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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25·끝) 망국과 부국의 갈림길] 인재 등용해 흥한 진나라 인재 등한시해 망해 

 

천하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재상 이사의 가상 일기... 편견과 선입관 없는 포용의 정치 되새길 만

▎사진:김회룡
숙적 제나라가 멸망했다. 왕분(王賁) 장군이 제나라의 항복을 받고 제나라 임금을 사로잡아 돌아오는 중이라고 한다. 태공망 여상과 환공, 관중, 포숙아, 안영 등 수많은 거인을 배출한 제나라가, 여씨(呂氏)에서 전씨(田氏)로 왕위가 넘어간 후에도 굳건히 동쪽의 패자로 자리 잡았던 제나라가, 드디어 우리 손에 무너진 것이다. 한나라를 정복한(기원전 230년) 지 9년 만에 조나라·위나라·초나라·연나라에 이어 마지막으로 제나라까지 무너뜨리고(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하였으니,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빛날 대업이 아닐 수 없다.

기세등등하던 육국이 멸망한 이유

우리 진나라가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영명하신 군주께서 이끌어주시고 온 신하와 백성이 힘을 합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량을 한 데 모으고 군사를 단련시켰으며, 법과 제도를 개혁하고 정치와 교육갈림길을 바르게 시행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적재적소에 그들을 배치한 것, 인재가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어디 한 번 돌이켜보라. 육국이 왜 멸망하였는지를. 그들의 영토는 우리보다 드넓었고 그들의 백성은 우리의 몇 배나 되었다. 그럼에도 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었겠으나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인재를 중시하기는커녕 있던 인재마저 배척하고 쫓아냈으며, 그들의 충언에 귀를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중원을 호령하던 제나라가 왜 우리에게 패배했겠는가? 간신 후승이 나라 안 인재들을 쫓아내고 달콤한 말로 임금의 귀와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위나라도 마찬가지다. 문후가 위성·전자방·단간목·적황 등 나라의 인재를 대거 등용함으로써 일대 강국으로 떠올랐지만(‘13회 위문후의 인재들’편 참고)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굴욕을 준 혜왕의 어리석음 때문에 위나라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15회 위혜왕의 어리석음’편 참고). 최근에도 위나라는 나라의 기둥이자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던 신릉군을 숙청한 바 있다(21회 ‘전국사공자의 인재사랑’편 참고). 신릉군이 건재했더라면, 그가 쓸쓸히 생을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위나라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무령왕의 단호한 개혁으로 강대국이 되었고(‘20회 무령왕의 후계자 승계’편 참고), 명재상 인상여의 활약으로(‘22회 인상여의 양보’편 참고) 한때나마 우리가 두려워해야 했던 조나라는 또 어땠는가? 간신의 모함을 듣고 나라를 구한 명장 염파를 축출했으며, 몇 차례나 나라를 지켜낸 또 다른 명장 이목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던가(‘24회 명장들의 수난’편 참고). 만약 염파와 이목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우리 진나라는 쉽게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다시 조나라 군대를 통솔하길 바랐던 염파의 충심을 묵살한 조나라이기에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 것이다. 나의 동문사제 한비(韓非)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 한나라, 굴원의 충원에 귀를 막고 탁월했던 재상 춘신군을 비참하게 죽게 만든 초나라, 권력투쟁으로 수많은 인재들을 사장시킨 연나라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어디 그뿐인가? 육국은 천하의 인재를 포용하지 못했다. 출신과 신분을 따지며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들을 배척했다. 육국에서 타국의 인재를 중용해 성공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가? 지극히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적은 인구, 척박한 환경에서 세워진 우리 진나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해져야 했다. 서쪽 오랑캐라는 육국의 멸시를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인재를 갈망했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출신성분 따위는 개의치 않고 등용했다.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우리 편으로 만든 사람들도 많았다.

예컨대 옛날 목공께서는 초나라에서 소를 치던 백리해를 등용했고 오랑캐 융(戎)땅에서 유여를 초빙해왔으며 송나라로부터는 건숙을 맞아들였다(‘3회 오고대부 백리해’편 참고). 효공께서는 위나라에서 온 보잘 것 없던 위앙(상앙)을 발탁하여 국가를 일신하였으며 혜왕께서는 역시 위나라 출신 무명의 선비 장의를 중용하여 국력을 키웠다. 순식간에 진나라 권세가들의 힘을 억눌러 버린 범수는 또 어떠한가?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소왕이 일약 중임을 맡기지 않았던가? 이렇듯 천하의 숨은 인재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힘을 우리의 힘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능력을 우리의 능력으로 치환한 덕분에 백성은 부유해졌고 나라는 강해질 수 있었다. 마치 태산(泰山)은 한줌의 흙도 버리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듯 말이다.

이런 노력은 우리 군주께 이르러 더욱 성대해졌으니, 비록 불미스럽게 퇴진하기는 했으나 조나라 출신으로 상인(商人)이었던 여불위 상국(相國, 재상)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위나라 사람 울료를 발탁하여 마음껏 재주를 펼치게 만드셨다. 한비의 재주를 탐내어 직접 초빙하려 하셨으며 초나라에서 온 불민한 자, 나 이사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진나라가 가진 힘을 남김없이 하나로 모으셨을 뿐 아니라 여기에 천하의 인재를 더해 진나라의 시야를 더욱 넓게, 진나라의 국력을 더욱 강하게 만드신 것이다.

천하의 숨은 인재 과감히 발탁

인재의 성품과 재능은 살펴보지도 않고 그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라며 물리치고 배척한 육국에 비할 때 이 얼마나 현명한가? 무릇 인력이든 물력이든 모든 자원은 유한한 법이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승부를 펼쳐야 한다. 우리 진나라는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출신이든지 간에 ‘우리’로 포용하여 나라를 위해 온 힘을 쏟게 만들었다. 인재가 가진 잠재력에 주목하고 다른 나라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놓쳐버리는 인재가 있으면 재빠르게 영입해 우리의 역량을 강화시켰다.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인재가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노력이 멈추지 않는 한 아마도 우리 진나라의 치세는 영원하리라.

※ 이 글은 진시황을 보좌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한 재상 이사(李斯)의 가상 일기입니다. 열국지와 사기 열전 등 사료를 근거로 하였지만 필자의 상상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인재를 가리지 않고 중용하고 그들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을 이내 잃어버리면서 진나라 역시 망국의 길로 접어듭니다. 통일제국 진나라가 불과 15년 만에 몰락했던 주된 원인은 바로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번 회를 끝으로 ‘열국지 재발견’ 연재를 마칩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484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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