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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실적 저조한 이유는] 수수료만 제로? 사용자 유인책도 제로! 

 

황정일 기자
사용자 적으면 소상공인 지원 취지 무색... 할인·적립 혜택 적고 여신 기능 없어 외면 받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3월 5일 오전 ‘제로페이’ 시범 단지인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찾아 한 상가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수수료만 제로(0)가 아니라 사용률도 제로, 그래서 제로페이.” 정부와 서울시가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야심차게 내놓은 오프라인 간편결제시스템 제로페이에 대한 조롱 섞인 평가다. 제로페이는 기존의 신용카드 결제망을 사용하지 않고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나 바코드를 통해 소비자(사용자) 계좌에서 판매자(상인) 계좌로 결제대금을 이체하는 방식이다. 신용카드에 비해 결제 구조가 단순해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이 덕에 중소상인의 제로페이 결제 수수료율(0~0.5%)은 신용카드(0.8~2.3%)의 절반 수준도 안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와 부산·경남지역에서 제로페이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고, 2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런데 제로페이가 사용자·판매자 모두에게 외면 받고 있다. 정부는 제로페이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지만, 수십억원의 세금을 들이고도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정부는 세금을 더 들여 제로페이 확대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사용자 유인책이 부족해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탁상행정으로 예산 낭비만 했던 서울시의 택시호출 애플리케이션 ‘지브로’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개인카드 실적 대비 0.0004%?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제로페이의 2월 일평균 사용실적은 1893만원이다. 1월 912만원보다는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월간 사용실적도 1월 2억8300만원에서 2월에는 5억3000만원까지 늘었다. 3월 들어서는 11일까지 일평균 사용실적이 3200만원대까지 올라왔다. 중기부는 특히 2월 일평균 거래건수가 1005건으로 시행 두 달여 만에 1000건을 돌파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2012년 도입한 직불카드가 1000건을 돌파하는 데 1년여가 걸린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카드(신용·직불카드 등) 사용실적에 비해 0.1%도 안 되는 수치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 1월 개인카드 결제금액은 총 58조1000억원으로, 개인카드 대비 제로페이 실적은 0.0004% 수준이다.

제로페이 개발과 홍보에 이미 세금 30억원을 넘게 투입한 결과 치고는 초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로페이 실적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자 정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의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축소 발언도 제로페이 실적 저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제로페이 소득공제율은 신용카드(15%)의 두 배 수준이 넘는 40%이고, 높은 소득공제율은 제로페이 확대 방안의 핵심이다. 정부는 앞서서도 가맹점 수수료가 신용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직불카드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은 낮추고 직불카드는 높인 바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홍 장관의 발언이 “제로페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신용카드 혜택을 줄여 제로페이 실적을 늘리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축소까지 검토해야 할 정도로 제로페이 사용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뭘까. 신용카드·간편결제 업계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경쟁 상대인 신용카드에 비해 사용자를 끌어들일 만한 요인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현금 결제를 제외한 결제시장에서 신용카드의 비중은 78.7%에 이른다. 신용카드 비중이 큰 건 단지 익숙해서가 아니라 할인·적립 등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용카드 정보사이트인 ‘카드고릴라’에 따르면 대중교통이나 이동통신 요금을 할인해주거나 마일리지 적립·전환율이 높은 카드가 단연 인기다. 각종 혜택을 제공받는 데 필요한 최소 사용액을 채우기 위해서, 혹은 적립금을 쌓기 위해 편의점·식당·카페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심지혜(40)씨는 “신용카드를 3장 쓰는데 각각 통신요금, 정수기, 아파트 관리비 할인을 위한 카드”라며 “여기에 부수적으로 커피전문점 등에서 할인이나 적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로페이에 없는 여신 기능, 즉 외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도 신용카드가 갖는 강점이다. 제로페이는 이런 혜택이 없다. 정부와 서울시가 앞으로 공유자전거인 따릉이나 공영주차장 할인 등을 약속했지만 최근의 소비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그 마저도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았고, 할인을 해준다고 해도 대부분 올해 말 끝나는 한시적인 혜택뿐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공영주차장 할인 등은 시 예산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영구적으로 혜택을 주기는 어렵다”며 “당장 내년에도 혜택을 주려면 시의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공제 효과도 의문


정부는 소득공제율 40%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2018 조세특례 심층평가’에 따르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소득공제율을 30%, 40%로 상향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신용카드에 비해 더 높은 공제율을 제공하는 결제 수단이 등장했을 때 신용카드 이용에 변화가 있었냐는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0.1%가 변화가 없었다고 답했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소득공제만으로 신용카드의 각종 혜택과 소비자의 소비 관성을 유인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야당도 이른바 제로페이법(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3월 13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 법안소위원회는 야당 측이 “제로페이가 시장에서 성공하면 법 개정을 검토하겠다”며 반대하면서 소득 없이 끝났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정 기간 좀 더 지켜본 후 (실적을) 다시 평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마당에 사용하기도 불편하다. 제로페이로 결제하려면 소비자는 ①제로페이 결제를 지원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실행 ②개인 비밀번호 입력 ③점포에 비치된 제로페이 QR코드 스캔 ④결제금액 입력이라는 4단계를 거쳐야 한다. 신용카드를 주고받는 것에 비해 복잡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4단계를 거친 후 가게 주인이 제로페이로 결제한 돈이 자신의 통장에 입금됐는지 최종 확인해야 사실상 결제가 끝나는 것이다. 3월 5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 등이 제로페이 시연·홍보를 위해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찾았는데, 박 시장의 제로페이 시연 때 30여 초가 걸렸다. 이날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제로페이를 시연했는데, 결제에서 가게 주인이 확인하는 과정을 모두 합쳐 30초~1분여가 소요됐다. 10여 초면 끝나는 신용카드에 비해 꽤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 같은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결국 중간결제사업자인 밴(VAN)사와 함께 기존의 카드결제단말기(포스기)와 연동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신용카드처럼 포스기를 통해 결제하도록 하면 스마트폰을 열고 QR코드를 찍는 번거로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긴다. 결제 구조가 신용카드처럼 복잡해져 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정부는 이 비용을 은행 등 간편결제사업자가 부담하게 할 계획이다. 지금도 제로페이 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체 수수료를 제로페이에 참여한 은행이 부담하고 있다.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 등 간편결제사업자가 공익적 차원에서 손실을 감내하는 방식이어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정부는 제로페이 확대에 힘을 더 쏟는다는 계획이다. 이미 투입한 30억원 외에 올해에만 홍보비 등으로 쓸 60여 억원의 예산을 잡아뒀다. 6대 편의점과 60여 개 프랜차이즈로 제로페이 가맹점을 늘리고, 사용자 할인 혜택 등을 늘려갈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제로페이 사용자가 늘어야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사용처와 사용자 확대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적은 비용으로 직불할 수 있어 소상공인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며 제로페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결제 완료까지 신용카드보다 오래 걸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신용카드는 물론 이미 간편결제 시장을 선점함 삼성페이 등과도 경쟁해야 하는 만큼 사용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로페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유인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2017년 서울시가 10억원을 투자해 만든 택시호출 앱 지브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브로는 택시기사는 물론 사용자(승객)의 참여율이 저조해 6개월여 만에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현장의 수요·공급 예측에 실패한 대표적인 탁상행정으로 꼽힌다. 연 위원은 “제로페이 결제금액에 대해서는 소득 대비 지출이 25% 미만이어도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477호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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