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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손에 물러난 첫 총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국민연금·외국인 주주 ‘항로 변경’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안 부결… 재계는 ‘연금사회주의’ 우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 등 대한항공의 주요 주주들은 3월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주들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64.1%가 찬성했고 35.9%가 반대했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참석 주주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3분의 2에 해당하는 66.6%의 지지를 얻지 못한 조 회장은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못했다. 조 회장은 이번 주총 결정으로 대한항공 대표이사직도 잃게 됐다. 지난 199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지 27년 만이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연임 실패는 최근 한층 강화된 주주권 행사에 따라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에 제한을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자본시장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대한항공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11.56%,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20.50%다. 기타 주주는 34.59% 등이다. 기타 주주에는 기관과 개인 소액주주 등이 포함돼 있다.

조 회장의 연임안 부결은 전날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는 전날 회의에서 조 회장 연임안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조 회장은 현재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대한항공 납품 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날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 등도 조 회장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해외 공적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도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에서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불발에 재계는 국민연금이 실제로 기업 CEO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입장문에서 “국민연금이 주주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렸다”며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성명에서 “다분히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며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본질적 역할을 가진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비난했다. 대한항공은 “사내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조 회장이 여전히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이고,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478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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