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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19)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 무모하게 저지르고 창조적으로 수습하라 

 

창업가는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야… 본질에서 치킨집 창업과 기술 창업 차이 없어

▎사진 : 김현동 기자
“창업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겁니다. 무데뽀로 맨땅에 헤딩하는 거고, 무모하게 일단 저지른 후 창조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거죠.” 창업 오너 CEO인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창업가는 본능적 충동이 이성적 자세보다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7대3으로 도전적 본능이 이성적 접근보다 더 많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반면 창업과 달리 유(有)를 더 큰 유(有)로 키우는 수성(守成)은 리더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교육된 자질이 필요하죠. 데이터를 잘 볼 줄 알아야 하고요.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의 차이죠.”

남 회장은 1993년 다산네트웍스의 전신인 다산기연을 창업했다. 다산이라는 회사 이름은 정약용의 호에서 따왔다. 지난해 다산네트웍스는 연결 기준 매출 3400억 원(영업이익 120억원)을 기록했다. 다산존솔루션즈·다산네트웍솔루션즈·키마일·다산벤처스 등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다산프랑스 등 10여 개 네트워크 사업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기업가정신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을 “시장과 산업에 걸쳐 있는 열등한 혁신을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새 비즈니스 모델을 포함해 새로운 상품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의 바람”이라고 정의했다. 남 회장은 기업가정신의 3요소로 문제 해결의 의지 곧 도전, 혁신, 새로운 것의 창조를 꼽았다.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문제의식입니다. 문제의식을 품는 대상은 우리가 처한 현실, 한국 사회, 정부, 국민 또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죠. 이들 대상에 대한 불만,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인지에서 문제의식이 싹튼다고 봅니다.”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문제의식

그는 이런 관점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비교했다. 북핵 문제든 미중 간 무역분쟁이든 트럼프가 문제를 해결하려 달려드는 건 기업가로 살아온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을 계량화한다면 문제의식의 깊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의 강도, 문제 해결 능력의 수준을 측정하면 됩니다.”

버트란드 러셀은 “우둔한 자는 절대적으로 확신하지만 지적인 자는 회의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의 한 요소는 야성적 충동이다. 본능적 행동을 하게 하는 애니멀 스피릿이다. 무데뽀 정신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이나 창업은 때로는 대책 없이 저질러야 합니다. 도전이란 본래 무지막지한 겁니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결과 실패할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호르몬의 작용 같은 본능적 욕구가 기업가정신의 한 요소라는 겁니다.”

그는 기업의 본질이라 할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이행 중 이윤 추구는 본능과, 사회적 책임 이행은 이성과 대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이성적인 사람보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기업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고 사회의 구성원을 만족시키는 활동을 하는 조직입니다. 이윤은 기업을 지속가능토록 하는 필요조건이지, 다수의 기업가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금융업자라면 모를까, 기업가는 주주자본주의를 주장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기업의 3요소는 주주와 구성원, 고객이죠.”

남 회장은 4전5기를 한 기업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2001년 IT 버블이 꺼졌을 때와 2004년 수익성 악화로 지멘스에 지분을 매각했을 때,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가 겪은 네 번의 위기다. 국내 최초로 라우터(네트워크 연결 장치)를 개발해 우리나라가 초고속인터넷 1등 국가가 되는 데 기여한 다산네트웍스는 그의 제의로 지멘스에 넘어갔다 지멘스를 인수한 노키아로부터 그가 경영권을 재인수했다. 그는 실패와 좌절 경험 덕에 결국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이들 위기를 극복하며 그가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총욕약경(寵辱若驚 : 평범한 사람은 사소한 총애와 모욕에 놀라지만 사물의 도리에 정통한 사람은 이들을 경계한다. 총애와 모욕을 초월함을 이르는 말)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좋은 일엔 나쁜 일의 씨앗이 숨어 있고 나쁜 일을 극복하다 보면 좋은 씨앗이 뿌려지게 마련이죠.”

마지막으로 겪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 달에 30억원씩 적자가 났다. 이 상태가 1년을 끌면 회사가 망할 거 같았다. 절박했다. 3분의 1을 유급휴직 시켰다. 반년 간 뼈를 깎는 고통 분담을 한 결과 이듬해 대박이 났다. 2010년 1940억원 매출에 241억원의 이익을 냈다. 340명선으로 줄였던 인력을 크게 늘렸다. 매출이 1441억원(이익 -28억원)으로 다시 꺾였다. 다시 직원 수를 386명으로 줄여 균형을 되찾았다.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은 번갈아가며 닥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이 일은 어떤 나쁜 일의 전조일까, 지금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됐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첫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결국 대부분 망합니다. 새 사업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첫 창업이 성공할 확률은 로또가 맞을 확률과 큰 차이가 없어요.”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


▎사진 : 김현동 기자
기업 간 거래(B2B) 업종만 하던 그는 3년 전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에 진출했다. B2B 하던 기업이 B2C 하면 망한다는 속설에 도전한 것이다. 그가 B2C에 손을 댄 건 호기심 때문이다. “호기심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소프트웨어 수입업을 하다 외환위기 때 위기에서 벗어나려 실리콘밸리에 날아갔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직감했습니다. 라우터 개발에 착수했을 때 저는 전문가는커녕 네트워크 장비를 다뤄본 경험도 없었어요. 기득권에 안주하는 건 벤처의 자세가 아닙니다. 반 타작 이상 했으니 승률도 높은 편이에요. 벤처의 성공 확률이 10~20%입니다.”

