나 손실, 배당 등)을 너의 몫으로 하겠다는 말은 알겠어. 그런데 너 대신 내 돈으로 주식을 사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뭐니?” 철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전자 주식 매입 대금에 대해 내가 계약기간 동안 너에게 연 3%의 수수료를 지급할 거야. 그리고 네가 보유하게 될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 내가 콜옵션(매입요구권)을 가질게. 계약기간은 2년이야. 그때까지 돈을 모아서 콜옵션을 행사하려고 해, 어때?” “알았어. 그럼 내가 너에게 2년 동안 삼성전자 주식 매입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과 거의 같구나.”

증권사 자본시장법 위반→총수의 공정거래법 위반?


이런 계약을 총수익스왑(TRS)이라고 한다. 주식 소유권과 의결권은 법적으로 순희가 갖는다. 주식에서 발생하는 변동 수익(매각시 주가 변동에 따른 손익, 배당금 등)을 철수에게 넘겨주는 대신 순희는 수수료라는 고정수익을 챙기는 방법이다. 2017년 1월 당시 반도체 웨이퍼 제조회사 LG실트론(현 SK 실트론) 지분은 사모펀드와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었다. SK㈜는 이 가운데 보고펀드가 가진 지분 51%를 매입, 경영권과 지배력을 확보했다. 그 후 나머지 사모펀드들과 채권단이 잔여지분 49% 매입을 계속 요구하자, SK㈜가 20%를 추가로 사들였다. 그리고 얼마 후 나머지 29%는 최태원 회장과 TRS 계약을 한 증권사들이 매입했다. 이 29%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이 매입한 19%가 이번에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물량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실트론 지분 19%(1299만5000주) 매입을 위해 회사를 하나 세운다. ㈜키스아이비제16차(이하 키스아이비)라는 특수목적회사(SPC)다[그림2 참조].

키스아이비는 최태원 회장과 만기 5년의 TRS 계약을 했다. 키스아이비가 나중에 실트론 주식을 매각할 때 매입 가격 대비 손실이 발생하면 최 회장이 이를 보전해주고,이익이 나면 최 회장이 차액을 회수하기로 했다. 물론 배당도 최 회장 몫이다. 대신 최 회장은 SPC 측에 이자나 마찬가지인 고정수수료를 지급한다. 키스아이비는 실트론 주식 매입 자금 마련을 위해 1800억원어치의 전자단기사채(전단채)를 발행했다. 자산운용사 펀드와 은행신탁, 기타 기관투자자들이 만기 3개월짜리 이 전단채에 투자했다. 최 회장과 맺은 TRS 만기가 5년이었기 때문에, 이 전단채 역시 매 3개월 간격으로 총 20회(5년) 차환 발행을 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TRS에는 별 문제가 없다. 키스아이비는 시장자금을 끌어들여 실트론 주식을 매입했다. 전단채 투자자들이 상환을 요구할 때 키스아이비가 차환발행을 못하면 원리금 지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투자증권이 키스아이비에 상환자금을 대여(키스아이비가 발행하는 사모사채 인수)해 주기로 했다. 키스아이비는 나중에 실트론 주식을 매각해 한국투자증권에 대여금을 갚으면 된다. 물론 실트론 주식 가치가 크게 떨어져 손실 보전 금액이 커지면 최 회장이 키스아이비에 보전해주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시장가치로 약 3000억원에 이르는 최 회장 소유 SK㈜ 지분이 TRS 계약담보로 제공됐다. 최 회장은 이 실트론 주식에 대해 콜옵션을 가진다.

2017년 최 회장 입장에서는 실트론 주식을 사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당시 SK㈜가 보고펀드 보유 실트론 지분 51%를 확보한 후 잔여 지분 보유자들의 매입 요구가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들로부터 주총에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SK㈜는 그래서 주총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20%를 추가 매입, 총 71%를 보유했다. SK 측은 “나머지 29% 지분을 중국 등 경쟁국 기업들이 매입할 움직임이 있었고, SK㈜가 한정된 자원을 계속 실트론 주식 매입에만 쏟을 순 없었기 때문에 최 회장이 나선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태원 회장의 사익편취?


