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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22) 인상여의 양보] 사사로운 자존심보다 나랏일 걱정 

 

자신을 시기하던 염파와의 갈등 피하려 몸 낮춰… 인상여의 진심 깨달은 염파도 화해의 손 내밀어

▎일러스트 : 김회룡
요즘도 잘 쓰는 ‘완벽하다’라는 말. 흠 잡을 데 없이 완전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으로부터 유래했다. 전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보배 ‘화씨지벽(和氏之璧, [한비자]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진시황이 이것으로 천자의 옥새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이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들어오자 진나라 소양왕이 이를 탐냈다. 소양왕은 성을 15개 주겠다며 화씨지벽과 바꾸자고 요청했는데 물론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조나라에서 화씨지벽을 가져오면 그대로 빼앗아버릴 생각이었다.

소양왕의 요구에 조나라 조정은 당황했다. 진나라에 화씨지벽을 보내자니 속을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보내지 말자니 진나라의 보복을 받을 것이 두려웠다. 오랜 논의 끝에 조나라는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때 화씨지벽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바로 인상여다. 인상여는 “열다섯 성이 조나라로 오게 된다면 벽옥을 진나라에 두고 오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완전하게 다시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라는 다짐을 남기고 길을 나섰다.

진나라 왕과 담판 벌여 나라의 보배 지켜

진나라에 도착한 인상여가 화씨지벽을 바치자 소양왕은 예상대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어보였다. 화씨지벽을 감상하며 감탄할 뿐 15개의 성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상여는 벽옥에 작은 흠(하자)이 있으니 알려 드리겠다며 화씨지벽을 건네받는다. 그리고는 “대왕께서 열다섯 성을 주실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만약 강제로 빼앗으시겠다면 저의 머리와 화씨지벽은 이 자리에서 박살날 것입니다”라며 기둥에 몸을 날리려 했다. 소양왕은 놀라서 만류했고 성을 내주겠다며 거짓 제스처를 취했지만 이를 간파한 인상여가 몰래 화씨지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냄으로써 상황은 종결된다(소양왕은 보배를 탐하느라 외국의 사신을 죽였다는 오명을 듣기 싫어 인상여를 살려주었다). 이 때 화씨지벽이 완전하게 조나라로 돌아왔다고 하여 ‘완벽귀조(完璧歸趙)’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완벽’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흠이나 결함을 뜻하는 ‘하자’라는 표현도 이 일화에서 탄생했다).

아무튼 인상여가 어려운 인무를 완수하고 귀환하자 조나라 혜문왕은 인상여를 상대부(上大夫)에 임명한다. 그리고 인상여가 다시 진나라 왕과 조나라 왕이 만난 민지(?池)의 회담에서 담대한 기개를 발휘하며 나라의 자존심을 지켜주자 수석 재상인 상경(上卿)에 제수했다.

그런데 인상여가 이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자 조나라의 백전노장이자 최고사령관 염파(廉頗)가 분노했다. “나는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워 큰 전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고작 세 치 혓바닥을 놀려 미미한 공로를 세웠을 뿐인데도 그의 벼슬이 나보다 윗자리에 있게 되었다. 더욱이 그 자는 미천한 출신이 아닌가? 나는 부끄러워 도저히 그 자 밑에 있을 수가 없다. 내 반드시 그 놈에게 모욕을 줄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해 다녔다. 조회가 열릴 때마다 병을 핑계 대며 나가지 않았고 길을 가다가도 염파의 마차가 보이기라도 하면 황급히 자신의 마차를 골목으로 피해 숨게 했다. 이 모습을 본 인상여의 문객들이 “저희가 상공을 모시는 것은 공을 이 시대의 대장부로 여기고 공의 드높은 뜻을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공께서는 염파 장군이 온갖 악담을 퍼붓는 데도 대응할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그저 두려워하며 피하고 계시니, 대체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저희는 공의 행동이 부끄러워 더 이상 공을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문객들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인상여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대들은 진나라 임금과 염파 장군 중 누가 더 무서우시오?” 문객들이 대답했다. “당연히 진나라 임금이지요.”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그 진나라 임금을 면전에서 꾸짖었고 그의 신하들을 욕보인 바 있소. 아무리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지만 그런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할 것 같소?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저 강력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염 장군과 나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우리 둘이 싸우게 되면 어찌 되겠소? 그 소식을 들은 진나라는 필시 우리를 공격할 것이니, 내가 지금 염 장군을 피해 다니는 것은 그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랏일이 우선이기 때문이오.” 인상여 자신도 염파의 교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라를 위해 양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상여의 생각을 전해들은 현자(賢者) 우경이 염파를 찾아갔다. “공로를 논하자면 이 나라에 장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겠지만 도량을 논하자면 인 상경이 위인 것 같소.” 염파가 발끈 화를 냈다. “나만 보면 피하기 급급한 그 겁쟁이가 무슨 도량이 있단 말이오?” 우경이 타일렀다. “그것은 인 상경이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생각했기 때문이오. 지금 한 사람은 계속 양보하고 한 사람은 계속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니, 장군의 명성만 훼손될 뿐이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깨닫는 바가 있었다. “선생이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내 잘못을 알지 못했을 것이오.”

염파는 그 길로 웃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진 채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갔다. 자신은 죄인이라는 의미이다. 인상여의 집 문 앞에 도착한 염파는 꿇어앉은 채 “이 비루한 자가 상경께서 그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소이다. 나의 죄는 죽어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오”라며 사죄했다. 이 모습을 본 인상여는 황급히 염파에게 달려가 그를 일으키며 말한다. “장군께서 이렇게 아량을 베풀어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임금을 섬기고 사직을 지키는 신하입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사과가 필요하겠습니까?” 염파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공과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이 되자 하오. 비록 목이 잘리는 일이 있어도 우정을 변치 않겠소.”(목이 잘려도 변치 않는 사귐이라는 뜻의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완벽·하자·문경지교 유래의 주인공

이후 인상여와 염파는 합심해 조나라를 든든하게 지켰다. 두 사람이 건재한 동안에는 패권국이었던 진나라도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염파 역시 잘못을 알면 즉시 반성하고 고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애초에 인상여가 양보할 줄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위와 권위를 내세우며 염파와 반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열국지]의 표현처럼 두 호랑이가 싸우다 결국 둘 다 살아남지 못했을 테고 조나라도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무릇 양보는 더 나은 자가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이며 포용은 강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다. 사마천의 말처럼 인상여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함으로써 그 이름이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1477호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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