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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에 우선주 출연할 수 있어야윤리경영을 하면 노사 갈등이 줄어든다. 구성원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높아지고 기업에 대한 평판이 좋아져 인력의 질도 높아진다. 자연스레 기업의 브랜드 가치도 높아진다. 특히 기업이 장수하려면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아야 한다. “아닌 말로 갑질한 기업들은 좋은 직원 뽑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구성원으로서 마음을 줄 수 없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도 없기 때문이죠. 프랜차이즈 본사 같으면 가맹점도 탈퇴하는 마당인데요.”준법경영·투명경영·상생경영 등은 윤리경영과 무관치 않다. 윤리경영의 하부 범주 내지는 부분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윤리경영의 가장 높은 단계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유한킴벌리는 나무를 베어 만든 원자재를 사용하는 기업이다. 그런 회사가 ‘우리 강산 푸르게’ 캠페인을 펼치고 전국에 나무를 심는다. 제품을 생산하려면 나무를 잘라야 하는 회사가 북한과 몽골의 사막에도 나무를 심고 있다.기업의 많은 사회공헌 활동이 주식을 출연해 만들어지는 재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조 회장은 “기업이 설립한 재단이 활발하게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려면 우선주를 출연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주는 이익 내지는 이자의 배당, 잔여 재산의 분배 등에서 보통주보다 우선권이 부여된 주식이다. 대신 의결권이 없다. “지금은 보통주만 출연할 수 있습니다. 재단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보통주라고 배당을 안 해 주면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식을 팔면 재단의 재정이 취약해지죠. 유한재단·풀무원재단 등이 지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그는 로펌의 검토를 거쳐 일부 의원실과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배당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주주들의 인식이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재단 만들기가 증여 및 상속의 편법적 수단으로 활용됐던 탓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도 대처해야겠지만, 재단에 대한 선의의 주식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들이 더 활발히 펼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합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회 환원에 대한 세금 감면, 가업 상속과 관련한 법제의 보완을 기대했다.현대의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 둔감하면 도태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윤리경영은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생산 기지든 시장이든 해외에 진출하려면 윤리경영으로 무장해야 한다. 해외 비즈니스는 진출국의 비즈니스 관행에 맞게 하면 된다는 시각이 있다. 그는 관행을 좇기보다 길게 내다보고 기업의 글로벌 이미지와 평판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올해 경영 화두 중 하나는 직장 내 갑질이었다. 조 회장은 “구성원을 종업원으로 보는 인식이 직장 내 갑질의 토양”이라고 주장했다. “종업원이란 말은 주인과 종 간의 주종관계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업의 구성원은 경영진의 파트너입니다. 자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든 아니든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중소기업 같으면 오너와 더불어 함께 자산을 키우는 파트너라는 거죠. 이렇게 구성원에 대해 시각 교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갑질 사고가 터질 수 있어요.” 윤리경영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고 서로 상생하면 국부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그 사회의 약자를 향하게 마련이다.
윤리경영 최대의 적은 기업가 자신그는 윤리경영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기업가 자신이라고 말했다. 자기 성찰에 실패하면 탐욕, 타인에 대한 무배려, 안일함 등의 덫에 걸려든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기업인으로서의 초심은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은 퇴색하고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옅어지는가 하면 고객 가치를 떨어뜨리기 쉽죠. 갑질 기업인들도 초심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그의 초심은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2000년 마침내 조현정재단을 만들었다. 회사 차원에서는 비트교육센터를 만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양성했다. 지난 29년간 총 약 8900명의 개발자를 배출했는데, 그중 일부만 비트컴퓨터에서 일한다. 나머지도 전원 평생 취업률 100%이다. 요즘은 수료도 하기 전 비트 스쿨 출신을 입도선매한다. 논바닥에서 자라는 벼를 수확도 하기 전 사들이듯이 기업이 개발자의 교육비를 부담하는 한편 수료 전에 채용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정부 산하교육기관에서도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볼을 가르치던 시절 그때까지 제대로 보급도 안 된 C랭귀지를 가르쳤습니다. 코볼이 절대적인 개발 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속도 빠르고 개방형 구조(open architecture)인 C랭귀지를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비트 스쿨을 열어 C 랭귀지를 가르쳤지만 배우려는 수강자도, 가르칠 강사도 구하기 어려웠죠.”그는 취업한 초기의 비트 수료자들에게 만일 랭귀지에 대한 옵션 자체가 없으면 C랭귀지로 프로그램을 짜고, 코볼이 옵션이면 코볼과 C랭귀지 두 언어로 짜서 제공하라고 주문을 했다. 그 덕에 C랭귀지가 대중화됐다. C랭귀지의 대중화는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반면 일본은 그로부터 10년 후에도 코볼이 주력이었다고 한다. 자바도 C랭귀지 계열의 언어다. “비트 스쿨 출신 개발자들의 국부 창출에 대한 기여도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2조원 규모에 육박합니다. 프로그래밍 기술과 소스, 수료자들의 최종 프로젝트를 취합한 책 [비트 프로젝트]를 출간해 그동안 40억원 가까운 경제적 가치를 사회에 환원했고요.”수입차를 타지 않겠다는 것도 그의 초심이다. 지금이야 국산차보다 값싼 수입차도 있지만 과거 수입차는 고급 차의 대명사였다. 조현정재단에 그가 투입한 돈 20억원이면 스포츠카 페라리 일곱 대를 살 수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대를 사 요일마다 색깔을 바꿔가며 페라리를 탈 수도 있었겠죠. 몰라서 그렇지 그 돈을 사회공헌 활동에 쓰는 게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가 더 높습니다.”그는 1983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3학년 때 호텔 방에서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벤처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이지만 국내 벤처 1호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서비스 기업 1호이기도 하다. 그는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다. 의사들의 소득이 거의 노출되지 않던 그 시절 일부 의사들은 비트 프로그램이 내장된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세금계산서 받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는 그런 의사에게는 컴퓨터를 납품하지 않았다.
성공은 사회가 제공한 기회의 산물비트컴퓨터는 2년 반 후 테헤란로로 옮겨 테헤란밸리 벤처의 원조가 됐다. 1989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서른을 갓 넘긴 그를 한국에서 기술 기업 창업 붐을 일으킨 청년 사장(boy president)이라고 1면에 대서특필했다. 조 회장은 혁신 성장이 성공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승자독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기업이 초기 시장을 선점해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익의 쏠림 현상이죠. 그러나 이 같은 시장에서의 성공은 그 회사가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 시스템이 그런 성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거예요. 이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의 산물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