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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선진국 금융완화 효과, 주가 상승엔 ‘글쎄’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
새로운 유동성 공급 결과 아니어서 한계… 시장의 관심은 경기 둔화에 쏠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오른쪽)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선진국 중앙은행이 금융완화 카드를 다시 꺼냈다. 유럽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3월 11일에 유럽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3분기에 기준금리를 올리려던 당초 계획에서 후퇴해 연내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3)도 다시 시행하기로 했다. 민간 대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시중은행에 마이너스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조치다. 2017년을 마지막으로 시행을 중단했다. 미국도 이런 변화에 동참하고 나섰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현재 진행 중인 중앙은행의 자산 매각 작업을 10월에 끝낼 계획임을 밝혔다.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팔아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작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금리 인상 계획이다. 올해 중 추가 금리 인상은 없고 내년에 한 번 정도 인상을 고려하는 걸로 계획을 수정했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금융완화정책을 강화한 건 경기가 나빠서다. 연준은 올해와 내년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와 1.9%로 기존 예상치보다 0.2%포인트와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유럽중앙은행도 비슷하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1%로 내렸다. 지난 12월 해당 전망치가 1.7%였던 걸 감안하면 석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전망치가 급락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중앙은행이 비관적인 얘기를 할 경우 경제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FOMC에서는 이례적으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 예상보다 낮은 전망치를 내놓았다. 그동안 연준의장이 미국의 현재 경제 상황과 향후 전망이 좋다고 얘기했던 것과 배치되는 행태다. 미중 무역분쟁을 포함한 불안 요소가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관심은 ‘선진국 금융완화 정책이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로 모아지고 있다. 9년 넘게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으로 주가가 상승했고, 지난해 말 하락이 금리 인상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대다수인 만큼 완화정책에 대해 기대가 크다. 그러나 시장의 예상과 달리 이번 정책 변화는 긍정적으로 해석해도 주가를 올리는 역할을 하긴 힘들다. 가격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번 조치에도 추가적인 금리 인하나 유동성 확대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은 금리를 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현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유동성도 추가 공급보다 줄어들지 않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주가가 오르려면 실물에서 필요한 이상으로 자금을 공급해 유동성 수위가 꾸준히 올라가야 한다. 이미 자산분배가 끝난 자금보다 새로운 돈이 들어오는 게 가격이 올라가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돈의 유입이 없다면 이는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미국·유럽 잇따라 금융완화정책 내놔

시간이 흐를수록 금융완화보다 경기 둔화가 더 관심을 끌 가능성이 큰 점도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금융위기 직후만 해도 다양한 정책이 나왔기 때문에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정책 내용도 새로운 것이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컸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책이 나와봐야 과거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처럼 강한 정책을 펼 수도 없다. 어떤 정책이 나오더라도 눈높이가 높아진 시장의 기대치를 채우기 힘들다. 연준이 올해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이틀 만에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시장은 이미 금리 동결보다 완화정책을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둔화된 경제 상황에 더 주목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앞으로 금리와 경기 사이의 역전현상이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시장의 추가 상승이 쉽지 않을 걸로 보인다. 지난해 말 미국 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당시 시장 여건은 최고였다. 경기가 좋았고, 유동성 수위도 높았다. 기업 실적은 20% 이상 증가하고 있었다. 시장 내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같은 확고한 주도주가 버티고 있었다. 금리 인상이 유일한 악재였을 뿐 다른 곳은 흠잡을 데가 없는 상태였다. 지금은 다르다. 시간이 갈수록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주가는 높고 3분기까지 기업 이익이 늘어나지 않을 걸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했을 때처럼 움직일 수는 없다.

미국 시장 하락은 우리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 나스닥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할 정도로 오르는 동안 우리 시장은 소폭 상승에 그쳤다.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인데, 미국 시장이 오르는 데에도 이 정도이니 하락할 때는 위축 정도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재료가 호재가 되느냐 아니면 악재가 되느냐는 시장 상황과 주가 수준에 달려있다. 선진국의 금융완화 정책이 악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재로 보기도 힘들다. 정책의 취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시장이 생각하지 않았던 형태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경기 회복 예상보다 빠를 수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3분기부터 수요 업체들이 서버용 디램(DRAM) 주문을 늘릴 거란 전망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해당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반도체 주가가 업종 경기보다 2분기 선행해 움직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반전으로 볼 수 있다. 1990년 이후 반도체는 다섯 번의 경기 둔화를 경험했다. 1996년~1998년, 2000년 말~2001년, 2007년~2008년, 2011년~2012년, 2015년~2016년 초가 그에 해당한다. 둔화 형태는 2000년까지와 그 이후가 다르다. 앞의 두 번은 반도체 가격 하락과 이익 둔화가 상당히 컸다. 하락이 시작되고 3~4개월 후에 주가가 고점 대비 절반 밑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2001년 이후 둔화는 부드럽게 진행됐다. 2015년 같은 경우는 불황에도 투자액이 변하지 않을 정도로 경기 둔화가 약했다. 반도체 공급자가 줄면서 가격 통제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이번은 더하다. 반도체 경기 둔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바닥을 예상할 정도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 반도체 업황이 한 번 나빠지면 최소 1년은 둔화가 이어진다. 둔화가 멈춘 후에도 빠르게 회복되지 못하고 상당기간 조정 기간이 이어졌다. 고정가격과 시장가격이 역전된 지난해 7월을 반도체 경기 둔화의 시작점으로 볼 경우 지금은 경기가 나빠지고 9개월이 지난 상태다. 경기가 추가로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상승 전환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만큼 연속성이 담보되기 힘들다는 의미가 된다. 반도체 주가 상승은 외국인 매수에 의한 수급의 역할이 컸다. 많을 때에는 하루 외국인 매수의 90% 이상이 반도체에 몰릴 정도였다. 외국인 매수는 금융완화 정책과 함께 시작됐다. 유동성 유입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여기에 나스닥 주가 상승이 더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종목을 찾을 경우 반도체가 선택되는 게 당연하다.

1478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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