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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퇴직연금 쥐꼬리 수익률, 현상유지편향 탓? 

 

‘웅덩이 개구리’의 우화… TDF·디폴트 옵션으로 수익률 호전 꾀해야

두 마리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한 마리는 마차가 다니는 길가 웅덩이에 살았다. 다른 한 마리는 길에서 멀리 떨어진 깨끗한 연못에서 살았다. 어느 날 숲속의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길가의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를 찾았다. 연못 개구리는 웅덩이 개구리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의 연못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 “여기는 길가라 너무 위험해. 더구나 수시로 마차가 지나다니고 있어. 그러다가 마차에 치여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여기는 물도 조금 밖에 없고 몹시 더러워 병에 걸리기 딱 좋겠어. 내가 사는 연못은 아주 깨끗하다네. 여기서처럼 지나다니는 마차를 피해야 하는 걱정도 없지.” 그러나 웅덩이 개구리는 고개를 흔들면서 연못 개구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야, 그냥 여기서 사는 것이 좋겠어. 우리 집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이사를 간다는 게 너무 귀찮은 일인 것 같아.” 웅덩이 개구리는 귀찮다며 친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연못 개구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사는 연못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웅덩이 개구리는 마차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고 말았다.


▎사진:© gettyimagesbank
마차에 깔려 죽은 웅덩이 개구리의 행태는 ‘현상유지편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현상유지편향은 자신에게 특별한 이득이 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선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성향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환경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확실한 현재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위안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향성은 무엇보다 생명과 재산이 걸린 중대 사안과 관련된 경우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보통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금융상품이 있다.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은 기업이 종업원의 노후생활 안전을 위해 가입시켜 주는 반강제적 금융상품이다. 수익률이 변변치 않거나 제도 운영이 잘못되면 가입자의 노후가 불안해질 수 있다. 반대로 운용이 잘되면 든든한 노후 보루가 돼 준다. 그만큼 가입자는 퇴직연금의 운용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운용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사업자를 바꾸거나 무슨 수를 써야 할 텐데, 대부분의 가입자는 그냥 넘어간다. 퇴직연금은 쥐꼬리 수익률로 은행예금보다 못하다는 조롱을 듣는다. 일반 금융상품 같으면 벌써 없어졌겠지만, 이상하게 해마다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왜 그럴까?

“은행예금만도 못해” 조롱 받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은 1.01%에 그쳤다. 2017년(1.88%)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1.5% 수준인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해 적립금을 까먹은 셈이다. 퇴직연금 수익률 하락은 주식시장이 부진한 탓이 컸다. 원리금보장형의 경우 전년 대비 소폭 오른 1.5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리 상승 추세에 따라 수익률도 소폭이나마 오른 것이다. 반면 펀드 등에 투자하는 실적배당형의 경우 수익률이 -3.82%였다. 6.58%를 기록한 2017년에 비해 10% 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이런 형편없는 수익률에도 퇴직연금의 덩치는 오히려 커졌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전 년 대비 12.8% 증가했다. 적립금의 90%가 원리금보장상품에, 10%만 실적배당형상품으로 운용됐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노후자금의 안정성은 지켜야 한다는 게 가입자들의 생각인 듯하다.

사실 퇴직연금의 운용에 대해 가입자들이 무심한 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나라 사정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미국의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노후연금 프로그램의 투자 자산 비율 변경을 평생에 걸쳐 몇 번 했는지 조사했더니 ‘제로’였다고 한다. 처음 연금상품에 가입할 때의 투자자산 비율을 평생 가져갔다는 이야기다. 교수들의 이 같은 행태는 현상유지 편향이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됐다. 현상유지편향을 부르는 심리적 기재는 두가지다. 하나는 ‘귀차니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행동하고 나서 결과가 나빠지면 더 크게 후회하는 성향이다.

그런데 그 후회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무행동 후회와 행동 후회다. 예를 들어 어떤 주식을 사려고 했는데 위험할 것 같아 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주식 가격이 폭등해 느끼게 되는 후회는 무행동 후회다. 그러나 내가 주식을 샀는데 얼마 후 주가가 폭락할 때 느끼게 되는 후회는 행동 후회다.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아서 생긴 부정적인 결과보다는 행동했기 때문에 나타난 부정적 결과에 대해 더 많이 후회한다. 이제 사람들이 왜 퇴직연금 수익률이 나쁜 것으로 나타나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이유를 알면 해법도 쉽게 풀리는 법. 바로 퇴직연금 가입자의 현상유지편향을 이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다. 지금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디폴트 옵셥(자동투자제도)’이나 자산 구성을 생애주기별로 자동 조절해 주는 ‘TDF(타깃 데이트 펀드)’는 모두 가입자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자산을 알아서 굴려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디폴트 옵션. 퇴직연금의 경우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면 사업자가 가입자의 투자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적용해 사전에 정한 조건에 따라 연금 자산을 운용해 준다. 미국 등 퇴직연금 선진 시장에선 보편화한 제도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의 퇴직연금 성과에 무신경한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원금만 까먹지 말자는 보신주의 탓에 원리금 보장상품 가입을 유도하거나 생애주기별 자산 배분을 실시하지 않는 등 운용을 사실상 방치하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국민연금도 과거엔 대부분 채권에만 투자했으나 주식과 대체투자를 확대해온 덕분에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퇴직연금 역시 지금의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저수익이 고착화할 수 있어 디폴트 옵션 시행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디폴트 옵션은 빠르면 올 하반기 도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자의 현상유지편향 이용한 ‘이이제이’

퇴직연금의 수익성을 높이려면 결국 펀드와 실적배당 상품을 편입하는 방법 밖에 없다. 물론 펀드에 투자해도 관리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입사부터 퇴직까지 장기간에 운용하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경제 환경과 금리 변화, 은퇴까지 남은 기간 등을 고려해 주식과 채권 간 비중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한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이 같은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금융상품이 TDF다. TDF는 생애주기를 고려해 펀드가 알아서 자산 배분을 해준다. 투자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펀드가 알아서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줄여나간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이 많은 청년기에는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다 은퇴가 다가올수록 채권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식이다. 자신의 은퇴 연령에 맞는 펀드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TDF 이름엔 2020, 2025, 2030, 2035, 2040, 2045 같은 숫자가 붙어 있는데, 이는 예상 은퇴시점을 나타낸다. 가입자가 2045년에 은퇴할 예정이면 펀드 이름 뒤에 2045가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앞으로 5~6년 내에 은퇴할 예정이면 펀드 이름 뒤에 2025가 있는 것을 고르면 된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80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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