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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사업구조 재편 의미는] 선택과 집중? 경영권 승계구도 확립?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방산·화학·태양광 중심 외연 확대에 눈길... 유통·호텔·금융업은 확장 대신 내실 강화

▎한화그룹은 글로벌 종합 방산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항공기 엔진 부품 등을 제조하면서 방산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재계 8위 한화그룹의 잇단 사업구조 재편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룹 내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거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한화그룹의 유통 부문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지난 4월 29일 이사회에서 “오는 9월 ‘갤러리아면세점63’의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룹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의미다. 이 회사는 2015년 면세 사업자로 선정돼 시내 면세점인 갤러리아면세점63을 운영했지만 지난해까지 3년간 영업손실만 1000억원이 넘게 발생하는 등 적자에 허덕였다. 내년 말까지 사업 기간이 남았지만 면세점 사업을 지속하더라도 손실을 메꾸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그룹의 유통업 외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런 결정에 더해, 다른 비주력 사업이던 호텔업에서도 규모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월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최근 삼정KPMG를 매각 주간사로 선정하고 미국령 사이판에 위치한 월드리조트 매각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가 10년 전인 2009년 인수해 보유 중인 사이판 월드리조트는 1500억원가량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간의 가치 재평가 작업을 거쳐 매각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또한 회사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작업의 하나로 풀이된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55억원으로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22조원 중 18조원은 태양광·화학·방산에 투자

그런가 하면 한화그룹은 최근 대형 매물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금융 부문에서도 당초 인수 유력 후보자라는 예상과 달리 발을 빼면서 내실에 중점을 둔 모양새다. 1조5000억원 안팎의 지분 가치가 책정된 매물인 롯데카드 인수전에서 한화생명이 4월 최종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앞서 한화생명은 지난해 11월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는 등 롯데카드 인수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룹 내에 5개의 금융 계열사(한화생명·한화손해보험·한화증권·한화자산운용·한화저축은행)가 있어 금융업종 내 시너지 효과 창출이 기대됨에도 사업 확장을 자제한 것이다.

이와 달리 기존의 주력 사업에선 확장에 방점이 찍힌 구조 재편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예컨대 방산업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약 4년간의 대대적인 사업구조 재편 작업을 진행한 끝에 한화디펜스와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정밀기계와 한화테크윈을 100% 자회사로 두는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이후 국내외 사업 기회 확대를 노리면서 항공기 엔진 부품과 기체 부문 간 시너지 효과 창출을 모색 중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20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조달한 자금은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상환, 그리고 한국형 헬리콥터(KUH) 양산을 위한 자재 구매 대금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화력·기동·대공·무인화체계 등 4개 분야 무기를 만드는 한화디펜스는 지난해에 역대 최고 수준인 9832억원의 수주 잔액을 확보하면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화학업도 마찬가지다. 그룹 내 화학 계열사인 한화토탈은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국내 생산 거점인 충남 대산공장에 5300억원 규모 설비 투자를 결정하는 등 2017년부터 내년까지 총 1조4300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증설을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한화케미칼은 화학뿐 아니라 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분류되는 태양광 사업에서도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자회사로 둔 한화큐셀이 이미 셀 생산 규모 기준 세계 1위 태양광 업체로 성장했다.

한화그룹이 방산·화학·태양광이라는 3대 주력 사업을 대하는 태도는 전반적인 투자 규모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8월 한화그룹은 2022년까지 22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9조원이 태양광, 5조원이 화학, 4조원이 방산에 집중 투입된다는 내용일 만큼 주력 사업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이 M&A 시장에서 롯데카드 인수를 포기한 것도 이런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에 대한 최종 제안서 제출일 직전 아시아나항공이 시장에 새로운 매물로 나오면서 목표물을 그쪽으로 선회하고 ‘실탄(돈)’을 아끼려 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지분 인수엔 2조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M&A 업계는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한화그룹은 항공업을 본격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해 기존 방산업과 시너지 효과 창출을 모색할 수 있다.

한화그룹 측은 공식적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의향이 없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항공업에 관여 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신현우 대표는 “우리가 하고 있는 항공 제조업과 (항공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돼 인수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M&A 업계는 과거 사례로 봤을 때 당장은 매물의 지분 가치를 낮추기 위해 인수를 부인했다가도, 경쟁 분위기가 잦아들면 다시 인수전 참여를 선언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며 한화그룹의 인수전 참여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본다.

일련의 행보들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수익성 개선을 위한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사업을 일부 축소하거나 확장중인 것으로 안다”며 “신사업 기회가 생기더라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모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면세점처럼 돈이 안 되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선 과감히 손을 떼고, 기존에 확고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거나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에선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룹 전반의 체질을 개선해 불경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부인했지만 번복 가능성

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선 조금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얽힌 경영권 승계구도가 자연스레 장남(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쪽에 힘이 실리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 신호로도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애초 재계에선 김동관 전무가 그룹의 주력 사업 분야인 화학·방산·태양광을,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가 금융을, 삼남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유통·건설·호텔을 각각 물려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셋 중 김동선 전 팀장은 2017년 이후 그룹을 떠나 현재 해외에서 따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런 행보가 면세점 사업 철수, 해외 리조트 매각 검토 등 그룹 내 유통·호텔업 관련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그러면서 국내 재계에 관행적으로 자리매김한 장자 승계 원칙상 장남 쪽에 좀 더 경영권 승계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행보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전혀 맞지가 않는 얘기”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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