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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에어컨, 골드러시 그리고 다운스트림 

 

새로운 기술·트렌드 만든 주체보다 그들의 혜택 받는 곳에 투자해야 유리

▎사진:© gettyimagesbank
“에어컨은 금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의 말이다. 고온다습한 싱가포르에 에어컨이 없었다면, 오늘의 싱가포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리콴유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에어컨을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 성공의 최대 요인 중 하나로 꼽는다.

에어컨은 1902년 윌리스 캐리어가 발명한 기계로, 그가 191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캐리어 엔지니어링 코퍼레이션을 설립하면서 상품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세계 최초로 에어컨을 발명한 캐리어는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캐리어를 미국 아니 세계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켰을까. 사실 그는 사업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생각보다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고, 미국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192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캐리어 사망 후 에어컨 대중화

에어컨은 그가 사망한 1950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해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결국 에어컨은 우리의 삶을 어마어마하게 바꾸어 놓았지만 캐리어와 같은 에어컨 제조업체에 투자했다면 그 투자 수익은 에어컨의 영향력만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에어컨을 이용해 돈을 정말 많이 번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답을 들어 보자. 다음은 월스트리트에서 소형주 투자의 개척자로 존경받았던 랄프 웰저의 [작지만 강한 기업에 투자하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에어컨은 실제로 미국의 남부지역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1930년대까지도 텍사스주 휴스턴에는 사람 여섯 명과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을 뿐이다. 개 한 마리도 얼마 후 죽었다. 휴스턴은 당시 전 세계에서 인간이 가장 살기 힘든 곳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에어컨이 보급되자 남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애리조나 등이 붐을 타기 시작했다…(중략)…에어컨이 이처럼 도시 전체를 바꿔 놓았으니 캐리어도 꽤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큰돈은 피닉스와 휴스턴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 주택과 쇼핑센터를 지은 사람, 레스토랑 체인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에어컨보다는 에어컨이란 기기를 이용한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법을 랄프 웰저는 ‘다운스트림(downstream) 투자’라고 부른다. 다운스트림의 사전적 의미는 ‘(강의) 하류로, 하류의’라는 뜻이다. 에어컨처럼 어떤 신기술이 등장하면, 그 신기술이 사회 전체로 서서히 혹은 급격히 퍼져 나가면서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신기술에 열광하고 찬사를 보내지만 정작 투자에서는 그만큼 보상이 크지 않은 게 역사의 경험이다. 웰저는 이렇게 말한다. “신기술 기업에 바로 투자하는 것보다 신기술로부터 혜택을 얻는 사업 분야에 투자하는 다운스트림 투자가 더 현명한 투자전략이라는 사실은 산업혁명 이후 충분히 검증됐다.”

신기술도 그렇지만 새로운 사건이나 트렌드가 등장했을 때도 다운스트림적 접근법이 더 효과적이다.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 중 하나가 아마도 미국의 ‘골드러시’일 것이다. 1848년 미국 새크라멘토에 가까운 아메리칸강(江) 지류 인근의 한 제재소에서 금이 발견됐다. 이 발견은 골드러시의 방아쇠를 당겼다. 대박의 꿈을 찾아 미국인들은 캘리포니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중국인들도 있었다. 이 때 모여든 중국인들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중국인 거리인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세웠다.

1848~1849년의 황금 열풍에 휩싸여 무려 10만 명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1846년 멕시코로부터 이 땅을 미국 해군이 빼앗은 후 이주한 미국인들은 800명 남짓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인구가 단기간에 캘리포니아로 모여든 것이다. 황금 열풍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샌프란시스코는 없거나 더 늦게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당시 미국인들이 꾸었던 황금의 꿈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미국의 대표적인 미식 축구팀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연고를 두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다. 포티나이너스는 1949년도에 황금을 찾아 온 사람들이란 뜻인데, 이 팀의 헤드기어도 황금빛이다.

여기서도 질문을 던져 보자. 황금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마이다스 왕처럼 황금 갑부로 부(富)의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누구일까. 애석하게도 황금 열풍 당시 금으로 부자된 사람을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반면 실패자의 리스트에 오를 인물들은 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왕자와 거지] [톰 소여의 모험] 등을 쓴 마크 트웨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금광 투기가 한창일 때, 네바다주에서도 은광 열풍이 불어 닥쳤다. 마크 트웨인은 은광 주식에 투자했고, 그는 단 10일 동안만 백만장자였다. 10일 이후에 그 주식은 모두 허공에 사라졌다.

골드러시로 돈 번 사람들은 금을 캐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작업복을 팔고 곡갱이와 삽을 판매한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들로 청바지의 시조인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미국을 대표하는 은행인 웰스 파고를 창업한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천막과 포장마차 덮개용 천을 팔던 스트라우스가 튼튼한 바지를 만들어 달라는 단골 광부들의 요청에 천막용 천으로 만든 질긴 작업복이 바로 청바지의 시작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청바지 브랜드인 리바이스(Levi’s)는 골드러시 때 태어났다. 워런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헤서웨이가 최대 주주로 있는 웰스파고는 예전에는 금을 캐고 번 돈을 고향으로 보내는 역마차 우편제도를 개설하고 운영해 큰돈을 벌어들였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리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488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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