그는 2012년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냈다. 남 회장은 리더로서 솔선수범과 소통을 중시한다. 최근엔 소통을 강조하려 소통을 주제로 임원들에게 강의를 했다. “소통은 조직의 핵심적 가치이자 조직문화의 전부라고 할 만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조직은 좋은 조직이 될 수 없고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없어요.”

CEO로서 그는 관대함과 절박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구성원의 개인적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려 노력하지만 매너리즘과 모럴 해저드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매너리즘은 조직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뻔히 눈에 보이는 문제를 덮고 해결하지 않는 건 기업가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겁니다. 문제를 방치하고 문제 해결에 절박하지 않을 땐 그 즉시 지적을 합니다. 심지어 그렇게 일하려면 당장 짐 싸라고 해요.”

그가 경계하는 건 기득권에의 안주이다.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혁신을 하겠다는 건 자기 기만입니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로 그 결과가 참혹할 수밖에 없어요.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기득권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죠. 그래도 혁신을 해야 하는 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비관련 다각화를 위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땐 회사 안에 신규 사업부를 만들기보다 스타트업에 맡기든지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한다.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에 맞는 접근법이다. “기존 조직에 신규 사업부를 만들면 기득권 집단의 방해로 대부분 실패합니다. 반면 유기적 성장은 기득권 조직의 몫이죠.”

이른바 ‘직장 내 갑질’에 대해서도 그는 무관용이다. “윗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적폐입니다. 윗사람 생일잔치도 못하게 해요. 아예 갑질이란 말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세계적으로 기업가정신이 가장 왕성한 나라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이 기업가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벤처 1세대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한국은 기업가정신을 잃고 늙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가 정신이 박약해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1960~70년대 고 정주영 회장처럼 지금 사업을 벌이면 망해요. 그 시절엔 말하자면 종이에 여백이 많았던 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백과 틈새를 찾아 글씨를 써야죠. 벤처 2세대들이 인터넷 서비스라는, 대기업이라고 잘하는 것도 아닌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았듯이 말이죠. 그 결과 넥슨·카카오·네이버가 대기업으로 성장했지 않습니까?”

기업가정신은 시대와 조직이 처한 상황에 따라 변용될 수 있다. 설립 초기엔 도전정신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성숙기에 들어서면 여전히 도전이 장려돼야 하지만 더 합리적인 기업가정신이 작동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은 창업가나 전문경영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 회장은 기업가정신이야말로 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온 추동력이라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문제의식이 필요하듯이 기업의 평사원도, 심지어 공무원도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극심한 미세먼지, 세계적인 저출산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보면 당연히 분노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야죠. 물론 기업가정신이 가장 왕성한 집단이 기업가들이기는 합니다.”

남 회장은 대우자동차 연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대기업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6년 만에 중소기업으로 옮겼고 2년 후 첫 창업을 했다. 그는 제1기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설립 당시 발기이사로 참여했고 지난해까지 3년 간 이사장을 맡았다. ‘닥창(닥치고 창업)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기업가정신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창업을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 경영을 배우기 위해 창업을 하라고 권합니다. 청년 창업이든 인생 2막의 생계형 창업이든 창업의 현장은 훌륭한 교실이죠.”

창업의 현장은 훌륭한 교실

치킨집 같은 자영업을 창업할 땐 월급쟁이든 ‘알바’든 1~2년 해당 업종에 뛰어들어 직접 경험을 쌓으라고 말했다. “학습이 되고 감이 올 때까지 경험해 보라는 겁니다. 인생 1막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그 바닥을 벗어나면 사실상 초보자입니다. 물론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면 의지, 학습 능력 등 그럴 만한 자질을 갖췄다고 볼 수 있죠. 초보자이지만, 새로운 분야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기는 합니다.”

그는 치킨집 창업과 기술 창업은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영업을 질 좋은 창업이 아니라고 우리가 폄하하면 안 됩니다. 기술이 있으니 기술 창업을 하는 거고, 기술이 없으면 치킨집이든 국밥집이든 몸으로 때우는 창업을 하면 됩니다. 기술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적어 상대적으로 손쉽지만 도전해 고생하는 건 같아요.”

그는 창업이든 취업이든 기본적으로 일자리는 질이 아니라 수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일자리의 질을 따지는 발상은 아마추어적인 탁상공론입니다. 늘릴 수 있으면 알바 자리라도 늘려야죠.”

그는 스타트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때 “자신의 생각이 10번쯤 바뀌면 성공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말한다. “10번쯤 바뀌면 비로소 사고가 유연해 집니다. 시장에서 다른 생각과 부딛쳐 꺾이고 깎이면서 유연해 지는 거죠. 무엇보다 고집을 부리면 안 돼요. 초심은 잃지 않되 첫 아이디어로 성공하기를 바라선 안 됩니다.”

1477호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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