시민단체 등에서는 실트론 주식가치가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최 회장이 29% 지분을 TRS로 사들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회사의 사업기회(유망 주식 매입 기회)를 최 회장이 가로챘기 때문에 사익편취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어찌됐든 최 회장은 당장 1800억원을 투입할 만한 현금 여력이 없었다. 한국투자증권은 금융거래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 한편, SK 측과의 관계 형성에도 신경을 써야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TRS 계약이 체결됐다. 전단채 차환발행은 1회차~3회차까지는 무난히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 투자자들이 1800억원에 이르는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자 키스아이비는 대응자금이 필요했다. TRS 계약에 따라 한국투자증권이 키스아이비가 발행한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1800억원을 대여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그림3 참조].

한국투자증권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초대형 IB)다. 자체 신용으로 어음을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기업에 대한 신용공여사업을 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과 시행령 등에서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할 수 있는 신용공여로 대출과 어음할인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신용공여는 금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검사국은 한국투자증권이 어음발행으로 마련한 자금을 SPC에 대여했지만, TRS 구조상 이는 최 회장에 대한 개인대출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자본시장법에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대해 금지하고 있는 행위(발행어음 자금의 개인대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발행어음 자금이 엄연히 키스아이비라는 법인에 흘러갔고, 이 돈은 전단채 상환자금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최 회장에 대한 개인대출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이 사안은 현재 금감원장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 계류돼있다.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과 제재 수위는 제재심에서 가닥이 잡힌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의 제재심이 열렸지만, 한국투자증권 TRS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TRS의 구조와 자금흐름이 자본시장법에 저촉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간단찮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은 TRS 자금흐름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키스아이비가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자금으로 실트론 주식을 매입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보도가 대표적 사례다. 만약 그랬다면 결론은 간단하게 날 수도 있다. TRS 계약의 기본 구조는 일반적으로 대출 속성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TR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식에 대한 법적 소유권과 의결권은 키스아이비가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이 실트론 주식 매입을 위해 실제 돈을 투입한 것은 없다. 하지만 키스아이비의 의결권 행사방향이 최 회장의 의사와 다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최 회장은 키스아이비가 투입한 매입 자금에 대해 이자나 마찬가지인 고정수수료를 지급해왔다. 아울러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TRS는 최 회장에 대한 신용공여로 해석할 수 있는요소를 품고 있는 셈이다. 키스아이비의 실트론 매입 자금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자금으로부터 왔다면, TRS 자금흐름상 개인에 대한 신용공여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자본시장법에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규정한 개인 신용 공여로 볼 소지가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실트론 매입 자금 자체가 발행어음에서 온 것은 아니다. 실트론 매입 자금은 분명히 전단채 발행으로 끌어온 시장투자 자금이다. 발행어음 자금은 키스아이비라는 법인에게 전단채 원리금 상환용으로 흘러갔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놓고 금감원 검사국과 한국투자증권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중간에 끼어있는 SK 측도 제재심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감원 검사국의 입장대로 발행어음이 사실상 최 회장에게 대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최 회장과 키스아이비를 사실상 동일체로 봐야 한다. 검사국 역시 키스아이비의 법인격을 부인함으로써, 동일체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동일체로 봐야 한다는 금감원의 논리도 따져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동일체라면 키스아이비가 발행한 전단채에 투자한 펀드·신탁 등도 최 회장 개인에게 대출을 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수목적회사의 법인격 부인이 부를 파장

공모펀드가 최 회장에게 신용공여를 할 수는 없다. 불법이다. 따라서 금융 업계에서 이뤄진 수많은 TRS 계약의 법 위반 여부를 전부 재조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SPC에 대한 법인격 부인은 금융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한국투자증권 TRS는 애초 지난 2월 중 3차 제재심이 열리면 본격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재심은 일단 3월로 미뤄졌다. 일각에서는 3월에 열릴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시장법 조문에 대한 해석을 포함해 당국 입장에서도 세심하게 따져봐야 할 요소가 많다는 이야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월 효성 조현준 회장이 연루된 TRS 거래를 사익편취로 보고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투자증권-최태원 회장 TRS에 대한 금융당국과 공정위의 판단에는 제법 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1475호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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